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콩·옥수수·밀 등을 미리 비축해 두는 곡물비축제도 추진을 보류키로 했다.
지난 2월 국제 곡물가 불안에 대응하기 위해 적극 검토한다던 입장(본보 2월 11일, 24일자 보도)을 뒤집은 것이다.
정부는 대신 일단 현재 추진 중인 해외농업개발, 국제곡물조달시스템 구축 등을 활용해 보겠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국제 곡물시장의 변동성이 갈수록 커지는 상황에서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곡물 비축 방안을 비용 문제로 포기하는 것은 안이한 판단이라는 게 전문가들 지적이다.
◇저장창고 비용 때문에?=농림수산식품부 관계자는 6일 “곡물비축제가 필요한 측면이 있지만, 저장성이 떨어지는 곡물 보관을 위해서는 수천억원대 특수 창고를 만들어야 하는 부담이 있다”면서 “또 비상시에 대비해 비축했다 재고가 남을 경우 나올 부작용 등 효과에 비해 비용이 크다는 판단”이라고 말했다. 사실상 곡물비축제 추진을 포기하겠다는 의미다.
그러나 정부는 지난 2월만 해도 곡물비축제 추진을 위한 태스크포스(TF)까지 꾸려 3월 말까지 구체적인 운용 방법과 비축 규모 등을 결정하기로 했었다
. 당시 45일분 소비량을 비축하는 방안 등 유력안까지 거론됐다. 국제 곡물가 급등으로 국내 물가 부담까지 높아졌을 때는 강력 추진할 필요가 있다던 대책이 부처 간 논의 과정에서 비용 부담과 실익 등을 이유로 좌절된 것이다.
농식품부는 일단 농수산물유통공사(aT)가 올해 첫 삽을 뜬 국제곡물조달시스템을 통해 일종의 선물거래 방식인 베이시스 거래 방식으로 사실상의 ‘비축’을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aT는 올해 해외에서 생산되는 곡물을 조달하는 국제곡물회사를 설립, 2015년까지 옥수수·밀·콩 등 400만t을 들여온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이와 함께 민간 기업들이 해외에 진출해 직접 곡물을 생산하는 해외농업개발 사업도 곡물 확보의 수단이 된다는 입장이다.
◇“비상시 가장 믿을만한 수단은 공공비축”
=문제는 이 같은 수단들이 모두 장기적 과제인 데다 성공여부도 불투명하다는 점이다. 일단 국제곡물조달시스템 구축은 애초 정책 목표가 4대 메이저 국제 곡물회사들 과점에 따른 불합리한 점을 개선하자는 데 있다. 과점 시장을 뚫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데다 곡물비축 효과를 내려면 추가적인 재원과 시스템이 필요한 상태다.
2008년 도입된 해외농업개발 사업은 아직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특히 세계 식량 공급이 비상 국면에 달했을 때 공공비축만큼 확실한 수단도 없다는 게 전문가들 지적이다.
농협경제연구소 안상돈 박사는 “유통망을 확보하자는 곡물조달시스템 등도 좋은 시도”라면서 “그러나 최악의 상황에서는 실물을 국내에 갖고 있는 것만큼 확실한 수단은 없는 만큼 다양한 수단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조달 물량으로 확보해 놓더라도 전 세계적으로 곡물 공급량이 부족할 경우 계약이 파기되거나 조달이 어려운 일이 발생할 수 있다는 얘기다. 안 박사는 이어 “현재 석유를 비축하듯 곡물도 그와 같은 시스템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조민영 기자 my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