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8.03
[한겨레] 300만원 내고 방송서비스 가입
수익커녕 거래수수료 10%만 날려
환불 요구하자 “270만원은 가입비”
‘이의제기 않겠다’ 탈퇴 서약도 받아
신고만 하면 누구나 사업 가능
지난해말보다 10% 늘어 779곳 달해
불공정 약관 등 피해 늘어도
금융감독·분쟁조정 대상서 빠져
“법 테두리 안 끌어들여야” 지적
“워낙 유명인사인데다, 인터넷 여기저기 올라와 있는 ‘고맙다’, ‘수익률을 실현했다’ 같은 글들을 보니 더 확신이 들었다.”
윤아무개(47)씨는 지난해까지 한 증권회사 해외 지사장으로 근무했다. 지난해 개인사정으로 퇴사한 뒤, 개인 증권 매매를 시작했다. “증권 바닥은 누구보다 잘 알고있다”고 자부했지만, ‘300만원으로 100억원을 벌었고 이제 개미 투자자를 위해 헌신하겠다’는 한 유사투자자문사 대표의 말에 귀가 솔깃해졌다. 그는 주요 일간지와 방송에까지 소개된 유명인사였다. 인터넷에서 검색해보니 칭찬과 감사의 글이 넘쳐났다. 그가 운영하는 업체 카페에 들어가보니 ‘30% 수익을 내지 못할 경우 100% 회비를 환불해주겠다’는 문구까지 있었다. 윤씨는 결심을 굳히고 300만원을 낸 뒤, ‘브이아이피(VIP) 방송 서비스’라고 불리는 회원제 증권방송 서비스에 가입했다.
가입절차는 간단했다. 메일로 받은 약관을 읽고, 가입신청서에 서명한 뒤 팩스로 보냈다. 약관 내용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따로 없었다. 기대를 품고 방송에 나오는 지시를 따라 20일동안 40차례 투자했다. 대박은 커녕 5% 수익도 나지 않았다. 그는 “21번은 이익, 19번은 손실이 났는데 계산해보니 3% 수익률과 3% 손실률을 기록했고, 잦은 거래 때문에 거래 수수료로만 10% 정도를 날리게 됐다”고 말했다. 환불을 요구하자 그제야 이 업체는 약관내용을 지목하며 “270만원은 가입비였다. 회비 30만원만 100% 돌려주겠다”고 말했다. 탈퇴 과정에서 서약서도 작성하게 했다. 서약서에는 ‘(환불에 관해) 어떤 민·형사상 이의도 제기하지 않고, 온오프라인상 어떠한 불만도 제기하지 않는다. 이를 위반할 시 1억원의 손해배상금을 지불한다’고 적혀 있었다.
이 과정에서 칭찬 일색인 인터넷 글들의 비밀도 알게 됐다. ‘수익이 나지 않아 환불을 받고 싶다’는 글을 올리자 바로 삭제됐다. ‘다시 한 번 같은 글을 올리면 활동 정지가 될 수 있다’는 쪽지를 업체에서 보내왔다. 윤씨는“악의적인 비방글도 아닌데 바로 삭제됐다. 추천종목 모두가 손실이 난 날에도 돈 벌게 해줘서 감사하다는 글은 꼬박꼬박 올라왔다”고 말했다.
주로 인터넷 방송, 메신저 등을 통해 투자정보를 주고, 그 대가로 회비를 받는 ‘유사투자자문업’은 ‘투자자문업’과 달리 자본시장법에서 규정하는 금융투자업이 아니다. 이 때문에 불완전판매, 과대광고, 약관문제 등에 대해 금융당국의 제재를 받지 않는다. 허가제가 아니기 때문에 사업자등록증, 사업목적 등만 간단히 기재한 서류를 가지고 금융당국에 신고하면 누구나 시작할 수 있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현황을 파악하기 위해 간단한 신고는 하도록 하고있지만 금융업이라고 하기에는 특별한 요건도 없어 금감원이 감독하거나 분쟁을 조정하지는 않는다. 문제가 발생하면 한국소비자원을 통하거나 직접 소송을 해야한다”고 말했다. 지난 6월말 기준으로 금융당국에 신고된 유사투자자문업체는 779곳이다. 증권업계 불황에 회사를 나온 증권맨들이 하나 둘 유사투자자문업에 뛰어들면서 지난해 말보다 10% 이상 수가 늘었다.
유사투자자문업자의 애매한 법적 위치 때문에 감독이나 분쟁조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사각지대가 생겼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특히 불완전판매(충분한 설명 없이 판매), 불공정 약관 문제에 대해서는 명확한 규정이 없어 소비자원의 강제력 없는 권고에만 기대고 있는 실정이다. 김도년 한국소비자원 선임 연구원은 “소비자 입장에서는 유사투자자문이든 투자자문이든 똑같이 투자자문을 받는다고 생각한다. 특히 계약이나 환불에 관해서 금융당국이 민원을 받아주지 않으니, 소비자원으로 민원이 많이 들어오고 있다. 이에 대해 명확한 규정조차 없는 실정이라, 이들을 법의 테두리 내로 끌어들일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
유사투자자문업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출판물, 통신물, 방송을 통해 일정한 대가를 받고 투자 조언을 해주는 사업을 말한다. 고객에게 일대일상담을 해주는 것은 안된다. 특별한 조건 없이 금융위원회에 간단한 신고만 하면 할 수 있다. 현재 자본시장법은 유사투자자문업이 뭔지 정의만 하고 있을 뿐, 금융투자업으로 보고 있지 않다.
투자자문업은 자본시장법상 금융투자업에 포함되며, 진입하기 위해 엄격한 자기자본 요건 등이 필요하다. 대신 불특정 다수에게 투자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 고객에게 일대일 상담까지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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