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F( 전문투자형)

송인준 IMM PE 대표 | 토종 사모펀드 자리 잡아갑니다

Bonjour Kwon 2014. 3. 10. 18:22

2014.03.10 14:39:43 입력

 

“(캐프의 경우는) 국민연금 같은 공익성 연기금들이 사모펀드(PEF)들에게 돈을 주는 이유를 잘 보여준 사례입니다.”

 

국내 사모펀드 가운데 수익률 면에서 단연 최고로 꼽히고 있는 H&Q를 이끌고 있는 임유철 공동대표는 얼마 전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경쟁사인 IMM프라이빗에쿼티(PE)를 드러내놓고 칭찬했다. IMM PE가 지난해 자동차용 와이퍼 제조업체 ‘캐프’의 경영권을 가져간 것을 두고 한 말이다.

 

캐프는 2008년 키코(KIKO) 사태로 1000억원이 넘는 재무적 손실을 본 후 2010년 IMM에서 투자를 유치했다. 지난해 5월 경영이 악화된 캐프의 최대주주로 올라선 직후 IMM은 전 오너 측과 경영권 분쟁을 겪었다.

 

IMM은 전 오너의 방만한 경영 때문에 회사가 어려워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당시 노조와 지역 사회는 ‘사모펀드 = 투기자본’으로 생각해 반발했다. 하지만 IMM은 법적으로 차분하게 대응하는 한편 직원들을 설득해 가며 이사회 중심의 투명경영을 안착시켰다. 이후 회사도 빠르게 정상화됐다.

 

라이벌도 칭찬을 아끼지 않는 IMM은 ‘맨땅에 헤딩’하며 2000년대 중반이후 시작된 토종 사모펀드 역사를 써내려 간 주역이다. 서울 역삼동 강남파이낸스센터(GFC) 5층에 자리한 IMM 본사에서 송인준 대표를 만났다.

 

옛날 얘기를 좀 해 보자. 아직도 사람들은 사모펀드하면 외환위기 직후 제일은행을 산 뉴브리지캐피탈이나 외환은행을 인수한 론스타 얘기를 한다. 쟁쟁한 외국계 틈바구니를 비집고 토종으로 살아남기 힘들었을 것 같은데.

 

일반인들 생각이 틀리지 않다. 토종들이 등장하기 시작한 2005년까지 외국계들이 ‘시원하게’ 장사 잘했다. 아, 그리고 론스타는 기업에만 투자하는 사모펀드라기보다 돈 되는 건 채권이든 부동산이든 가리지 않고 사는 벌처펀드로 봐줬으면 한다.

 

2005년 드디어 국민연금이 처음으로 사모펀드 운영회사를 뽑을 때도 외국계 유경험사 또는 금융지주 자회사를 기준으로 했다.

 

국민연금 입장에서 검증이 안 된 회사를 뽑을 수 없을 테니 당연한 일이었다. 당시 뽑혔던 곳이 H&Q아시아퍼시픽코리아와 신한PE다.

 

그리고 2년 뒤 쯤에 국민연금이 모든 벤처캐피탈(VC), 구조조정전문회사(CRC), 사모펀드를 가리지 않고 대형 3사, 중형 3사를 뽑아 각각 2000억원, 1000억원씩 자금을 쏴 줬다. 당시 우리가 처음으로 중형 3사에 낄 수 있었다.

 

국민연금의 그런 시장 주도적 역할이 없었으면 지금처럼 연기금들이 사모펀드에 투자금을 쏴주는 트렌드가 형성되기 힘들었을 것이다.

 

아무튼 IMM은 국민연금 자금을 기반으로 다른 투자자들로부터 추가로 자금을 모았다. 이때 만든 펀드는 투자액의 거의 절반을 이익으로 낼 정도로 회수도 순조롭게 잘 했다.

 

작년에는 토종 사모펀드로는 최초로 싱가포르 국영 투자회사인 테마섹 계열사 파빌리온으로부터 1800만달러의 자금을 받기도 했다.

 

10년도 안되는 빠른 시간에 토종 사모펀드가 성장한 이유가 무엇인가.

 

앞에서 말한 것처럼 국민연금의 적극적인 역할이 있었고, 또 이쪽에 강한 인재들이 있었다는 점도 강조하고 싶다. 2000년대 초반 사모펀드 경험은 없지만 기업 구조조정과 M&A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꽤 있었다. 외환위기 직전인 1996년 즈음에는 국내에서도 적대적 M&A가 처음 등장했을 정도다.

 

충격적인 일이었다. 당시 공개매수가 다수 등장했다. 외환위기 직후 1999년 벤처붐이 왔을 때 기업 구조조정전문회사(CRC)들이 많이 등장했고, 우리 회사도 CRC가 확대 개편하면서 만들어졌다.

 

외국계 사모펀드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나오고, CRC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등장하면서 토종 사모펀드들도 나름 탄탄한 인재풀을 갖출 수 있었던 것 같다.

 

최근 오비맥주 매각으로 4조원 대박을 만들어낸 글로벌 사모펀드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와 어피너티에쿼티파트너스(AEP)는 일반인들이 가진 사모펀드에 대한 인식을 뛰어넘는 과감한 경영 전략을 선보였다.

 

KKR은 오비맥주를 인수한 직후 경쟁사인 하이트주조 대표였던 장인수 사장을 영입한 데다 시설 투자에 2000억원을 쏟아붓고 마케팅 비용도 대폭 늘렸다. 론스타가 심어준 ‘먹튀’ 이미지와는 차원이 다르다.

 

 

과거 단순 지분 투자로 안정적인 돈벌이를 찾던 국내 사모펀드들도 최근 적극적인 경영 전략을 구사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던데.

 

쉽게 돈 벌던 시대는 지났다. 우리도 지난해 7월 인수한 커피전문점 할리스에 3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단행했다.

 

매장 확대를 위해서는 추가적인 ‘실탄’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외국계 기업 출신 마케팅 전문가도 영입해 브랜드 전략도 다시 짜도록 했다. 창업 1세대 같은 생각으로 인수 기업을 운영해야 기업가치를 확 끌어올릴 수 있다.

 

사모펀드 역사가 깊어질수록 비용 절감과 재무구조 변화 등 단기 수익성 위주보다는 적극적인 시설 투자와 인재 채용 같은 기업가치를 높이는 전략을 구사하는 사례가 많다.

 

미국 유수 비즈니스스쿨에서는 사모펀드가 투자한 회사들이 인수하기 전에 비해 연구개발비와 특허출원수가 증가하고, 생산규모도 늘어났다는 논문들을 발표해왔다.

 

국내 대기업들이 ‘경제 민주화’ 여론 눈치 보기, 위기 재현 가능성에 따른 현금 쌓기, 총수 구속으로 인한 사령탑 부재 등 여러 이유로 M&A 시장에서 주춤하고 있다. 반면 국내 최대 사모펀드 MBK파트너스가 자산기준으로 재계 11위에 해당될 만큼 사모펀드의 역할이 커지고 있다. 비판론자들은 사모펀드가 단기적 경영 성과에 집착하고, 나중에 비싸게 되팔아 국내 산업에 부담만 될 것이라 말하는데.

 

쥐어짜는 형식으로는 좋은 수익을 만들기 힘들다. 인수에 앞서 어떻게 하면 기업가치를 높일 지 미리 재무와 경영 전략을 만들고 인수전에 들어간다. 또 지배구조에 대해서도 신경을 많이 쓴다.

 

사모펀드가 합리적인 서구식 경영을 통해 국내 기업들에게도 긴장감을 불어넣을 수 있다.

 

국내 대기업들은 사실 캡티브 마켓(계열사 간 일감을 주고받는 것)으로 쉽게 사업을 키우지 않았나. 일부 중견기업들은 그런 대기업들을 모방하고…. 사모펀드가 인수한 기업들은 그런 대기업들과 경쟁해서 살아남는다.

 

또 사모펀드가 보여주는 이사회 중심 경영은 국내 대부분 기업의 가족 중심경영과 많이 다르다. 서로가 건전하게 경쟁하는 게 우리 사회나 국가 전체적으로도 바람직하지 않겠나.

 

대기업이 잘 키운 회사를 사업 구조조정할 때 사모펀드가 사들이고, 사모펀드가 잘 경영해온 회사를 여유가 생긴 대기업이 되사가는 건 어찌 보면 선순환이다.

 

최근 진행된 ADT캡스 인수전에는 KKR과 어피너티, 칼라일 등 쟁쟁한 글로벌 사모펀드들 사이에 토종인 IMM과 한앤컴퍼니가 경쟁했다. 짧은 시간에 많이 성장했다. 토종 사모펀드는 어디까지 진화할 것이라고 보나.

 

외환위기 이후 2000년대 중반까지 글로벌 사모펀드들은 한국 시장에 진출해 많은 이익을 냈다. 이제 우리가 외국에 나가야 할 때다. IMM도 차근차근 해외 진출 준비를 하고 있다.

 

이미 GS그룹과 손잡고 스페인 수처리업체인 이니마를 인수할 때 같이 투자하기도 했다. 우리와 잘 맞는 해외 사모펀드와 손잡기 위해 다양한 제휴 방식을 모색하고 있다.

 

아직은 우리가 세계 각국 기업의 사정을 잘 모르기 때문이다. 잘 모르는 시장에서 ‘씨 뿌리고 물 붓고 손질하려면’ 좋은 파트너가 있어야 하지 않겠나.

 

국내 대기업이 글로벌 M&A를 할 때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도록 하는 게 목표다.

 

IMM PE와 송인준 대표

 

인생이 M&A다

 

1965년생으로 서울대 경영대를 나온 송인준 IMM PE 대표는 회계사 자격증을 딴 후 1991년 글로벌 회계법인 아더앤더슨 서울에서 첫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인수합병(M&A) 자문이 주요 업무 가운데 하나였다. 이후 1995년에 국내에서는 최초로 M&A팀이 생긴 한국종합금융으로 자리를 옮겼다. 1997년 종근당에서 만든 CKD창업투자 출범 때 참여했고, 2001년에 기업구조조정 전문회사(CRC)인 IMM파트너스를 만들었다. 2004년 IMM창업투자와 합병해 IMM인베스트먼트를 설립했다. 국내 1,2호 사모펀드인 미래에셋PE와 보고펀드가 탄생한 다음해인 2006년 9월 업계 최초로 벤처캐피털과 CRC 경험을 모두 가진 IMM PE가 출범했다. 현재도 벤처캐피털 투자는 계열사인 IMM인베스트먼트에서 맡고 있다.

 

IMM PE는 최근 1~2년 사이 할리스커피를 인수하고 교보생명, 한독약품, 포스코특수강, 티브로드홀딩스에 지분투자하는 등 굵직한 딜을 연이어 성공시키면서 국내 톱클래스 사모펀드로 부상했다. 설립 이후 현재까지 13개 기업에 1조2000억원을 투자했다.

 

라틴어 ‘인 마누스 몬두스(in manus mundus)’에서 유래한 IMM이라는 사명은 “세계가 내 손에 있다”는 뜻을 갖고 있다.

 

[조시영·김효혜 매일경제 증권부 기자 사진 이승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