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0929
보험시장에서 기를 못 편 보험사의 매각이 구체화된다. 장기화된 저금리로 성장성이 둔화된 가운데 수익성 악화를 견디지 못하고 사업철수를 결정한 것이다.
철수 배경엔 우선 새 회계기준 IFRS에 부합하기 위한 추가투입 자본 부담이 있다. 아울러 신시장 개척의 발목을 잡는 정부 규제를 더는 감당할 수 없어 택한 '후퇴'이기도 하다.
초기 시장 선점에 실패하거나, 마케팅 위주의 과잉 전략으로 25개사와의 수익성 경쟁에서 밀려 '기본체력(기업가치)'을 확보하지 못한 것이 사업 철수의 가장 큰 이유다. 한계 극복에 실패한 것이다. 영국 프루덴셜그룹이 그런 경우다.
프루덴셜 한국법인 PCA생명은 내년 1월부터 돌입할 매각을 앞두고 주관사를 비롯해 회계법인과 법률법인 등 자문단 선정을 준비 중이다.
'한국포기형' 보험사와는 다르지만, 투자금 회수를 앞둔 보험사의 매각도 잇따른다. 대주주를 사모펀드로 둔 ING생명과 KDB생명은 펀드만기(2017년~2018년)를 앞두고 내년 재매각을 위한 계획을 구체화할 예정이다.
20년 가까이 한국에서 두각을 내지 못한 외국계도 예전과 분위기가 다르다. '아시아 교두보인 한국 시장을 끝까지 사수한다'는 히든카드와 러브콜을 함부로 보이지 못하고 있다.
AIA생명(홍콩계)과 알리안츠생명(독일계) 한국 법인의 시장점유율을 지키기 위해 앞서 과도한 마케팅 비용을 썼는데, 이를 회수하면서 별도의 이익을 쌓기란 저성장 한국 시장에서 더는 기대하기 어려워졌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이와 함께 중국의 규제가 대폭 완화되면서, 한국 금융시장으로의 진출을 검토 중인 중국계 자본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PCA생명, 한국 진출 15년만인 내년 철수 준비
PCA생명은 2001년 영국 프루덴셜그룹이 영풍생명을 인수하면서 출범한 보험사다. 2002년 국내 금융권 최초로 '은퇴설계프로그램'을 선보였던 PCA생명은 당시 공격적인 변액보험 판매와 GA(보험대리점)와의 판매제휴를 통해 성장했다.
당시 PCA생명을 비롯한 외국계 보험사들은 일본, 홍콩 등 해외 법인간의 '제 살 깎아 먹기식' 시장점유율 경쟁인 '매출 물량공세'로 선두권 순위에 입성하고자 했다. 외국계 생명보험사 최고경영자(CEO)들에게 한국 법인 사장직은 아시아 총괄 대표로 승진하는 지름길로 인식되기도 했다.
이같은 흐름 속에서 PCA생명은 2002년 중반부터 보험설계사(FC)와 GA에 지급하는 선수당도 최고 1300%까지 대폭 확대했다. 결국 자본 부담이 심화되고 수익성이악화되면서 내실이 쪼그라들었다. 실제 외국사들은 국내 시장 진입 이후 2007 회계연도까지 우리나라 보험 시장점유율을 20.5%로 늘리며 지속적으로 점유율을 늘려갔지만, 이후 줄곧 하락하는 추세다.
이에 따라 PCA생명도 최소한의 영업만으로 사업 유지를 이어가는 상황이다. PCA생명은 2001년 프루덴셜그룹에 인수될 당시 시장점유율 0.2%(22개사 중 19위), 당기순이익 마이너스 53억원에서 현재(7월기준) 시장점유율 0.3%(25개사중 23위), 당기순이익 90억원 수준에 머물고 있다. 공격적인 영업보다 리스크 경영관리에 초점을 두고 계리전문가인 김영진 대표이사 사장이 2009년부터 PCA생명을 이끌고 있다.
글로벌 기업들이 수익성이 없는 사업체를 정리하는 쪽으로 바뀌고 있는 가운데 프루덴셜그룹도 실리적 측면에서 한국 법인을 정리하기도 결정했다. 앞서 나온 보도에 따르면 모건스탠리가 자문사로 결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시장 관계자는 “PCA생명은 매각 절차에 돌입하기 위해 현재 매각 자문단을 꾸리고 있는 상태”라며 “자문단들이 PCA생명 실사를 검토한 뒤 내년 1월경 본격적인 인수 후보 접촉에 나설 계획”이라고 말했다. 작은 규모의 보험사라 자문단 규모로 최소한으로 꾸릴 전망이다.
PCA생명이 사업 초기 한국 시장 장악에 실패한 데는 우리나라가 개발도상국 단계를 넘어서면서 우리나라 보험 시장도 성장세가 주춤한 상황이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업계 관계자는 "시장은 포화 상태에 가까워져 가는 반면 경쟁은 더욱 치열해져 국내에만 25개 생명보험사들이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고 국내 보험사의 실력과 마켓 파워도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 투자금 회수 앞둔 ING‧KDB생명, 순자산(보유계약+신계약)가치 끌어올려야
사모펀드를 대주주로 둔 보험사는 투자금 회수를 앞두고 재매각을 위한 해외 로드쇼를 내년부터 구체화한다. 이 때 보여줄 기업가치를 위해 이들 보험사는 보유계약 수준과 신시장 영업력을 신속히 쌓고 있다.
대표적인 보험사가 KDB생명이다. 산업은행은 2010년 칸서스자산운용과 옛 금호생명(KDB생명)을 인수하기 위해 사모펀드인 ‘KDB칸서스밸류PEF’를 조성했다. 이 펀드의 주요 투자자는 산은·국민연금·코리안리·금호석유화학·아시아나항공 등이다. KDB칸서스밸류PEF는 2014년 펀드 만기를 2017년 2월 4일로 연장했다.
3년 시간을 번 KDB생명은 보유계약 수준과 영업력을 키워 기업가치를 올려야 한다. 통상적으로 매각 기간(입찰제안서 송부~대주주 변경)만 약 1년 걸리는 물리적 시간 소요를 고려하면 KDB생명의 매각 작업도 내년 상반기부터 이뤄질 전망이다. 내재가치 상승을 위해 KDB생명은 온라인보험 마케팅에 주력하고 있다.
국내 사모펀드 MBK파트너스에 2013년 12월 인수된 ING생명도 투자자들에게 투자금을 돌려줘야 하는 보험사다. 당시 매각가는 1조8천억원대로 투자금 회수 시점은 MBK 인수 후 5년 이상 7년 사이로 전망된다.
문제는 ING생명 사명 사용 기간이 MBK 인수 후 5년간이라는 점이다. 투자금 회수보다, ING 사명 쓸 때 제 값 받고 파는 것이 관건이다. ING생명은 오는 2018년 12월부터 20년간(1999년~) 써온 ING 라는 사명을 간판에서 지워야만 한다. 그 때까지 주어진 시간은 약 3년 남았는데 매각 절차 기간 1년을 제외하고 2017년부터 우선협상자 선정이 현실적인 방안이다. 그전까지 기업가치를 키우는 게 관건이다.
이같은 사업 방향 속에서 정문국 ING생명 대표이사 사장은 회사 내재가치(기업가치)를 키우는 데 주력하고 있다. 설계사 채널과 기존 고객층에 적합한 새로운 보장성보험을 개발하도록 독려한 인물이다. 지난 7월 출시한 '저해지 종신보험'은 업체 처음 선보인 신개념 종신보험으로 회사 보유계약액 가치를 키우는데 일조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보험은 보험사가 전통적으로 이익을 취했던 사‧비‧이차익이 가능한 상품군이면서 설계사 채널으로 보험사 신계약 가치(생산성‧영업력) 상승과 부합하는 종목으로 분석됐다.
업계 전문가는 "매각을 앞둔 보험사는 순자산 가치를 키우려면 보유계약과 영업조직의 생산성을 키운다"며 "연금과 저축성보험은 보험 기간 후 이자를 더한 만기환급금을 주면 끝이지만, 보장성보험은 사‧비‧이차익을 통한 이익을 주기 때문에 내재가치 성장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당장에 눈에 보이는 이익과 함께 미래에 돌아올 이익(혹은 손실) 파악이 매각 보험사 평가에 핵심이란 말이다.
◇ 알리안츠생명 향방도 미지수…한국법인 우호세력 마이클 디크만 회장 은퇴
미국계 에이스생명을 비롯해 독일계 알리안츠생명, 홍콩계 AIA생명도 예전처럼 한국 시장에 무한한 러브콜을 보낼 처지는 아니다.
에이스생명은 시장점유율(0.1%) 만년 꼴치를 면치 못하고 있고 적자는 지속되고 있다. 지난해 마이너스 235억, 2013년 마이너스 205억으로 손실을 이어가고 있고, 2010년 2000명 수준이었던 설계사도 현재 800명대로 급감했다. 이마저 제대로 활동한다고 볼 수 없다.
총자산수익률((ROA)도 마이너스다. 2014년 -2.07%, 2013년 -2.64% 수준에 불과했다. 자기자본수익률(ROE)은 2014년 -22.48%, 2013년 -26.81% 이다. 영업 충실도를 보여주는 보험계약 유지율은 13회차 49.%, 25회차 35%, 37회차 37%, 49회차 29%, 61회차 20%, 73회차 18%, 85회차 25% 수준이다. 올해 초 300억원규모의 증자를 단행했지만, 300억 자본이 꼴지 보험사의 구원투수가 되줄 지는 미지수라는 판단이다.
독일계 알리안츠생명도 안심할 수는 없다. 1999년 생보 4위(MS 4%)였던 제일생명을 인수한 알리안츠생명은 현재 생보 11위(MS 2%)로 내려앉았다. 한국법인 지지세력이 사라졌다는 점도 불안요소다.
한국 알리안츠생명으로 지속적인 투자를 총괄 지휘해온 마이클 디크만 알리안츠그룹 회장(60)도 지난해 10월 알리안츠에서 퇴임함과 동시에 한국법인과의 끈을 놓았다. 후임 회장은 올리버 비이트 이사가 됐다.
한국법인 설립과 사업투자를 인정받아 2002년 12월 그룹 회장으로 승진한 디크만 전 회장은 한국법인에 대한 기대가 컸던 까닭에 알리안츠 아시아 본부를 서울로 이전하는 방안을 제안했을 정도로 한국 시장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디크만 전 회장과 같은 우호군을 잃은 한국 알리안츠생명은 앞으로는 현저한 실적 개선 없인 존립이 어려울 전망이다. 알리안츠생명 관계자는 "디크만 전 회장은 60세가 되면 은퇴하는 것이 규정으로 돼있어 거기에 맞춰 은퇴했고 몇 년후면 감사위원회장으로 다시 올 것"이라고 설명했다.
알리안츠생명 보험계약유지율은 13회차(만1년) 59%, 25회차 49%, 37회차 44% 49회차 39%, 61회차 35% 73회차 25%, 85회차 24%다.
적자가 계속된다는 점이 가장 큰 우려점이다. 1999년 한국에 진출한 알리안츠생명이 FY2002에서야 550억 첫 흑자를 냈다. 이어 적자와 흑자, 이같은 냉온탕 신세를 반복했다. 최근 실적도 적자다. 지난해 64억 순익, 2013년 514억 손실, FY2012년 321억 손실, FY2011년 446억 이익을 냈다. 올 7월 현재는 마이너스 70억이다.
AIA생명도 안심할 상황은 아니다. 지난해 853억, 2013년 835억 순익을 내기는 했지만, 집중되지 못한 다채널의 비효율성, 과도한 인력 스카우트 비용 등이 성장 발목을 잡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외국계 보험사는 기대했던 이익과 시장 입지가 줄어들면, 시장 철수를 고려할 정도로 탄력적이며, 성숙기 한국 보험시장에서 외국계 보험사는 환영받기도 어렵고, 국내사의 경쟁력이 커지면서 외국계 보험사도 노릴 마켓이 줄어들고 있다”고 진단했다.
또한 이 관계자는 “십년 이상 버텼던 외국사들이 규제의 한계에 지쳐 아시아 거점을 싱가포르, 홍콩, 중동 등지로 이동하는 경향도 없지 않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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