[K-수소동맹]⑫뜨뜻미지근 삼성, 냉랭한 LG..왜?
윤도진
입력 2021. 10. 01.
삼성물산, 대표자 없이 단일기업 자격 참여
LG는 아예 불참..'SK 불편한 관계 탓' 해석도
수소사회가 순식간에 다가왔다. 수소경제 규모는 2050년 3000조원에 이를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세계 각국도 수소경제 주도권 잡기에 치열하다. 한국 역시 적극적이고, 상대적으로 앞서기도 했다. 국내 기업들에게도 전에 없는 기회다.
국내 수소경제 생태계가 어떻게 만들어질 것인지, 또 그 생태계의 구성원이 될 기업들은 각각 어떤 역할을 할지 살펴본다. [편집자]
지난달 8일 출범한 수소기업 협의체 '코리아 H2 비즈니스서밋'에는 일진, 이수 등 굵직한 중견 기업집단도 참여했다. 허정석 일진홀딩스 부회장이 앞에 나선 일진그룹은 최근 한국거래소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한 계열사 일진하이솔루스를 통해 이미 수소탱크 사업을 벌이고 있다. 김상범 회장이 참석한 이수그룹 역시 주력계열사 이수화학에서 액화수소 저장용기 개발과 부생수소 활용 등을 추진하고 있다.
서밋에는 그룹이 아닌 단일 기업 자격으로 E1, 고려아연도 가입했다. E1에서는 구자열 그룹 회장 아들인 구동휘 대표이사(전무), 고려아연에선 최창걸 명예회장 아들 최윤범 부회장 등 차기 총수 후보가 나서 쟁쟁한 재계 현역 총수들과 어깨를 맞댔다. LPG 업체 E1은 기존 충전소를 활용한 수소 유통망 구축을, 고려아연은 호주 자회사 아크에너지를 통해 수소를 수입하는 사업을 계획하고 있다.
단일 기업 자격으로 서밋에 가입한 대기업 가운데는 재계 1위 삼성의 지주사 격인 삼성물산도 있다.
삼성은 그룹 차원에서 서밋에 참여하지 않았고, 그 외 14개 정회원 기업과 달리 출범 때 수소 사업을 대표하는 최고경영자(CEO)급 인물이 참석하지도 않았다. 수소기업 협의체에 '살짝 발만 담갔다'는 촌평이 나오는 이유다.
정부도 힘을 주는 수소산업을 모른채 하기도 어렵다는 점, 재계 2위 현대차가 산파 역할을 한 모임이란 점이 수소 동맹에서 삼성의 어정쩡한 자세를 만들었다는 뒷말도 나온다.
삼성은 전자를 중심으로 한 계열사들의 사업이 수소와 직접적 연관성이 적긴 하다. 특히 부생수소를 활용할 수 있는 화학 관련 계열사들은 2015년 빅딜로 한화그룹(삼성종합화학, 삼성토탈)과 롯데그룹(삼성SDI 케미칼, 삼성정밀화학, 삼성BP화학)에 넘겼다. 재계 한 관계자는 "사업적 연결고리가 약한 상황이라 삼성이 굳이 수소 협의체에 적극적일 필요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에 더해진 여러 상황적 요인도 거론된다. 총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가석방으로 출소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고, 그의 경영활동에 부정적인 시각이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또 반도체 등 주력사업 상황이 긴박한 와중이기도 했다. 총수나 총수 일가가 대표로 모인 자리인데 계열사 최고경영자가 참석하기도 마땅치 않았을 거란 해석도 안팎에서 나온다.
고정석 삼성물산 사장(왼쪽)과 류열 에쓰오일 사장이 협약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사진=삼성물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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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석 삼성물산 사장(왼쪽)과 류열 에쓰오일 사장이 협약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사진=삼성물산 제공
삼성 역시 일부 계열사가 수소사업에 발을 들이고 있다. 서밋에 참여한 삼성물산이 최근 부쩍 적극적이다. 이 회사 상사부문은 8월말 남해화학, 한국남부발전 등과 청정수소 도입을 위한 협력관계를 구축했다. 이어 지난달 한국가스공사, 현대로템 등과도 수소충전사업 합작 주주협약을 맺었고 정유사 에쓰오일과도 수소사업 파트너십을 맺었다.
이밖에도 삼성엔지니어링은 롯데케미칼과 손잡는 등 수소 관련 EPC(설계·조달·시공) 분야 신사업을 노리고 있다. 삼성중공업도 수소 연료전지 추진선 개발을 장기 과제로 두고 있다.
'아예 등돌린' LG
재계 4위 LG그룹은 수소 협의체에 아예 참여하지 않았다.
10대 기업집단(10위 농협 제외) 가운데 유일하다. LG 역시 수소사업과 접점이 뚜렷하지 않다는 게 드러난 이유다.
LG 한 관계자는 "수소 관련 사업이 없다시피하다 보니 서밋 참여를 깊이 고민하지도 않은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과거 LG에서 떨어져 나간 GS그룹이나 LS그룹에 수소와 밀접한 사업이 주로 포진해 있기도 하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사업을 들여다보면 LG가 수소 생태계에서 완전히 동떨어져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 그룹 주력인 LG화학은 부생수소 활용 여지가 많은 국내 최대 화학기업이고, 최근 LG전자가 부쩍 힘주고 있는 자동차 전장부품 사업도 수소전기차와 연결된다.
특히 LG화학의 경우 지난 4월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과 'CCU(Carbon Capture & Utilization, 탄소포집활용), 수소 에너지 등 관련 기술의 공동연구 개발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맺기도 했다. 여기에는 두 기관이
△이산화탄소 발생이 없는 그린수소 생산 △화합물을 이용한 안전한 수소 생산 및 원료 △열·전기에너지 활용 등 전주기 수소 기술을 공동 개발하는 내용도 담겨 있다.
KIST 윤석진 원장과 LG화학 CTO(최고기술책임자) 유지영 부사장(오른쪽)이 협약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사진=LG화학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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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ST 윤석진 원장과 LG화학 CTO(최고기술책임자) 유지영 부사장(오른쪽)이 협약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사진=LG화학 제공
LG는 서밋 조직을 주관한 딜로이트로부터 서밋 참여 제안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LG가 아예 서밋에 참여하지 않은 것은 최근 관계가 불편해진 현대차그룹과 SK그룹이 협의체를 주도하는 것(포스코그룹까지 3사 공동의장사)과 무관치 않다는 시각도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현대차와는 '코나' 전기차 화재로 인한 배터리 리콜 대응과정에서 관계가 다소 어색해졌고 SK와는 2년여 배터리 소송 과정에서 완전히 등을 졌다"며 "이런 점이 LG의 수소동맹 불참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관측했다. 구광모 회장으로의 세대 교체 후 LG의 '독해진' 태세가 다시 한 번 드러난 대목이었다는 해석이다. [시리즈 끝]
윤도진 (spoon504@bizwatch.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