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투자.IPO등>/탄소중립

[과속페달 탄소중립]④ 제조업 적은 선진국도 원전 가동.. 한국은 조기폐쇄.선진국, 연평균 1~2% 감축만으로 탄소중립 가능제조업. 비중 낮추고 재생에너지·원전 활용 늘려기술 확보 투자..

Bonjour Kwon 2021. 10. 11. 10:43
2021. 10. 11.

선진국, 연평균 1~2% 감축만으로 탄소중립 가능
제조업 비중 낮추고 재생에너지·원전 활용 늘려
기술 확보 투자.. "개도국 추격 허용 않겠단 의지"
문재인 정부가 2050년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한 시나리오를 이달 중 확정할 예정이다. 산업계는 정부가 제조업 위주의 국내 산업 구조, 탄소저감 관련 기술 개발에 걸리는 시간 등을 고려하지 않고 불도저처럼 밀어붙인다고 지적한다. 탄소중립과 탈원전을 동시에 추진할 수 없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에도 탈원전 의지를 꺾지 않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탄소중립 정책이 산업계에 미칠 영향과 선진국의 탄소중립 준비 현황을 살펴본다.[편집자주]

선진국이 수립한 탄소중립 로드맵의 특징은 ‘연착륙’으로 귀결된다. 이미 1990년대부터 탄소배출량이 줄어들고 있었던 상황을 활용해 앞으로 연평균 1~2%만 줄이면 2050년까지 탄소중립 실현이 가능하도록 시간표를 짰다. 여기에 재생에너지는 물론 원자력 에너지까지 발전량을 늘려가며 탄소중립 실현 수단을 총동원하고 있다. 불과 3년 전인 2018년을 기점으로 탄소중립 계획을 수립하고 탈원전까지 고집하는 한국과는 대비된다.

선진국은 한국보다 탄소중립 실현 가능성이 높은데도, 좀 더 나은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천문학적인 돈을 투입하고 있다. 김녹영 대한상공회의소 지속가능경영센터장은 “선진국들은 대규모 예산을 투입해 탄소중립 기술을 선점하려 노력하고 있지만, 한국의 경우 여전히 투자 계획이 구체화되지 않은 상황”이라며 “지금의 투자가 미래 국가·산업 경쟁력과 직결될 것”이라고 말했다.

◇ 선진국, 제조업 비중 낮고 재생에너지·원전 비중은 높아

유럽연합(EU)은 지난해 2030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를 1990년 대비 40%에서 55%로 상향조정했다. 1990년에 56억6000만톤(t)을 배출했으니 2030년에는 25만5000t까지 줄여야 한다는 뜻이다. 40년간 연평균 감축률은 2.03%다. 기준연도 대비 탄소 배출량을 0으로 만들어야 하는 2050년으로 범위를 넓혀보면 연평균 감축률은 1.7%까지 떨어진다. 영국 역시 2030 NDC를 40%에서 68%로 올렸지만 연평균 감축률은 2.88% 수준이다. 미국은 2030년까지 연평균 2.85%씩 감축해 2005년 대비 50%를 달성할 계획이다.

한국은 2030년 탄소배출 감축 목표를 2018년의 35%에서 40%로 상향조정했다. 이 경우 연평균 감축률은 4.54%로 EU보다 두 배 이상 높은 수준이다. 산업계 관계자는 “1990년쯤 탄소 배출량이 정점을 찍고 계속 감소 추세인 유럽 등 선진국과 달리 한국은 2018년에 이제 막 정점을 지났다”며 “그런데도 선진국과 비슷한 수준까지 NDC를 끌어올리는 것은 과욕”이라고 말했다. 한국처럼 최근까지 탄소 배출이 증가 추세였던 중국은 탄소중립 목표 시점을 2060년으로 잡았다.

우르즐라 폰데라이언 EU 집행위원장./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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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르즐라 폰데라이언 EU 집행위원장./AP 연합뉴스
선진국은 탄소중립에 드는 시간을 길게 잡기도 했지만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환경과 인프라 역시 탄탄하게 준비돼 있다. 가장 근본적 차이는 산업구조다. 선진국은 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제조업 비중을 낮추고 서비스업으로 전환한 지 오래다. 제조업 비중을 살펴보면 EU는 16.4%, 미국은 11.0%로 한국(28.4%)의 약 절반에 불과하다. 철강, 석유화학, 정유 등 탄소 다배출 업종 비중 역시 EU와 미국은 각각 5.0%, 3.7%다. 이 비중이 8.4%인 한국은 이들과 같은 속도로 탄소를 감축하기에 역부족인 셈이다.

한국에 비해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이 높다는 점도 선진국이 안정적이고 빠르게 탄소중립을 실현할 수 있는 비결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2019년 기준 독일과 영국의 재생에너지 발전량 비중은 각각 42%, 39%에 달하고 미국 역시 18%를 기록했다. 반면 같은 시점 한국의 재생에너지 비중은 5.5%에 불과했다. 선진국은 풍부한 일조량과 풍량 등 자연환경이 뒷받침돼 재생에너지를 늘리기 쉽지만, 한국은 지형과 기후 특성상 재생에너지 비중을 늘리기가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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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을 대하는 태도 역시 한국과는 정반대다. 선진국은 탄소중립 실현을 위해 원전이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에너지 정책에 적극 반영하고 있다. 미국은 탄소감축에 원전을 이용하겠다고 공식화했고, 영국은 지난해 발표한 녹색산업혁명 10대 계획에 원전 활용을 포함했다. 온실가스 배출량 세계 1위인 중국은 2030년까지 원전 100기 이상을 가동하겠다는 목표를 세웠고, 일본은 2019년 6.6%였던 원전 비중을 2030년까지 최대 22%로 확대하겠다는 계획이다.

반면 문재인 정부는 제9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통해 원전 설비비중을 올해 18.2%에서 2034년까지 10.1%로 축소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2050년 국내 원전 발전 비중은 현재의 3분의 1 수준인 6.1~7.2%까지 축소될 예정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 관계자는 “원전은 저렴한 가격으로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가능하면서 온실가스는 거의 배출하지 않는 무탄소 전원”이라며 “탈원전 정책의 수정 없이 2030 NDC가 법제화돼 산업계와 국민 경제에 추가적인 부담이 가중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 개도국 추격 허용 않겠다… 탄소중립 기술 확보에 수천조원 투입

기술 경쟁력 측면에서도 선진국은 앞서나가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기술수준평가에 따르면, 제조 공정 중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를 포집·활용·저장하는 기술(CCUS)은 미국이 가장 앞서있다. 미국 수준을 100으로 삼았을 때 EU는 95, 일본은 90이다. 한국은 80으로 중국(82.5)보다 뒤져있다. 친환경 바이오소재 분야에서도 미국(100)이 1위, EU(96)와 일본(90)이 그 뒤를 추격 중이지만 한국(85)은 아직 갈 길이 멀다. 폐자원을 재활용하는 기술에서는 EU가 단연 세계 최고를 달리고 있다. 일본이 95, 미국과 중국이 85이며 한국은 80이다.

기술 격차는 앞으로 더욱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 선진국은 탄소중립 기술 확보를 위해 수천조원 규모의 투자를 예고하고 있다. 2030년까지 탄소중립 기술 투자 계획을 살펴보면, 미국은 2조달러(약 2197조원), EU는 1조유로(약 1376조원)에 달한다. 일본 역시 178조원 규모의 도전적인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이 투자 규모는 연구·개발(R&D)과 인프라 구축 및 지원, 배출권과 투자기금 등이 포함된 수준이다. 반면 한국의 탄소중립 R&D 투자 규모는 지난해 기준 1조3000억원에 불과했다. 내년 탄소중립 관련 정부 예산은 11조8768억원으로, 전체 예산안의 2% 수준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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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연합뉴스
선진국은 탄소중립 기술 중에서도 필수적으로 확보해야 하는 기술을 선정해 정부 차원에서 집중 지원하고 있다. 미국 바이든 정부는 올해 2월 청정에너지 혁신 관련 대선 공약에 대한 첫 이행으로 주요 10대 기후혁신 기술을 선정하고, 미국에너지부(DOE)의 에너지 첨단연구프로젝트 사무국(ARPA-E)에 1억달러(1188억원)를 지원하는 행정명령을 내렸다. 일본 역시 2050년 혁신적 기술을 확립하기 위해 5개 분야 16개 기술을 선정하고, 이중 온실가스 배출 감축량이 크고 일본의 기술력을 활용할 수 있는 39개 테마를 설정했다. 나아가 테마별 목표, 기술개발내용, 실용화 실증개발까지 구체적인 시나리오와 실행체계를 제시했다.

반면 한국의 경우 뭉뚱그려 예산을 지원할 뿐 국가 차원에서 육성하려는 특정 기술은 보이지 않고 있다. 산업계 관계자는 “탄소중립 관련 기술은 기술개발 성공여부가 불확실하고 막대한 비용이 드는 만큼 정부의 과감한 자금 투입 및 세제 지원이 필요하다”며 “2022년부터 조성되는 기후대응기금을 탄소중립 기술개발에 적극 투입하고 기후위기 대응의 중요성을 고려해 탄소중립기술을 ‘국가전략기술’로 포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류성원 전국경제인연합회 산업전략팀장은 “선진국은 탄소중립이라는 도덕적 목표를 후발 개발도상국들의 추격을 뿌리치기 위해 활용하려는 의도가 있고, 이를 위해 기술개발에 더욱 올인하는 상황”이라며 “현 기술만으로는 탄소중립 달성 자체가 불가능해 새로운 기술 확보가 필수적인만큼, 한국도 정부 차원에서 기술 확보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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