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7.23
기금운용위 20명 모두 자산운용과 무관한 경력
"수익률 좇다 손실 볼 우려" "정부 입김 강해질 것" 반대 목소리 만만치 않아
정부가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를 별도의 공사(公社)로 독립시키는 방안을 추진하면서 찬반 논란이 뜨거워지고 있다. 기금운용본부는 국민이 낸 국민연금 보험료를 주식·채권·부동산 등에 투자해 돈을 굴리는 부서로, 현재는 국민연금공단 내부 조직으로 되어 있다. 이 기금운용본부를 별도로 떼어내 전문성을 강화하자는 것이 정부안의 골자다. 국민연금은 최근 기금 규모 500조원을 돌파해 세계 3대 연기금으로 발돋움했다. 쑥쑥 커나가고 있는 국민연금이 개혁의 도마 위에 오른 이유는 무엇일까.
◇비(非)전문가들이 쥐고 있는 투자 결정권
전 국민의 노후를 책임진 국민연금의 운명은 앞으로 기금을 얼마나 잘 굴리느냐에 따라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88년 제도 도입 후 지금까지 국민연금 기금은 총 607조원이 조성됐는데 이 중 380조원은 국민들이 낸 보험료이고, 나머지 227조원은 이 돈을 굴려서 불린 수익금이다. 그만큼 기금운용 수익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앞으로 기금운용을 잘해서 수익률을 당초 목표보다 1%포인트만 꾸준히 높인다면 2040년까지 누적되는 초과 수익이 700조원에 이른다. 수익률을 2%포인트 높인다면 1600조원을 더 쌓을 수 있다. 이렇게 되면 2060년으로 예정된 기금 고갈 시점을 11년 늦출 수 있다.
현실은 이런 바람과는 반대로 가고 있다. 대부분의 자산을 채권과 국내 주식에 투자하는 국민연금은 금리가 높았을 때는 큰 노력을 들이지 않고도 비교적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었다. 하지만 저금리가 고착화된 이후에는 다른 해외 연기금과의 격차가 점점 더 벌어지고 있다. 국민연금은 지난해 5.25%의 수익률을 올려 나름대로 '선방'했다고 자평했다. 실제로 공무원연금(3.42%), 사학연금(2.65%), 군인연금(2.42%) 등 국내 다른 연금보다는 낫다.
하지만 눈을 세계로 돌리면 얘기가 달라진다. 일본공적연금(GPIF)과 캐나다연금(CPP), 캘리포니아 공무원연금(CalPERS)은 지난해 12.3%, 16.5%, 18.4% 등 두 자릿수 수익을 올렸다.
전문가들은 저조한 수익률의 가장 큰 이유를 지배구조에서 찾고 있다. 그래서 기금운용본부 독립 얘기가 나오는 것이다. 기금 운용과 관련된 최고 의사결정은 이사회 격인 기금운용위원회가 맡고 있는데, 위원장인 보건복지부 장관을 비롯해 각계(노동계·사용자·지역가입자·시민단체)에서 추천한 인사 등 총 20명으로 구성돼 있다. 그런데 이들 대다수가 자산 운용과 거리가 먼 아마추어들인 데다, 회의도 1년에 4~5차례 형식적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아 신속한 의사결정이 이뤄지기 어렵다.
또 기금운용본부가 공단 내 일개 조직으로 돼 있어 인사나 예산에 대한 권한이 없다보니 우수한 운용 인력을 유치하기도, 소신 있는 중장기 투자도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성일 중앙대 교수는 "선진국 연금을 뒤따라가는 뒷북 투자에서 벗어나려면 국내외 최고 전문가들이 최고의 조직 환경에서 마음껏 실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자산 운용에 특화된 독립 법인으로의 공사화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번번이 무산된 독립 방안, 이번엔 성사될까
국민연금 기금 운용 조직을 독립시키자는 의견은 노무현 정부 때부터 나왔던 얘기지만, 반대 목소리가 만만치 않아 매번 무산됐다. 기금운용위원회에서 비전문가를 배제하고 전문가 위주로 구성할 경우 가입자들의 목소리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높은 수익을 추구하다 오히려 기금 손실을 볼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실제로 금융 전문가로 이뤄진 한국투자공사(KIC)는 투자가 시작된 2007~2013년 누적 수익률이 4.02%로 국민연금의 6.33%보다 오히려 낮다. 정부와 정치권의 입김이 들어가 터무니없는 해외 투자 등이 성행한 결과다.
이 때문에 기금운용본부 공사화에 반대하는 쪽에서는 현재의 틀 안에서 제도를 약간 손보는 게 낫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가령 해외 투자 전문가들을 유치하려면 꼭 기금공사를 만들 필요 없이 현재의 임금 체계를 바꿔 높은 연봉을 주는 시스템으로 바꾸면 된다는 것이다. 반대론자들은 "기금 운용 조직을 독립시킬 경우 오히려 정부의 입김이 강해질 것"이라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이찬진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위원장은 "정부가 연금 도입 초창기부터 국민연금 기금을 가져다가 SOC사업에 투자하거나 주식시장을 떠받치는 데 사용한 적이 있다"며 "겉으로는 독립성이라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가입자 대표를 배제시켜 국민연금 기금을 정부의 쌈짓돈처럼 쓸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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