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12월, 15:03www.thebell.co.kr
증권업계가 사상 최악의 보릿고개를 겪고 있다. 계속된 불황에 증권사들의 적자 행진이 지속되고 있다. 업황이 개선되면 증권사들이 살아날까. 문제는 증권사들의 실적 악화가 단순한 업황 악화에 기인한 것만은 아니라는 데 있다.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덤핑 공세'로 수수료는 무료 봉사 수준까지 낮아진 상태다. 점유율 확대를 위한 역마진도 서슴치 않는다. 이는 브로커리지 뿐만 아니라 WM(자산관리), IB(투자금융) 등 대부분 사업 부문까지 확산돼 있다.
이처럼 제살깎기 경쟁이 만연한 것은 시장의 크기에 비해 증권사 수가 과도하게 많은데서 비롯된다. 지난 2007년 금융당국이 증권업계 경쟁 촉진을 위해 증권사 신규진입을 허용한 이후 2008년 40개였던 국내 증권사 수는 2009년 47개, 2010년 49개, 2011년 50개, 2012년 51개, 2013년 6월 62개로 늘었다.
증권사들의 '파이'는 나날이 쪼그라들고 있지만 플레이어 수는 오히려 급증했다. 한 증권사 사장은 "욕탕은 좁은데 수십명 한꺼번에 들어가니 물이 금방 흐려질 수 밖에 없다"고 비유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증권사들의 대대적인 구조조정이 진행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특색이 없는, 구조적으로 수익이 나지 않는 증권사들은 퇴출 또는 인수합병(M&A) 등의 강도높은 해결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 국내 증권사 4곳 중 1곳 '적자'
금융감독원·예금보험공사 등의 자료를 토대로 국내 증권사(외국계 국내법인 제외) 41곳의 당기순이익, 자기자본, ROA, ROE, NCR 등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지난 2012 회계연도에 당기순손실을 기록한 증권사는 총 10곳으로 증권사 4곳 중 1곳은 적자를 면치 못했다.
골든브릿지·유진·한화·현대·SK·리딩·BNG·토러스·애플·한맥투자증권 등이 적자의 불명예를 안았다. 특히 골든브릿지·유진·SK·토러스·애플투자증권은 2년 이상의 적자가 지속되고 있다. 이중 만성적자를 벗어나지 못한 애플투자증권은 창립 5년만에 자진 청산을 택했다.
올들어 새롭게 적자를 내기 시작한 곳도 늘어난 양상이다. 올 1분기 총 12개 증권사가 적자를 기록했다. 이중 교보·동부·NH·아이엠·KTB·코리아에셋·KIDB증권 등 7개 증권사가 작년 흑자에서 적자로 전환했다.
최근 발표한 증권사들의 2분기(7~9월) 실적은 1분기 보다 11.1%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럼에도 2분기 적자를 낸 증권사는 26개사로 1분기 21개사 보다 증가했다. 지난 해부터 증권사들이 지점 통폐합, 인력 감축 등의 자체 구조조정을 진행해 왔지만 그 효과는 미미했던 셈이다.
◇ROE·ROA도 '뚝'
41개 국내 증권사들의 총자산은 지난 2007년 136조 8341억 원에서 작년(회계연도) 253조 9421억 원까지 두 배 가량 증가했다. 같은 기간 자기자본 역시 26조9693억 원에서 36조 9580억 원으로 크게 늘었다.
자기자본과 총자산은 늘었지만 증권사의 수익성을 나타내는 총자산순이익률(ROA), 자기자본순이익률(ROE)은 오히려 크게 떨어지는 추세다. 금융위기 전인 2007 회계연도 국내 증권사들의 ROA는 3.8%였으나 금융위기 이후 1% 아래로 뚝 떨어졌고 지난 해에는 -0.57%를 기록, 마이너스로 전환했다.
2007년 14.44%를 기록한 ROE도 금융위기 이후 2~3%대로 급락했고 2011년 -5.9%, 2012년 -2.86%로 마이너스 전환했다. 특히 대형 증권사들의 ROE는 1~3%대 수준에 불과한 실정이다. ROE는 주주지분에 대한 운용효율을 나타내는 지표로 이 비율이 3%라는 것은 100만 원을 투자해 3만 원의 수익을 냈다는 의미다.
2분기(7~9월) 코스피지수가 2000선을 넘어섰지만 거래가 부진한데다 수수료 마저 사상 최저 수준이라 수익성 악화는 여전했다. 지난 2011년 일평균 7조 원 수준이던 주식거래대금은 4조 원대로 뚝 떨어졌다.
증권사 관계자는 "고수익을 추구하는 증권사의 ROE가 무위험인 은행 이자 수준까지 떨어진 것은 그만큼 수익성이 악화됐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증권사들의 수익성은 나빠졌지만 재무건전성을 보여주는 영업용순자본비율(NCR)은 과도하게 높은 수준이다. 리스크 감수가 본령인 증권사의 자본 활용도는 오히려 떨어졌다는 말이다. NCR은 증권사의 유동성 자기자본(영업용 순자본)을 총위험액으로 나눠 얻어진 비율이다.
6월말 기준 국내 증권사들의 NCR 평균은 465% 수준으로 금융당국의 건전성 기준(150%)를 크게 웃돌고 있다. NCR이 400% 이상이어야 국민연금 거래증권사 선정시 재무건전성 점수 최고점을 받게 돼 있다보니 수익성이 악화되는 상황에서도 자본활용도가 떨어지는 실정이다.
◇62개사 생존할 수익원 없다
지금의 증권시장에서는 62개로 늘어난 증권사들이 고루 수익을 낼만한 획기적인 수익원이 없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과거 외환위기 이후 홈트레이딩시스템(HTS)은 증권업계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떠올랐다. HTS를 통해 쉽사리 주식 거래가 가능해지면서 거래대금의 상승을 가져왔다. 현재 온라인 주식매매비중은 전체 주식거래의 60% 수준까지 늘었다.
이로 인해 증권사들의 브로커리지 수익이 급증했지만 증권사들이 '제살깎기'식으로 수수료를 무료 수준까지 낮추면서 온라인 주식매매를 통한 중개 수수료 수익은 점점 박해졌다. 온라인 상에서 50회 매매를 해야 오프라인에서 한 번 매매를 한 것과 같은 수준이다.
2000년 중반부터는 적립식펀드를 통한 간접투자가 증권사들의 주요 먹거리로 부상했다. 주가가 2000선을 오르락내리락 하던 2007년 펀드 광풍이 불면서 '펀드 르네상스 시대'가 열렸다.
하지만 금융위기 이후 원금 손실에 대한 우려가 커지며 펀드 열풍도 시들해졌다. 2008년 1500만 개를 넘어섰던 적립식펀드 계좌는 절반 수준으로 줄었고, 적립식펀드 잔고는 6월 말 기준 약 54조 원으로 5년 새 30% 가량 감소했다.
2000년대 후반에는 증권사들의 지급결제서비스가 시작되면서 CMA(종합자산관리계좌) 시장이 확대됐다. 그러나 CMA 시장 역시 최근 동양 사태에 따른 이미지 실추 등으로 급속한 자금 유출이 나타나고 있다. 증권사들이 역량을 집중하고 있는 자산관리 분야도 경기침체에 따른 안전자산 선호 현상 등으로 별다른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이석훈 박사(자본시장연구원)는 "브로커리지에서 예전만큼 수익을 내기 어렵지만 여전히 매매 중개 수수료는 증권사들의 주수익원"이라며 "경기가 회복돼 매매가 늘어나기까지 증권사들이 대체할 수 있는 수익원이 없다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 자본시장 미디어 ‘thebel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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