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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가 출장전쟁 "우본·한전 찍고 전국일주"정부 부처·공기업 지방 이전 따라 증권사도 길바닥 업무 부담]

Bonjour Kwon 2015. 3. 21. 07:34

2015.03.21

 

[머니투데이 심재현 기자] [

 

"'1박2일'이 따로 없어요. 일주일에 한두 곳만 방문해도 전국일주입니다."

 

한 대형 증권사 법인영업부 A 팀장의 얘기다. 올 들어 업무 일정이 전국여행을 테마로 한 방송사 예능 프로그램 못지않다는 것. 1980년대부터 금융·증권의 중심지로 자리 잡은 여의도가 때 아닌 지방출장 전쟁을 치르고 있다.

 

A 팀장은 최근 세미나를 위해 우정사업본부를 방문했다. 우정사업본부는 지난해 12월 정부 부처의 지방 이전 정책에 따라 세종시로 내려갔다. 오전 8시에 회사에 출근 도장을 찍은 뒤 동료 직원과 KTX를 타고 세종시에 도착해 간단한 세미나를 마치고 서울로 복귀하니 하루가 훌쩍 지났다.

 

이 팀장이 세종시를 다녀오면서 이동 시간에 소요된 시간만 4시간이 넘는다. 출장이 반복되면서 기차 안에서 시간을 쪼개 자질구레한 업무를 보는 융통성이 늘었지만 이동 중에 틈틈이 일을 한다는 게 쉽지는 않다. A 팀장은 "말 그대로 길바닥에 시간을 버리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그나마 우정사업본부 출장이 잡힌 날은 낫다. 국내 최대 공기업인 한국전력이나 주력 자회사인 발전사에 볼 일이 있는 날이면 꼭두새벽부터 서둘러야 한다. 한전은 전남 나주로 이전했다. KTX로만 편도 3시간이 걸리는 거리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우정사업본부나 한전 방문은 그다지 품이 드는 일은 아니었다. 증권사 본사가 모인 여의도에서 우정사업본부가 있던 광화문까지는 버스로 이동해도 30분이면 충분한 데다 지하철 5호선까지 연결돼 있어 수시로 오갈 수 있었다. 한전이 있던 강남까지도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거리가 멀어졌다고 해서 안 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우정사업본부는 운용자산 100조원을 굴리는 시장 큰 손이다. 자칫 눈 밖에 났다가는 당장 실적 손실이 크다. 다른 연기금·공제회나 공기업에 미칠 영향도 생각해야 한다.

 

문제는 오는 5월 이후에는 여건이 더 힘들어진다는 것이다. 공무원연금이 제주도로 이전하기 때문이다. 내년에는 국민연금이 전북 전주로 이전한다. 국내 3대 연기금 가운데 사립학교교직원연금은 기금운용본부를 서울 여의도에 남겼지만 국민연금·공무원연금의 지방 이전과 연금 개혁 이슈 등이 맞물리면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 예측하기 어렵다.

 

교통비 부담도 만만찮다. 나주까지는 KTX 기준으로 1인당 왕복 8만원, 전주까지는 왕복 6만5000원 정도가 든다. 기차역에서 각 기관까지 교통비용 등을 감안하면 한사람이 한번 오가는 데 10만원 정도가 들어간다. 개별 증권사 입장에서 비용 처리할 수 있는 액수지만 전체 증권사 차원에서 몇 년 동안 누적될 금액을 고려하면 아쉬운 비용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A 팀장은 "한국거래소가 부산으로 내려갔을 때 서울과 부산을 오가는 직원들을 보면서 남의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비슷한 상황에 처하고 보니 보통 일이 아니다"라며 "증권사 직원들이야 업무를 위해 좀 더 품을 들인다고 생각하면 되지만 이대로 가면 한국형 금융허브 정책은 뭐가 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