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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상륙한 곡물제왕 '카길', 국내 농업시장 어디로?2011-12-19 뉴시스아이즈

Bonjour Kwon 2012. 2. 5. 23:10

서울=뉴시스】이인준 기자 = 세계 곡물시장을 지배하는 ‘제왕’, 카길(Cargil)이 온다.

세계 최대 곡물 기업 카길은 지난해 11월말 충청남도와 당진군 등과 대두유지 가공공장을 세우기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당진 바닷가의 서부도 인근 5만2144㎡에 2013년까지 748억원을 들여 사료공장과 유지가공공장을 짓는다는 내용이다. 이미 부지 매입을 마쳤다. 충남도 관계자는 “지난 1년간 전기배선 문제로 공사 착공이 미뤄졌다”면서 “지난 10월 말쯤 협의를 마쳤다”고 했다. 당진군청 관계자도 “곧 공사를 시작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아시아 식량 시장의 패권을 쥐기 위한 전진기지로 한국을 택한 것이다.

지난 1987년에 국내 사료공장을 세운 카길은 이미 국내 사료시장의 큰손이다. 지난 2007년에는 퓨리나코리아와 합병해 몸집을 키웠다. 그런 카길이 다음 타깃으로 선택한 산업은 대두유 사업이다. 이는 국내 시장에 적지 않은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카길은 곡물의 저장, 수출 분야 세계 1위 기업이다. 사업 분야는 곡물 무역, 농자재, 사료, 식품뿐 아니라 금융, 금속업까지 다양하고 폭넓다. 특히 1990년대 이후 곡물을 가공해 식품, 건강보조제, 에탄올, 플라스틱 섬유 등 기술집약적인 사업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카길이 가진 무기는 곡물을 직접 취급하고 거래하는 유통회사라는 점이다. 생산기반인 원료 확보에서 경쟁력을 갖췄다. 이를 통해 생산비를 낮춰 가격 경쟁에 나서면 매출이 증가한다. 대신 카길과 거래하는 농부들은 소득이 줄어드는 처지에 놓인다. 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다. 세계 곡물 시장이 카길의 손 위에 있기 때문이다.

다만 카길이 항상 싼 값에 곡물을 파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비싸게도 판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그랬다. 우리나라는 곡물수입에서 공개경쟁입찰 방식을 따르는데 가격 급등기에는 곡물메이저의 곡물가가 평년 가격보다 올라간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메이저가 비메이저에 비해 가격과 시장 예측력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06년부터 2008년까지 우리나라가 수입한 옥수수와 밀의 가격을 분석한 결과 곡물메이저 회사에서 산 가격이 다른 회사보다 비쌌다. 곡물메이저를 통해 산 옥수수는 t당 273.9달러로 비메이저의 253.4달러보다 20.5달러 가격이 높다. 밀 가격도 곡물메이저가 t당 50.2달러 정도 높았다. 카길은 단지 곡물만 사고파는 것이 아니라 유통과정에 깊숙이 개입해 가격 결정에도 영향력을 미치는 곡물 ‘제왕’인 것이다.

카길이 국내 대두유 사업에 진출하게 되면 당장 CJ제일제당, 롯데삼강 등 식용유 제조업체와 직접 맞닥뜨리게 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일단 당장은 대두유 시장에 큰 영향을 주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미 대두와 옥수수를 수입하는 업체들이 할당관세 0%를 적용받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투자증권 이경주 애널리스트는 “기존사업자의 제품가격이 비용에 비해 충분히 낮다”며 “유통망, 브랜드 구축 등에 소요될 시간과 자금을 고려한다면 당장 국내에서 제품을 팔기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IBK투자증권 박애란 애널리스트도 “장기적으로 신규업체 등장에 따른 시장 경쟁이 심화할 것”이라면서도 “하지만 단독 브랜드로 진입하기는 어려우며, 사조그룹과의 제휴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봤다.

하지만 이번 카길의 국내 시장 진출은 그동안 없던 새로운 위협이라는 점에서 사소한 일로 받아들일 수 없는 노릇이다.

충남도 관계자는 “카길이 중국과 일본으로 가려다가 맘을 돌려 우리나라에 온 것”이라며 “아시아를 관장할 물류 기지를 한국에 세웠다는 것에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카길 등 곡물메이저들은 그동안 자유무역의 선봉장을 맡아왔다. 무역상대국의 관세와 비관세 장벽을 무력화한다. 생산비를 낮추기 위함이다. 카길은 중국의 WTO 가입에 결정적인 기여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쿠바와 브라질 등 남미 국가들의 대미무역량을 증가시키는 데도 영향을 미쳤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발효를 앞둔 상황에서 카길이 대두유 사업 진출을 준비하는 것은 럭비공처럼 어디로 튈지 전혀 짐작할 수 없다. 그렇지만 무시할 수 없는 막강한 힘인 것만은 분명하다.

또 카길이 특정 국가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지 않고 철저하게 계산하는 사기업이라는 점도 우려를 낳고 있다. 외국계 기업이기 때문에 국내 소비자들의 눈치를 볼 필요가 적다는 것이다. 그저 한국 시장을 떠나면 된다.

게다가 기업공개를 하지 않는 가족경영기업인 카길은 주주들의 입김에서도 자유롭다. 그동안 한국 시장에서 경험해보지 못한 기업형태인 만큼 쉽게 대응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카길은 1980년대 말 아프리카의 최대 밀 수입국인 나이지리아가 국내 밀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밀수입을 금지하자 미국 정부에 압력을 행사해 나이지리아에 섬유 수출을 금지시켰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또 1998년에는 당시 식량난을 겪던 북한과 밀 2000t을 수출하기로 계약했지만 북한의 대금 준비가 늦어지자 밀을 싣고 가던 배를 돌렸다. 카길은 그동안 사료 사업자로서 한국 시장에서 공생하는 모습을 보여 왔지만 앞으로가 문제다.

ijoinon@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