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1.08
“대부업계는 이미 일본계 자금이 장악했습니다. 저축은행도 마찬가지죠. 최근에는 캐피탈과 렌트업체는 물론, 증권사까지 일본계 자금의 인수 후보로 거론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은행은 국내 자본이 지배할 거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요.”
최근 여의도에서 만난 한 금융권 임원의 말이다. 일본계 자금이 급격하게 세를 불리며 국내 금융업계를 장악해 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외환은행의 경우처럼 외국계 펀드에도 매각됐는데, 일본계 자금이 은행 입찰에 나설 것은 분명해 보인다”며 “국내 금융시장의 격변이 예상된다”고 우려했다.
금융업계가 물밀 듯이 밀려드는 일본계 자금에 술렁이고 있다. 이미 제3금융권인 대부업계를 장악한 일본계 자금은 이제는 제도권 금융으로 분류되는 제2금융권마저 접수할 기세다. 저축은행 상위 5개사가 모두 일본계 자금에 매각됐으며, 최근에는 캐피탈업체 인수에도 나선 상태다.
대부업·저축은행은 이미 일본계가 점령
금융권에 따르면 서민들이 주로 이용하는 대부업계는 이미 일본계 자본이 장악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내에 진출한 일본계 대부업체들의 총대부액이 이미 토종 업체들의 규모를 넘어섰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3년 말 일본계 대부업체 대부액은 총 4조9700억원(56.2%)으로 토종 업체들의 3조5600억원(40.2%)을 추월했다.
특히 업계 1위인 아프로파이낸셜대부는 총 대부액이 2조1700억원으로 압도적인 점유율을 기록 중이다. 2위 산와대부 역시 대부액이 1조2700억원이다. 반면 토종 업체 중에서 총 대부액이 가장 높은 곳은 웰컴크레디라인대부(3위)로 5000억원 수준에 그쳤다.
제2금융권인 저축은행 역시 일본계 자금들에 상위 업체들이 대거 인수된 상태다. 저축은행 업계 1위인 SBI저축은행이 대표적이다. 옛 현대스위스저축은행을 모태로 하는 SBI저축은행은 일본 SBI(소프트뱅크인터내셔날)그룹에 인수된 후 기존의 SBI 1은행부터 4은행가지 4개사를 합병해 지난해 11월 1일 통합 출범했다. SBI저축은행의 자산규모는 3조8000억원에 달한다.
사조그룹이 운영하던 푸른2저축은행은 일본 오릭스그룹에 넘어갔다. 오릭스그룹은 여기에 스마일저축은행도 인수해 운영 중이다.
지난 2012년 미래저축은행(현 친애저축은행)을 인수한 제이트러스트도 솔로몬저축은행과 HK저축은행으로부터 각각 3270억원, 1736억원 규모의 대출채권을 인수해 덩치를 키웠다. 아프로서비스그룹은 예주저축은행과 예나래저축은행을 인수한 후 ‘OK저축은행’으로 통합해 영업 중이다.
일본계 자금들이 이처럼 저축은행 인수에 적극적인 이유는 높은 이윤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저축은행중앙회에 따르면 일본계 자금에 인수된 저축은행들은 금감원이 저축은행 인수 당시 최고금리로 제한했던 29.9%의 금리에 근접한 이율로 개인대출을 하고 있다. 저축은행을 인수했지만, 법인영업보다는 대부업계에서 해왔던 개인대출영업에 집중하고 있다는 의미다.
실제 OK저축은행은 전체 가계신용대출자 중 99.4%에게 25% 이상의 고금리 대출이율(2014년 11월 기준)을 적용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친애저축은행 역시 전체 대출자의 82.2%가 25%의 고금리 대출이다. SBI저축은행의 직장인론과 스피드론은 평균금리가 각각 31.5%와 31.8%에 달한다. 소액대출을 통해 리스크는 회피하면서 고금리 대출로 막대한 이윤을 추구하고 있는 셈이다. 반면 국내 금융업체들이 운영 중인 저축은행들은 대부분 20% 미만의 금리를 적용했다.
캐피털 거쳐 증권과 은행도 정조준
일본계 자금의 확장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최근에는 리스 및 할부영업 분야로도 팽창하고 있다. 이에 캐피털업계가 긴장하고 있다. 대부업계에 머무르고 있던 일본계 자금이 제2금융권인 ‘저축은행’을 지렛대로 삼아 금융권 전반으로 몸집을 불리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6일 자산 규모 6조4000억원의 캐피털업계 2위의 아주캐피탈은 제이트러스트를 새로운 주인으로 맞이했다. 아직 인수 절차가 완료되지 않았고, 노조의 반발도 강경하지만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제이트러스트가 아주캐피탈의 새 주인이 될 것이란 게 업계의 관측이다.
금융권에서는 제이트러스트의 아주캐피탈 인수가 하나의 터닝 포인트가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 인수를 시작으로 일본계 자금들이 캐피털업체들을 인수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어서다. 실제 아프로파이낸셜은 매물로 나올 동부캐피탈 인수전에 참여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졌다. 오릭스그룹은 ‘바이코리아’ 펀드로 과거 증권업계 1위에 올라섰던 증권 명가 현대증권 인수 후보로 분류된다. 현대그룹은 오는 1월 26일 현대증권 지분 36.9%를 매각하는 입찰을 진행할 예정이다. 재계에서는 범현대가의 참여를 예상하고 있지만, 금융권에서는 국내 사모펀드(PEF) 운용사인 파인스트리트와 오릭스그룹, 그리고 중국의 푸싱금융그룹 등을 인수 후보로 거론하고 있다.
이 중에서도 오릭스그룹을 주목하는 이유는 자금력이 충분하고 결격사유가 없기 때문이다. IB업계 관계자는 “중국 푸싱그룹은 대주주 적격성 문제에서 결격사유가 발생할 수 있고, 파인스트리트는 규모가 작아 현대증권을 인수하기에는 어려울 것”이라며 “오릭스가 적정 가격 이상만 쓰면 인수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말했다.
저축은행업계 1위인 SBI저축은행은 아예 제1금융권인 은행 인수 후부로 거론되고 있다. 민영화 작업 진행 중인 우리은행이 그 후보다. 교보생명이 SBI그룹을 재무적 투자자(FI)로 삼아 우리은행 인수전에 뛰어들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금융권에서는 SBI금융그룹이 총자산 21조원의 일본 최대 온라인 금융회사인데다, 1980년대부터 국내에 진출해 국내 금융시장의 사정에 밝다는 점 등이 강점으로 꼽히고 있다. 특히 기타오 요시타카 SBI그룹 회장과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이 두터운 친분을 맺고 있다는 점도 SBI그룹이 우리금융 인수전에 참여할 것이란 근거로 작용하고 있다. SBI그룹은 그러나 “현재 어떤 논의도 한 적 없다”고 밝혔으며, 교보생명 역시 “우리은행 인수전에 참여할지는 경영위원회가 결정할 사항”이라며 미지근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반면 SBI금융그룹은 국내에서 전례가 없는 ‘인터넷 전용 은행’ 설립에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일본 최대 규모의 온라인 은행인 만큼, 국내에서도 인터넷 전문은행이 설립되면 공격적인 행보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계 자금도 국내 금융사 인수 나서
일본계 자금이 국내 금융시장에서 영토 확장을 하는 사이, 최근에는 중국 자본도 국내로 진출하고 있다. 동양증권이 대만 1위의 유안타증권에 인수된 것을 시작으로 중국의 푸싱금융그룹과 안방보험그룹이 한국 금융업체 인수에 나서고 있다. 푸싱금융그룹은 지난해 LIG손해보험과 KDB생명보험 인수전에 나섰다. 앞서 밝힌 것처럼 현대증권 인수전에 한발을 걸치고 있다. 뉴욕 맨해튼의 최고급 호텔인 월도프아스토리아호텔을 2조원 넘는 금액에 사들인 안방보험그룹은 우리 정부가 매물로 내놓은 우리은행 인수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에 앞서 지난 2011년에는 중국공상은행이 광주은행의 인수 의향을 밝힌 바 있다.
일본과 중국계 자금들이 국내 금융시장에서 영토 확장에 나서는 것을 놓고 금융권의 반응은 극명하게 엇갈린다. 정부 및 금감원은 일단 일본 및 중국 자본들이 국내 금융업체 인수를 색안경을 끼고 볼 필요는 없다는 입장이다. 한 금감원 관계자는 “자산 규모가 튼튼한 금융회사가 소비자를 위해서도 좋은 것 아니냐”며 “소비자들에게 안정적이고, 편리한 금융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면 외국 자본이라고 해서 반드시 나쁘게 볼 이유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금융업체와 시민단체들은 우려하는 모습이다. 일본계 자금들이 기업금융은 등한시하고, 소비자금융에만 치중할 경우 고금리로 인해 서민들의 지갑이 더 얇아질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금융업체 한 임원은 “외국계 자금의 첫 번째 목적은 이윤추구”라며 “자본에는 국적이 없다는 말처럼 이윤추구에만 매달리는 외국계 자본에 금융회사들이 인수되면 국내 산업계는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서종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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