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칼럼.논설.

진중권 .한국에서는 자유민주주의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다.여권은 정의와 상식을 회복하겠다고 했는데.▲ 그 의제가 사라졌다. 이렇다 보니 중도층의 사람들이 여권을 지지할 이유가 없다

Bonjour Kwon 2022. 11. 14. 06:52

-- 역대 대통령 중에서는 누가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하나.

▲ 박정희,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세 분이 대한민국을 만들었다고 본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산업화에 성공했다. 독재를 했지만 그 체제가 18년간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민중들의 암묵적인 동의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수평적 정권 교체를 이뤘고, 산업사회를 정보화 사회로 바꿨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한국을 수직적 구조에서 수평적 네트워크로 전환했다. 두 군사정권(전두환·노태우 정부)은 경제를 시장주도로 바꾸는 역할을 했다. 과거의 보수정권과 진보정권은 자기들에게 맡겨진 역사적 과제를 수행했다. 산업화와 민주화의 두 가지를 성공적으로 수행한 나라는 전 세계에서 한국밖에 없다.

 

-- 대학시절 사회주의를 지향했나.

▲ 그렇다. 그때에는 그게 시대정신이었다. 그런데 1980년대 후반 사회주의 몰락 이후에 독일에 가서 보니 유일하게 작동 가능한 것이 유럽 모델이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사회주의 개념이 결합하는 시스템이다. 독일의 경우 유치원부터 대학 박사과정까지 학비가 무료다. 외국인 아이들한테도 아동수당을 준다. 나는 22년 전에도 밝혔는데, 사민주의(사회민주주의), 무정부주의(자율주의), 녹색당(생태환경주의)이 우리가 지향할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 북한 사회주의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 북한은 봉건왕조다. 대학 다닐 때부터 우리(PD·민중민주계열)는 정통을 지향했다. 자본론도 읽었다. 그러나 저쪽(NL·민족해방계열)은 김일성이 솔방울로 수류탄을 만들었다고 이야기했는데, 이게 우민화다. 그것은 사회주의가 아니다. 사회주의는 노동자들의 의식을 계몽시키고 각성시키는 것이며, 노동자들을 인텔리로 만드는 것이다. NL은 멀쩡한 인텔리마저도 우매한 대중으로 만든다. 북한은 말도 안 되는 체제다.

--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은 어떻게 알게 됐나.

▲ 1989년 서울대 사회과학연구소에서 처음 만났다. 학술단체 연합회였는데, 그곳에서 조국과 함께 '주체사상 비판'이라는 책도 냈다. 당시 나는 PD(민중민주)였고 조국은 사노맹(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 소속이었다. 사노맹은 북한에 대해 비판은 하는데, 그렇게 적대적이지는 않았다. 이후 내가 동국대에서 강의할 때 연구실에 잠깐 들러서 조국을 만나기도 했다. 그다음에는 주로 트위터 등으로 의견을 주고받았다. 친구이긴 한데, 함께 술을 마시는 사이는 아니다.

 

-- 조국 사태 이후 진보는 몰락했다고 주장했는데, 무슨 취지인가.

▲ 진보가 어떻게 부정부패한 사람을 옹호할 수 있나. 우리가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진영을 만들었는데, 진영을 위해 정의를 희생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그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내가 젊었을 때 수많은 동지와 학우들이 진보적 가치를 지키기 위해 죽었다. 부정부패를 옹호한다면 그 사람들은 뭐가 되겠는가. 그들에 대한 배반이다. 상대방이 절대 악이기 때문에 자기들의 모든 것이 용서된다고 생각하고 대중을 동원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독재 정권 시절에는 진영을 옹호하는 게 중요했는데,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니다.

-- 진영논리에 빠졌다면 그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 사람은 관념으로는 목숨을 걸지 않는다. 이해관계가 걸렸을 때는 다르다. 권력을 잡게 되면 그 아래 시민단체들이 사업권을 따내고 그 밑의 출판사, 인쇄소 같은 업소들이 이익을 본다. 학계도 프로젝트 자문위원들로 연결되고 대학 자리도 자기들끼리 주고받는다. 변호사 업계도 마찬가지다. 특정 법무법인에 소송을 몰아주기도 한다. 이렇게 해서 공고한 기득권층이 형성되는 것이다. 물질적 혜택이 없는데도 진영논리에 휩쓸린다면 지력(지적능력)이 모자라는 것으로 봐야 한다.

-- 민주당은 연성 파시즘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그런 의견에 동의하나.

▲ 그들은 연성 파시즘을 하고 싶었는데, 한국의 법치주의가 그것을 허용하지 않은 것이다. 그들이 하려고 했던 것을 법원이 번번이 제동을 걸었다. 한국에서는 자유민주주의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들은 대중 선동을 해서 대중 집회를 열면 자신들이 이길 것으로 생각했으나 그렇게 되지는 않았다.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자유민주주의자들이다. 민중민주(PD) 인민민주주의, 민족해방(NL) 인민민주주의는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다. PD는 소련의 소비에트 사회주의를, NL은 북한을 지향했다. 이것에 대한 반성이 없었고 교정이 진행되지 않았다. 지적으로 게으른 것이다. 게다가 이들은 집단주의에 익숙하다. 그러다 보니 다른 의견을 냈다고 출당시키고, 올바른 이야기를 했다고 쫓아내는 일이 가능한 것이다. 권력은 선출됐기 때문에 뭐든지 해도 좋다는 사고는 과거의 히틀러, 스탈린 방식이다.

연합뉴스와 인터뷰중인 진중권 [촬영 정한솔]

-- 윤석열 정부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나.

▲ 국민들이 윤석열 대통령에 기대했던 것은 정치인이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여의도 문법에서 자유롭게, 빈 도화지에다 보수의 그림을 새롭게 그리는 것이었다. 그런데 인재라고 뽑은 것이 서울대 출신의 60세 넘은 옛 관료들, 판검사들이다. 판을 새로 짜야 하는데, 과거 MB(이명박 전 대통령) 계열로 다시 돌아갔다.

-- 여권은 새 그림을 그리기 어렵다는 것인가.

▲ 국민의 힘이 희망을 보여주긴 했었다. 나는 보수적인 사람들이 30대 이준석을 당 대표로 뽑는 것을 보면서 변화할 생각이 있는 것으로 봤다. 또 정치 쪽에서 감각이 있는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이 함께하면 되겠다 싶었다. 그러나 국민의 힘은 두 사람을 내쳤다. 특히 당 대표를 유신헌법처럼 쿠데타를 일으켜서 쫓아냈다.

-- 여권은 정의와 상식을 회복하겠다고 했는데, 이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인가.

▲ 그 의제가 사라졌다. 이렇다 보니 중도층의 사람들이 여권을 지지할 이유가 없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처럼 인혁당 사건을 통 크게 해결해주는 (국가 배상금이 과다 지급돼 배상금 일부와 지연 이자를 토해내야 했던 인혁당 재건위 사건 피해자 유가족 지연이자를 면제한 조치)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 본인이 원하는 사회는 어떤 사회인가.

▲ 우리 사회가 사회주의적으로, 생태주의적으로, 자유주의적으로 좀 더 바뀌었으면 좋겠다.

-- 야당 쪽 정치인 중에서는 누가 유망한가.

▲ 민주당의 김한규 의원이 젊은 초선인데, 스마트한 것 같다. 정의당에서는 류호정, 장혜영 등 젊은 여성 의원들이 있다.

-- 정치 평론이 아닌 실제 정치를 할 생각은 없나.

▲ 나는 권력에 대한 욕망이 없다. 권력은 다른 사람한테 내 의지를 강요하는 힘이다. 그 자체가 싫다. 권한에 따른 책임감과 윤리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그걸 해야 하는데, 나는 그런 스타일이 아니다. 지금 내가 하는 게 정치라고 생각한다.

--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는 있나.

▲ 본인 스스로 판단하고 정치인을 심판해야지, 정치인들의 도구가 돼서는 안 되다. 유튜브의 경우 사람들이 듣기 좋은 말만 하지 정말 들어야 할 말은 하지 않는다. 정치인들은 그것을 이용한다. 국민들이 자신의 시간과 비용을 정치인들에게 바칠 필요는 없다. (취재지원 정한솔 인턴기자)

keunyoung@yna.c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