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사이트 3월5일 오후 4시10분
부실채권(NPL)이 정상채권 가격에 가까운 원금 대비 99% 값에 팔리는 ‘이변’이 일어났다. 저금리 시대에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유동성이 NPL시장에 급격히 쏠리면서 과열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5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25일 하나은행이 매각한 742억원(채권 원금기준) 규모 NPL이 733억원에 팔렸다. 원금 대비 98.8%에 낙찰된 것으로, NPL 입찰 사상 최고치다. 매입한 곳은 SBI저축은행이다.
하나은행의 NPL은 대부분 주택담보대출 등으로 회수가 쉬운 자산이 많이 포함돼 있어 상대적으로 우량한 것으로 평가받았으며, 보통 90% 초반대에 낙찰되는 경우가 많았다. 지난해 4분기 입찰 땐 96.6%에 낙찰됐다. 그렇다 해도 원금의 99%에 가까운 낙찰 가격은 ‘전무후무’하다는 게 업계 평가다.
NPL 업계 관계자는 “외환위기 이후 15년 이상 NPL 시장에 몸담아왔지만 이번처럼 높은 가격은 처음 봤다”며 “보통 80% 중반대에 낙찰되면 8~10%가량의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는데 SBI저축은행의 경우 채권원금 외 일부 이자까지 회수한다 해도 수익률이 3% 정도밖에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첫 입찰이었던 하나은행에 이어 다른 은행들이 실시한 지난 4일 NPL 입찰에서도 경쟁이 뜨거웠다. 신한은행의 713억원 규모 NPL은 연합자산관리(유암코)가 91.4% 값에 따갔다.
우리은행 NPL 입찰에선 ‘A풀’은 외환캐피탈이 92%에, ‘B풀’은 SBI저축은행이 90.2%에 낙찰받았다. 하나은행, 신한은행보다 상대적으로 회수율이 낮은 자산이 많은 우리은행 NPL은 80%대에서 주로 낙찰됐지만 이번에 처음으로 90%를 넘겼다.
NPL시장이 과열 양상을 띠는 것은 신규 투자자가 증가해서다. 은행 예금금리가 연 2%대로 떨어지고 채권 수익률도 예전 같지 않자 틈새 투자처인 NPL시장으로 몰리고 있다.
외국계 IB인 골드만삭스가 작년 하반기 기업은행 NPL을 낙찰받아 외환위기 이후 처음 등장했고, 외환캐피탈은 지난해 말 NPL 진출을 공식 선언했다. 저축은행과 자산운용사, 사모펀드운용사 등 기관투자가도 속속 진입하고 있다. 업계 1, 2위인 유암코와 우리F&I 점유율이 70~80%대에서 40% 이내로 뚝 떨어진 이유다.
그러나 NPL시장의 쏠림현상이 가속화하면서 수익률이 급락하고 수급이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자산운용사에 NPL 운용을 맡긴 연기금과 공제회도 수익률 하락을 이유로 NPL 시장 투자를 재검토하고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금융감독원은 저축은행의 NPL 투자가 급증한 것과 관련, 과도한 쏠림을 방지하기 위해 행정 지도를 하기로 했다.
■ 부실채권(NPL)
Non Performing Loan. 금융회사가 기업과 개인에게 돈을 빌려줬다가 3개월 이상 연체된 대출을 말한다. 금융회사는 3개월 이상 연체 채권을 대출원금보다 낮은 가격에 매각 또는 유동화하거나 회계상 손실 처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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