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1-21
2014년 초 M&A(인수합병) 시장에서 가장 뜨거운 매물은 단연 현대증권(대표 윤경은)이다. 현대증권을 바라보는 시선은 두 가지다. ‘현씨가 지배하고 있는 현대증권을 정(鄭)씨의 현대가(家)가 인수하느냐, 아니냐’다. 정씨의 현대가가 인수한다면 그 주인공이 ‘현대자동차그룹이나 현대중공업그룹 등, 현대가(家) 어디냐’에도 시선이 모아지고 있다.
현대증권의 인수 후보로 거론되는 곳은 다양하다. 범(凡)현대가에서는 현대자동차그룹과 현대중공업그룹이 먼저 거론되고 있다. 현대가 밖에서는 삼성증권(대표 김석)을 앞세운 삼성그룹, 금융사 M&A가 있을 때마다 등장하는 KB금융지주(회장 임영록), 그리고 몇몇 대형 증권사, 증권사를 갖고 있지 못한 롯데그룹, 파인스트리트 등 유명 사모펀드(PEF)들이 거론되고 있다.
이들 중 가장 유력한 후보는 단연 현대차와 현대중공업이다. 이 두 곳은 현재 거론되는 인수 후보 중 자금 동원력에서 가장 앞선 것으로 얘기된다. 자금력만이 아니다. △범현대가 그룹들이 지금껏 보여 온 ‘금융 사업 진출·확장 욕심’과 △현대증권의 ‘현대’라는 이름이 주는 상징성 △또 여전히 진행 중인 ‘현대가 적통 다툼’은 현대자동차그룹과 현대중공업그룹이 현대증권 인수에 적극적으로 뛰어들 이유로 분석된다. 범현대가가 현대증권 인수에 실패하거나 인수하지 않을 경우 ‘뜻하지 않게 불거질 수 있는 문제’도 거론된다. 때문에 ‘정씨가 지배하고 있는 범현대가 그룹 중 한 곳이 현대증권을 반드시 인수하게 될 것’이란 전망이 힘을 받고 있다.
현대중공업그룹 최대주주 정몽준 의원
현대증권은 어떤 곳일까. 현대증권은 자산만 18조9948억원(2013년 9월 기준, 금융위원회 자료)에 이르고 있다. 한국에서 영업하고 있는 토종 및 외국계 증권사는 62개다. 현대증권은 이 중 자산을 기준으로 미래에셋증권과 5~6위를 다투고 있다. 현대그룹 설립자 정주영씨의 7남인 정몽윤 회장이 이끄는 현대해상화재보험과 더불어 범현대가가 소유한 금융사 중 최대 규모다. 52년 전인 1962년 국일증권으로 설립됐고, 1977년 현대그룹에 편입됐다. 범현대가가 현대증권을 지배해온 역사만 37년이다. 이 중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이 사망한 2003년까지 26년간을 정씨가, 이후 정몽헌 회장의 부인인 현정은 회장이 현대그룹을 이어받으면서 지금까지 10년 넘게 현씨가 지배권을 행사하고 있다.
현대증권은 1980년대 현대건설, 현대상선, 현대자동차, 현대중공업 등 굴지의 한국 대표기업들을 거느린 당시 재계 1위 현대그룹의 자금운용에 깊숙이 관여하며 급성장했다. 1990년대 중후반에는 증권업계 3위까지 오르기도 했다.
사실 현대증권이 품고 있는 가치는 규모에만 있는 게 아니다. 국내 증권사들은 ‘고객들의 주식 거래 수수료’를 빼면 딱히 돈을 벌 수 있는 수익구조가 없다. 현대증권은 과거 재계 1위 현대그룹 계열사들의 회사채 발행·중개업무를 맡았기 때문에 국내 증권사들의 취약점인 기업 금융 경험을 조금이나마 갖고 있다. 특히 우리투자증권·KDB대우증권·한국투자증권·삼성증권 등과 함께 토종 증권사로는 다섯 곳뿐인 ‘종합금융투자사업자’ 중 한 곳이다. 신생기업 투자 및 융자 사업, M&A 업무, 증권 대여 같은 프라임브로커 역할 등 IB(투자은행) 기능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때문에 현대증권을 인수하면 증권업계는 물론 한국 자본·투자 시장 전체에서 순식간에 강자가 될 수 있다.
현대자동차그룹과 현대중공업그룹은 현대증권 인수와 관련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두 그룹은 주간조선에 상당히 다른 반응을 나타냈다. 현대자동차그룹은 주간조선에 “현대증권에 관심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현대중공업그룹은 “공식 입장을 낼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고 말했다. M&A 시장에서 “공식 입장을 말할 수 없다”는 의미는 통상 “인수에 관심이 없다”거나 “인수하지 않겠다”는 ‘부정’의 의미와는 조금 다르게 해석된다. 현대중공업그룹이 현대증권 인수전 참여 또는 인수 가능성을 부인하진 않은 것이다.
현대중공업그룹은 정주영씨의 5남인 정몽준 의원(62·새누리당)이 최대주주다. 특히 2006년 현대중공업이 현대그룹의 유일한 돈줄인 현대상선의 경영권을 공격하면서 두 그룹의 사이는 극도로 좋지 않다. 당시 현대중공업의 현대그룹 경영권 공격은 ‘현대 적통’ 중시와 ‘정씨에 의한 현대그룹 경영’이라는 정몽준 의원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06년 이후 지금까지도 현대중공업그룹과 현대그룹은 경영권을 둘러싼 지분 갈등을 계속하고 있다. 특히 현대상선 등의 이사회 때마다 우선주 발행, 증자 등 경영권과 지분 관련 안건을 두고 격한 다툼을 벌이고 있다.
현대그룹 현정은 회장
그래서인지 현대증권 M&A를 바라보는 현대중공업그룹의 시각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가장 유력한 현대증권 인수 후보로 거론되고 있음에도 지금껏 이와 관련해 아무 언급도 하지 않고 있는 이유”를 현대중공업 홍보실 김광국 부장에게 물었다. 김 부장은 “M&A라는 건 바로 (인수 결정) 전날까지도 ‘우리가 인수한다’거나 ‘인수 안 한다’는 의사를 외부에 말하지 않는다”고 했다. 더욱이 김 부장은 “분위기만 말하면, M&A를 할 때 우리가 ‘관심이 있든, 없든’ 참고로 (현대증권의 재무·영업 현황, 경영 상황 등에 대해) 조사해 볼 수도 있는…”이라는 뜻밖의 말도 했다.
물론 김광국 부장은 이 말 뒤에 조심스럽게 “금융권과 시장에서는 우리(현대중공업) 인수의지와 상관없이, 현대중공업이 돈을 좀 가지고 있을 만하다고 보는 것 같다”며 “계속 (우리를 현대증권 인수 후보로) 부각시키는 건 (돈이 있어 보이는) 현대중공업을 인수후보로 거론해 매각 가격을 높이려는 금융권의 바람 때문인 것으로 보고 있다”고 했다.
현대중공업은 중소형 증권사인 ‘하이투자증권’을 갖고 있다. 하이투자증권은 CJ투자증권이었다. 2008년 현대중공업이 인수했다. 인수 이유는 간단하다. 표면적으론 ‘금융업 진출’이었지만, 실질적으론 재계 7위 현대중공업그룹이 보유한 자산 및 투자 관리, 또 주력 사업인 조선업 자금 조달과 조선업 연계 선박금융 특화가 목적이었다는 게 시장의 정설이다.
문제는 하이투자증권이 업계와 투자 시장에서 존재감이 없다는 것이다. 투자 능력은 고사하고 리서치 능력, 영업력, 수익성에서 경쟁력이 떨어지는 것으로 평가된다. 하이투자증권의 능력으로는 현대중공업의 의중을 제대로 소화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현대증권은 현대중공업과 오너인 정씨 일가의 고민을 해소할 수 있는 대안이 될 수 있다. 김광국 부장은 현대증권과 현대중공업그룹 간 시너지 효과에 대해 “언급할 내용이 없다”고 했다.
익명을 요청한 또 다른 관계자는 “현대증권 인수전 참여나, 인수를 결정하는 건 결국 그룹 최고위층”이라며 “이들이 어떤 결정을 할지는 더 지켜봐야 하지 않겠냐”고 했다. 이 관계자는 “현대그룹과 현대중공업의 다툼을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게 아니냐”며 “현대증권 M&A도 결국 ‘기업 이익’과 ‘사업’이라는 원칙적 관점에서 판단해야 하지 않겠냐”고 했다. 현대중공업 김광국 부장에게 “현대중공업그룹이 현대증권 매각을 위한 실사·조사에 참여할 것인가”를 물었다. 그는 “아직 (제안서나 매각조건 등 공식적으로) 받은 것이 없다”며 “결정된 게 없다”고 했다.
서울 양재동 현대자동차그룹 본사
현대자동차그룹은 현대증권 인수설을 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 홍보실 권용준 차장은 “현대자동차그룹은 현대증권에 관심이 없고 필요도 없다”고 했다. 권 차장은 “우리(현대차)는 이미 HMC투자증권을 소유하고 있다”며 “HMC투자증권이 성장세다. 증권사를 추가 인수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현대자동차그룹의 이 같은 공식 입장을 액면 그대로 믿기엔 개운치 않은 점이 있다. 현대자동차그룹은 2010년 현대건설을 두고 현대그룹과 경쟁해 2011년 현대건설을 인수했다. 당시 현대건설 인수전이 열리기 직전까지도 현대자동차그룹의 공식 입장은 “현대건설 인수의사가 없다”였다. 그러다가 인수전이 시작되자 기다렸다는 듯 인수전에 뛰어들었다. 더욱이 2010년 말 채권단이 현대건설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현대그룹을 선정하자, 불과 1~2달 전까지도 “인수의사가 없다”던 현대자동차그룹이 결과에 승복하지 않고 강력히 반발했다. 결국 당시 인수전에서 정몽구 회장의 현대자동차그룹은 서울지방법원의 판단까지 가는 우여곡절 끝에 현대건설을 가져갔다.
재미있는 것은 현대건설 M&A 시작 직전까지 현대자동차그룹이 “현대건설 인수의사가 없다”고 공언했던 ‘이유’다. 당시 현대자동차그룹은 “이미 ‘현대엠코’라는 건설사를 갖고 있기 때문에 (업종이 겹치는) 현대건설을 인수하지 않을 것이고, 필요도 없다”고 했었다. 지금 “현대자동차그룹은 HMC투자증권을 갖고 있기 때문에 현대증권을 추가 인수할 필요도 없고, 인수에 관심이 없다”고 주간조선에 공식적으로 밝힌 것과 놀라우리만큼 똑같다.
재벌닷컴의 정선섭 대표는 주간조선에 “현대증권 인수 후보로 거론되는 곳은 많지만 추리면 범현대가뿐”이라며 “그중에서도 현대자동차그룹과 현대중공업그룹으로 좁혀진다”고 했다. 정 대표는 “범현대가 또는 정씨가 아닌 다른 재벌 그룹이나 금융사가 인수에 적극성을 보이면 정씨들이 이를 보고만 있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범현대가의 정씨들에게 ‘현대’라는 명칭과 정주영 회장이 일군 기업에 대한 애착은 생각 이상으로 강합니다. 범현대가, 특히 정씨가 이끄는 곳이 아닌 다른 재벌이나 금융사가 정주영 회장이 일궈놓은 기업, 특히 ‘현대’란 이름까지 들어간 기업을 인수해 가는 걸 생각조차 하지 않습니다. 그 상황이 되면 아마도 ‘뺏긴 것’이라고 생각하고, ‘우리(범현대가)와 싸우자는 것’으로 받아들일 겁니다. 다른 재벌들도 이 같은 정서를 잘 알고 있습니다.”
서울 여의도 현대증권 본점
정 대표는 이 같은 감성적 이유 외에 ‘정주영의 현대를 잇는다’는 ‘적통성’ 문제 때문에라도 정씨가 지배하는 범현대가 그룹의 현대증권 인수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했다. 이점에서 결국 ‘왕자의 난’을 통해 현대그룹 분할을 촉발한 현대자동차그룹과 ‘현대그룹 경영권 공격’에 나섰던 현대중공업그룹이 유력하다는 것이다.
정 대표는 두 그룹 중에서도 특히 현대자동차그룹의 인수 가능성을 더 높게 전망했다. 현대자동차그룹에도 HMC투자증권이 있긴 하지만 “HMC투자증권은 그룹이 원하는 자금 운용과 투자 능력은 고사하고, 어마어마한 물량으로 쏟아지는 현대차그룹 계열사들의 회사채 등을 소화할 수 있는 기업금융 능력조차 보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 대표는 “현대차 입장에서 자신들의 자금 운용과 투자를 수월하게 해줄 대형 금융사가 절실한 게 현실”이라고 했다.
정몽구 회장이 현대증권 인수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밖에 없는 알려지지 않은 이유가 있다는 시각도 있다. 19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현대그룹이 재계 1위로 성장하던 과정에서 있었던 각종 비밀과 자료들이 현대증권에 고스란히 묻혀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현대그룹은 19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건설·토목, 조선·중공업 등의 사업을 국내외에서 벌이며 성장했다. 필연적으로 국내외를 아우르는 대규모 자금 결제, 회사채 및 어음 발행·판매·회수, 자금 유치 및 투자 등의 대형 금융 조달이 뒤따를 수밖에 없었다. 이 과정에서 현대그룹 최대 금융사인 현대증권이 그룹이 필요로 하는 금융의 상당 부분을 맡아 했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 현대증권은 이 시기에 급성장했다.
정선섭 재벌닷컴 대표는 “1970년대 이후 현대그룹의 국내외 사업과 자금운용 등의 관련 자료들이 현대증권에 남아있을 가능성이 있다”며 “이 중 특히 범현대가 그룹과 정씨들 입장에서 공개되거나 남에게 넘어가기를 원치 않는 것들도 상당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정 대표는 “이것 때문이라도 범현대가, 특히 ‘적통’에 목말라 있는 정몽구의 현대자동차그룹이 현대증권을 다른 곳에 넘겨 주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지난해 말과 올해 초 증권가 지라시 등에서는 현대상선 측이 삼성증권에 현대증권 인수의사를 제의했다는 루머가 돌기도 했었다. 삼성증권 홍보팀 엄세원 과장은 “삼성증권 내 모든 곳을 확인했지만 그런 일 자체가 없었다. 사실이 아니다”라며 “삼성증권이 다른 증권사를 인수할 계획은 없다”는 입장도 밝혔다. 신한금융지주 한동우 회장 역시 현대증권 인수와 관련해 부정적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
현재 금융권에서는 현대증권 매각을 둘러싼 각종 루머가 나돌고 있다. 관심이 크다는 방증이다. 현대증권을 두고 일단 부인부터 하고 나선 현대자동차(정몽구)와 M&A는 전날까지도 의사를 말하지 않는 것이라는 현대중공업(정몽준)의 대결이 실제 벌어질지 지켜볼 일이다.
/ 조동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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