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1월, 17:21vip.mk.co.kr
"동양그룹 사태에서 한국 금융의 단면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룹 내에서 금융업이 독자적인 영역을 갖고 영토를 개척하는 것이 아니라 그룹경영의 보완적 수단에 그쳤다는 점이 동양 사태의 근본적 원인이자 한국 자본시장의 현주소입니다."(금융투자업계 고위 관계자)
요즘 한국 금융의 화두 중 하나가 `금융전업가`다. 한국 금융의 미래 주인공은 금융전업가가 될 것이라는 신제윤 금융위원회 위원장의 신년사가 화제가 되기도 했다. 금융전업가란 산업자본과 무관하게 금융업을 본업으로 하는 금융회사를 의미한다.
이 같은 앵글을 그대로 자산운용시장으로 옮겨보자.
현재 국내 자산운용사는 총 84개다. 이 중 대부분은 대기업 그룹의 계열사이거나 은행 중심 금융지주사의 계열사다. 자산운용만을 영위하는 독립계 자산운용사는 트러스톤자산운용, 마이다스에셋자산운용, 브레인자산운용 등 10개에 불과하다.
기준을 완화해 순수 금융자본을 포함시켜도 한국투자금융, 미래에셋 등 손가락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적다. 대기업 계열사나 은행지주 계열사의 경우 순수한 `자산운용 DNA`가 무뎌질 수밖에 없다. 세계 2위 자산운용사인 뱅가드 창립자인 잭 보글은 "투자자를 주주로 가진 뮤추얼 펀드가 아닌 2중 구조의 자산운용사는 모회사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이해상충의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에 투자자의 이익이 훼손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런 연장선에서 해외로 영토를 조금씩 넓혀가고 있는 국내 자산운용사도 대부분 대기업이나 은행과는 거리가 먼 자산운용사다. 미래에셋이 국내 자산운용사 중 최초로 2003년 홍콩법인을 설립한 이후 11개국에 해외 네트워크를 구축했고, 해외 부동산 투자에서도 선구자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트러스톤은 6년여 밖에 안된 신생 운용사지만 창업 초기부터 싱가포르에 헤지 펀드 운용을 위한 현지 법인을 설립해 2008년부터 해외 투자자를 대상으로 하는 역외 펀드를 운용해왔다. 이 펀드들은 수익률이 연 평균 10%를 넘으면서 아시아시장에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특히 트러스톤은 중국 국부 펀드인 CIC와 양해각서를 체결한 데 이어 노르웨이 국부 펀드, 아부다비 국부 펀드 등 해외 투자자 자금 약 13억달러를 운용하고 있다. 한국 자산운용의 영토를 넓히기 위해서는 제2의 박현주(미래에셋 회장), 제2의 황성택(트러스톤 대표)이 더 많이 배출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미국 역시 독립계 자산운용사들이 업계를 이끌고 있다.
블랙록, 피델리티, 뱅가드, 핌코, 프랭클린템플턴 등이 대표적인 예다. 조성일 중앙대 교수는 "독립적인 의사결정으로 변화에 대한 신속한 대응과 기업가 정신에 의한 지속적인 혁신이 가능한 미국 독립계 자산운용사들과 달리 한국 자산운용사들은 다른 모기업의 `식민기업`인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이런 구조는 자산운용사들의 최고경영자(CEO)가 단기 성과와 수탁액 경쟁에만 집착하는 부작용을 초래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다른 계열 기업에서 비전문가가 자산운용사 CEO로 임명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고 CEO의 평균 재직기간이 2년여에 불과해 장기적인 발전 로드맵을 그리기 힘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한 `손톱 밑 가시` 같은 불합리한 규제들도 대한민국 자산운용사들의 성장을 가로막는 장애물로 거론된다.
지난해 한 대형 자산운용사는 수천억 원을 투자해 하와이의 한 리조트를 통째로 매입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하지만 영업용순자본비율(NCR) 규제라는 큰 복병을 만나면서 결국 인수를 포기했다.
NCR 규제란 금융투자회사 청산 시 고객이나 채권자의 손실을 방지하고자 영업용순자본을 자산이나 부채, 또는 업무에 따라 발생하는 총위험보다 더 많이 보유하도록 하는 규제를 의미한다. 하지만 문제는 해외에 투자하는 경우 투자금액이 자기자본에서 차감이 된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해외 진출 시 NCR가 낮아지는 어려움에 직면하게 된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자산운용사의 경우 고유 자금과 고객 자금을 엄격히 분리하고 있기 때문에 NCR 규제가 불필요한 측면이 있다. 미국이나 일본 등에도 자산운용사에 이런 규제는 없다"고 말했다.
펀드 면허세도 자산운용사들에는 골칫거리다. 과거 투자회사에만 부과되던 면허세가 2010년부터 법인격이 없는 펀드에도 부과되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펀드는 단순한 상품인데도 면허세를 부과하는 것은 명백한 잘못"이라며 "이 세금은 투자자들에게 전가될 가능성이 높은 데다 세금이 부과되지 않는 은행이나 보험사 등 다른 금융회사의 신상품과의 형평성에도 어긋난다"고 말했다.
개인들이 사모 펀드에 최소 5억원을 투자해야 하는 기준도 사모 펀드시장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주장이다.
현재 사모 펀드시장은 개인당 5000만원 이하 소액 투자자가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사모 펀드로 특화된 자산운용사의 경우 수익성이 급속도로 악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전문성이 부족한 감사원의 감사도 자산운용업계를 움츠러들게 하는 요인이다. 한 자산운용사 대표는 "국내 연기금의 위탁수수료는 해외에 비해 크게 낮은 수준이지만 여전히 감사원은 질적 요인에 대한 고려없이 기계적으로 자산운용사에 대한 위탁운용보수를 낮추라고 요구해 자산운용업계에 출혈경쟁을 불러일으켰다"고 지적했다. <시리즈 끝>
[특별취재팀=이은아 기자(팀장) / 손일선 기자 / 파리 = 박승철 기자 / 샌프란시스코 = 김혜순 기자 / 시드니 = 용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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