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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5-10-06
세계 환율전쟁의 역사
제1차 환율전쟁(1921∼1936년) 美 루스벨트, 환율전쟁 대단원을 열다.
1929년 대공황 촉발. 미국의 제32대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미국 상품의 수출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묘책을 내놓는다. 바로 ‘달러의 평가절하’다. 1933년 4월20일 미국 뉴욕타임스는 금본위제 이탈에 관한 내용의 기사를 1면에 실었다. 1934년 1월 달러의 평가절하를 단행하자 1온스당 20.67달러하던 금 1온스는 35달러에 육박했다. 달러 가치는 69% 추락했고 미국의 산업은 연간 10% 성장했다. 환율전쟁의 서막이 열렸다.
제2차 환율전쟁(1967∼1987년) 美 닉슨쇼크, 전세계는 혼란에 허우적대다.
베트남 전쟁과 대외원조로 미국 경제력이 곤두박질친 상황에서 국제수지까지 악화돼 달러 가치는 크게 떨어졌다. 달러 가치가 떨어지자 달러를 금으로 교환하려는 수요가 늘어나면서 미국은 다시 금과 환율에 손을 댄 것이다. 금ㆍ달러의 교환을 정지하고 수입 과징금 10%를 부과하는 등 1971년 8월15일 제37대 미국 대통령 리처드 닉슨은 브리핑에서 달러 방어 정책을 선언했다. 일시에 세계 외환시장은 폐쇄되고 미국 수출 의존도가 높던 아시아와 중남미 국가는 ‘닉슨쇼크’에 빠졌다. 엔화 가치는 달러당 360엔에서 250엔으로 뛰었고, 금값이 천정부지로 오르면서 오일쇼크로까지 이어졌다. 이에 따라 우리 건설사의 중동지역 해외지사는 1983년 말 353개, 1986년 말 260개, 1987년 말 249개로 4년 만에 104개의 지사가 문을 닫았다.
제3차 환율전쟁(1985∼1995년) ‘플라자 합의’로 합의된 환율 조작
제3차 환율전쟁의 이유는 또다시 미국의 경제불황이었다. 재정과 무역수지에서 적자를 보이던 미국은 1985년 9월22일 독일, 프랑스, 영국, 일본 재무장관과 함께 미국 뉴욕 플라자 호텔에 모여 마르크화와 엔화의 통화가치 상승을 유도하는 플라자 합의에 동의했다. 플라자 합의 이후 10년3개월 동안 달러 약세기가 지속됐다. 달러 가치는 엔화의 3분의1 수준으로, 마르크화의 절반 수준으로 급락했다. 일본은 엔고로 수출에 타격을 받았고 내수경기 부양으로 시작된 저금리 정책은 부동산 투기로 이어져 일본 은행과 기업은 줄줄이 도산하게 됐다. 우리나라는 1997년 외환위기를 맞았고 차입금 비중이 다소 높았던 554개 국내 건설사를 포함, 그룹사들이 줄줄이 파산하기 시작했다. 현대건설, 대우건설 등 대형업체 7개사는 자금난, 자재가격 급등, 동남아 시장 붕괴 등으로 인해 도산 위기에 직면했다.
제4차 환율전쟁(2008년∼) 환율 춘추전국시대 시작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미국은 1차 양적완화로 달러를 무제한으로 풀기 시작했다. 2009년 영국 중앙은행은 줄줄이 금리를 낮춰 시중 유동성을 늘렸다. 2010년 더블딥 우려로 미국 연준은 2차 양적완화를 발표하고 중국에 위안화 절상을 촉구했다. 2010년부터 2년간 국채 매입으로 양적완화를 실시해왔던 일본은 다시 2012년 유럽, 미국과 더불어 동시다발적으로 양적완화 대책을 발표했다.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일본 건설사의 신규 수주는 급증했다. 대표적으로 일본 가지마사의 연간 신규 수주액은 2009년에서 2011년까지 3년 만에 34.5%나 확대됐다. 이것도 모자라 2012년 실적이 악화되자 일본은 아베노믹스를 필두로 2013년 1월 무제한 양적완화를 선포했다.
제5차 환율전쟁(2015년∼) 중국發쇼크, 환율전쟁 다시 예고
경기 부진을 겪던 중국은 지난 8월11일 돌연 위안화 평가절하를 단행했다. 사흘간 지속된 위안화 평가절하에 따라 달러화 대비 위안화 가치는 4.6% 떨어졌다. 중국 당국의 예상치 못한 행보에 아시아 금융 시장은 패닉 상태에 빠졌고 태국 바트화, 싱가포르 달러, 필리핀 페소화 등 개도국의 화폐가치도 동조화 현상을 보이며 수년 사이 최저치로 하락했다. 일각에서는 중국의 이번 위안화 평가절하는 첫 단추에 불과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엔화 가치가 최근 3년 동안 달러화 대비 60% 떨어졌다. 미국의 경기회복에 따른 달러화 강세와 금리 인상론으로 아시아 외환시장에서의 선진국 투기 자본은 다시 빠져나갈 준비를 하고 있다.
환율전쟁의 사이클 ‘신흥국 경제 위기’… 저유가로 불확실성은 더 커졌다
환율전쟁의 결론은 ‘신흥국 경제 위기’로 마무리되고 있다. 선진국의 양적완화로 풀린 거대 자금은 신흥국 증시나 상품투자 등의 투기 자금으로 활용되거나 중앙은행에 재예치되는 경우가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일시적으로 경제를 되살린 선진국들이 유동성 조절을 위해 출구전략을 내놓으면 신흥국으로 풀렸던 자금은 다시 선진국으로 흡수된다. 일시적으로 외환이 빠져나간 신흥국 경제는 혼란 상태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이는 아시아 지역의 플랜트ㆍ건설 프로젝트 발주 위축으로 이어지는 사이클을 낳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의 경우, 1997년 우리 건설사의 아시아지역 건설 수주액은 86억3552만달러였지만 외환위기 파급이 미친 1998년에는 19억3685만달러로 1년 만에 77%나 축소됐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2008년 아시아 건설 수주액은 146억8520만달러였지만 위기가 본격화된 2009년에는 87억9307만달러로 수주액이 40% 급감했다. 그나마 글로벌 금융위기 때는 고유가로 재정을 축적한 중동 국가들이 발주를 늘렸고, 이는 해외건설업계에 호재로 작용해 회복이 빨랐다.
최근 비슷한 사이클이 계속 포착되고 있다.
파이이코노믹스 조사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선진국의 통화완화 정책으로 풀린 2조달러의 자금이 신흥국으로 유입됐고, 그중 2조달러가 중국으로 흘러들어갔다. 문제는 미국 연방준비제도 이사회가 금리 정상화를 시작하면 미국에서 신흥국으로 풀렸던 자금이 신흥국에서 이탈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 연이어 신흥국 경제도 동조화를 이루며 타격을 받게 되면 프로젝트 재원 악화라는 사태에 직면할 수 밖에 없다.
이 때문에 지난 8월에 발생한 위안화 평가절하 등 중국발 쇼크는 우리 업계가 예의주시해야 할 사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위안화 가치 폭락은 지속될 현상으로 신흥국 통화 전반에 타격을 줄 것이며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가 재연될 수 있다는 예견이 미국 해지펀드 사이에서 퍼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중국, 브라질, 터키 등 고금리 자산에서 수조원대의 달러가 빠른 속도로 빠져나가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때문에 최근 아시아에서 수주를 늘려왔던 우리 건설사에는 위기일 수밖에 없다. 이를테면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우리나라 인천공항여객터미널 공사에서도 재원부족으로 인해 부지 15만평을 10만평으로 줄여서 공사하라는 지시가 내려오기도 했기 때문이다.
해외건설협회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경제위기가 닥치면 재정수입이 줄어들기 때문에 기존에 추진하고 있던 공사를 중단하거나 향후 추진될 사업을 무기한 연기하는 경우가 나타난다”며 “외국산 자재를 결제할 때 환변동으로 인해 비용이 급증하는 현상이 일반적이라 공사비 부담이 커진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저유가가 불확실성을 키우는 데 한몫을 한다는 점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국내 건설사는 중동특수를 맞아 다행히 위기에서 빠르게 회복했다. 2003년부터 고유가로 재정을 축적해온 중동지역이 2009년부터 프로젝트 발주를 쏟아냈기 때문이다. 하지만 1년 동안 저유가가 지속되는 현재 상황에서 중동 특수는 기대할 수 없다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때문에 환율전쟁을 비롯한 저유가 상황은 해외건설업계의 불확실성을 더욱 증폭시키고 있다.
김현지 hy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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