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핀테크(P2P)

P2P업체 대출 부실 주의보-대손·연체 늘자 허둥지둥…투자자 ‘화나요’슬금슬금 나오는 위기론   ▶태생이 전례 없어 관련 제도 미흡

Bonjour Kwon 2016. 4. 4. 14:36

2016.04.04

 

최근 누적 투자 유치 금액만 100억원을 돌파한 P2P 대출 플랫폼 회사 8퍼센트. 이용자가 늘면서 투자 피해를 호소하는 이들도 그만큼 증가 추세다.

 

지난 1월 초 K씨는 요즘 유명하다는 한 P2P 대출 플랫폼업체 상품에 투자했다.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돈을 빌리려 하는 사람은 신용등급도 아주 나쁘지 않고 계약직이지만 월급도 600만원대였다. 1500만원을 2년간 나눠 갚겠다 해서 K씨는 소액 투자를 했다. 그런데 3개월 후 연체가 발생했다. ‘그래도 수입이 있으니 곧 갚겠지’ 했지만 채무자는 그 다음 달 바로 개인회생절차를 밟아버렸다. 개인회생절차에 들어갈 경우 일종의 파산 선언이 되므로 채권 회수는 사실상 어렵게 된다.

 

K씨는 “외부 투자를 100억원 이상 받은 유명 중개업체라서 믿었다. 그런데 상환 기간이 2년이라는데 3개월 만에 이렇게 됐다. 부실 가능성이 있는 사람을 사전에 걸러낼 시스템이 과연 있기나 한 건지 의심스럽다. 더 분한 건 문제가 발생한 이후다. 향후 상환 절차가 어떻게 되는 건지 구체적인 안내도 없고 전화 한 통 못 받았다. 고객센터에 남긴 문의사항에 대해 4~5일 뒤에나 성의 없는 답변 문자 한 통 남겨놓는 행태에 지금도 속이 쓰리다”고 말했다.

 

금융권 핀테크 바람을 타고 지난해부터 주목받는 곳이 P2P(Peer to Peer·개인 대 개인) 대출 플랫폼업체다. P2P 대출은 금융기관이 아닌 온라인 플랫폼을 통한 개인 간 대출을 말한다. 이를 중개하는 곳이 P2P 대출 플랫폼업체다. 이들 업체는 개인 간 금전 거래 혹은 법인 자금 모집에 다수의 개인이 온라인, 모바일로 참여하게 만들고 수수료를 받는 게 주요 사업모델이다. 창업 1년 만에 거래액 100억원을 돌파한 8퍼센트를 비롯, 렌딧·빌리·어니스트펀드·테라펀딩·펀다·피플펀드 등 다양한 업체가 활동 중이다.

 

이들 업체 중 일부는 ‘5000만원 재원 마련을 위해 대출금 펀딩 시작한 지 70초 만에 40명이 참가 후 마감’ ‘연이율 10.5% 제공 7000만원 P2P 대출 11분 만에 마감’ 등 각종 기록을 양산하면서 중금리 대출 시장에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더불어 ‘자본 시장의 메기’ 역할을 톡톡히 한다는 긍정적인 평도 이끌어냈다.

 

중금리 시장에서 벤처기업이 두각을 나타내자 위기감을 느낀 시중은행, 저축은행 등 제1, 2금융권에서도 잇따라 관련 상품을 내놓거나 제휴에 나서고 있다. 금융정책 당국 역시 금융 활성화 차원에서 지난 1월 ‘크라우드펀딩 활성화 방안’을 발표하는 등 제도적 지원에 적극 나서는 분위기다.

 

슬금슬금 나오는 위기론

 

▶태생이 전례 없어 관련 제도 미흡

 

너무 브레이크가 없었을까.

 

각 업체마다 연체 혹은 개인회생(파산)으로 투자자 피해가 하나둘 생기면서 P2P 대출 플랫폼에 대한 우려도 점차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모 P2P 대출 플랫폼에 투자했다는 김 모 씨는 “매달 매출이 꼬박꼬박 발생한다는 가게에 투자했는데 경기가 안 좋은지 문 열자마자 얼마 안 돼 연체가 발생하더니 결국 문을 닫았다. 중개업체에 따졌더니 한동안 연락이 안 되다가 ‘점주가 나눠서 갚긴 할 건데 더 자세한 내용은 개인적으로 연락해봐라’라고 하더라. 이럴 거면 중개업체가 왜 있나 싶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이유는 복합적이다. 우선 법적인 미비다.

 

금융정책 당국에 직접 연락을 취해 P2P 대출 피해 발생 시 ‘대응 매뉴얼이 없다’ ‘고객 응대가 부족하다’ 등과 관련한 민원을 어떤 부서와 얘기해야 할지 접촉해봤다. 금융위원회 투자금융연금팀, 서민금융과 등 여러 곳을 거쳤지만 명확하게 총괄해서 관련 내용에 답해주는 부서가 없었다. 현행법상 P2P 대출 플랫폼업체는 관련법이 없어 대부업체를 자회사로 설립, 제2금융권으로 분류돼 운영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대부업은 업체가 개인에게 돈을 빌려주는 사업모델이지만 P2P 대출 플랫폼의 실제 업무는 개인 대 개인 간 돈을 빌리고 갚는 걸 사실상 대행할 뿐이다. 그러니 주무부서가 딱히 없다. 법적 사각지대에 놓인 셈이다.

 

P2P 대출 플랫폼업체가 영세하거나 전문성이 검증되지 않은 점도 문제다.

 

현행법상 모회사(플랫폼 회사)와 자회사(대부업체)로 분류해놨지만 일부 업체의 경우 거의 업무를 한 회사에서 같이 하다시피 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자회사인 대부업 법인의 인력 부족으로 플랫폼업체에서 추심, 연체 관리 업무를 같이 진행하는 경우도 있다. 이는 대부업법 위반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추심 전문인력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곳도 많다. 통상 P2P 대출 업체는 60일간 자체 추심을 진행한다고 하고 있지만, 일부 업체의 경우 추심 경험이 없는 신입사원 혹은 관련 직종에서 일해본 적이 없는 경력 사원이 추심에 가담하는 경우도 있다는 게 업계 관계자 전언이다.

 

검증시스템 역시 입길에 오르내린다. 업체 대부분은 돈 빌리러 오는 회사, 개인에 대한 심사 관련 선진화된 시스템, 다면평가 등을 강조하며 그만큼 안전하다고 홍보한다. 각 회사마다 연체 건수나 연체율이 일반 금융사와 견줘도 손색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피해를 본 금융 소비자 입장은 다르다.

 

최근 손해를 봤다는 한 투자자는 “투자 유치 안내문에 적혀 있는 생활비, 금융비용 등도 대출 고객이 작성한 내용을 기반으로 자세히 검증하지 않고 거의 그대로 보여주는 분위기다. 또 자체 신용평가 방법도 공개하지 않아 투자자의 알 권리가 제한되고 있다. 명확한 근거도 없는 자체 신용등급을 찍어놓고 신뢰할 수 있는 기준인 것처럼 투자 상품이랍시고 투자자들에게 판매하며 책임은 알아서 지라는 식에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연체율 역시 아직 업체마다 규모가 작고, 거래 건수나 액수가 종전 대형 금융사와는 비교가 안 되므로 P2P 대출 업체들이 주장하는 연체율은 의미가 없다는 게 금융업계 중론이다. 일부 업체는 부실 건수가 늘어나자 홈페이지에서 ‘부도율’ 항목을 삭제하기도 했다.

 

시장에서는 금융 브로커 주의보도 돈다. 상대적으로 검증시스템이 허술한 P2P 대출 플랫폼업체만 골라 대출 신청을 한 후 돈이 모이면 한두 달 갚는 척하다가 개인회생 신청을 유도하는 브로커가 활동 중이라는 전언이다. 이들 브로커는 1500만원 대출이 성공하면 수수료로 통상 대출액의 10~20%를 챙긴다. 돈이 필요한 사람 중 브로커가 부추겨 P2P 대출 플랫폼업체를 찾았을 경우 과연 이들을 걸러낼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지가 각 업체의 숙제가 되고 있다.

 

안전망은 없나

 

▶협회 출범, 악성 채무자 걸러내기 가동

 

물론 업체마다 자구 노력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8퍼센트의 경우 자체적으로 투자자 보호를 위한 ‘안심펀드’를 운영하고 있다. 원리금 균등 상환 방식의 대출금액 3000만원 이하 채권에 한해 해당 채권에 투자 시 투자금의 일정 부분을 안심료로 적립, 부도가 발생하더라도 원금의 일부를 보호한다. 8퍼센트 관계자는 “10만원을 투자했다면, 첫 상환월에 440원을 안심펀드에 한 번만 적립하면 돈을 빌린 사람이 갚지 않더라도 원금의 50%인 5만원을 돌려받게 된다”고 설명했다. 어니스트펀드의 경우 연체가 30일이 넘어가면 협력업체인 SCI평가정보가 전문적인 회수 절차를 진행하도록 구조를 짰다.

 

종전 금융권과 협력을 통해 소비자 보호 안전망을 강화하는 사례도 있다.

 

미국에서는 이미 웹뱅크(Webbank)가 대출을 취급하고 자금 관리, 송금 등은 시중은행 API를 통해 운영한다. 이처럼 미국에서는 1금융권과 P2P 대출 플랫폼업체 간 협업이 주요 트렌드다. 국내에서는 피플펀드가 전북은행과 손잡고 조만간 관련 상품을 선보일 예정. 투자자 모집은 피플펀드가 하고 전북은행이 대출을 시행하는 방식이다. NH농협은행도 B2P(기업 대 개인)회사인 비욘드플랫폼서비스와 제휴를 맺고 기관투자자의 투자금을 담보로 현금서비스, 카드론 등 기존의 고금리 카드 대출을 대환하는 상품을 기획중이다.

 

29세대 이하 부동산에만 크라우드펀딩으로 투자금을 모으는 테라펀딩의 경우 시중은행 대출 안전장치를 뒀다. 펀딩투자 방식은 다음과 같다. 4가지 상환재원(대환대출, 매매, 전월세, 경(중간점)공매) 조건을 모두 통과한 물건에 대해서만 대출이 승인한다. 투자금의 경우 건물이 준공되면 분양대금으로 투자금을 상환한다. 만약 분양에 실패하면 투자자는 어떻게 될까. 테라펀딩 관계자는 “준공 후 시중은행의 대출을 받아 상환하는 식으로 추가 안전장치를 갖췄다”고 설명한다.

 

여러 업체를 돌아다니며 돈을 빌리려는 사람을 걸러내는 시스템도 조만간 가동할 예정이다. 8퍼센트 등 7개 회원사를 둔 한국P2P금융플랫폼협회가 출범하는데 업체 간 중복, 악성 채무자 정보 공유를 통해 소비자 보호를 최우선 과제로 둘 방침이다.

 

이효진 한국P2P금융플랫폼협회장(8퍼센트 대표)은 “회원사 중 특정 업체가 문을 닫았을 경우, 제3의 관리 대리인이 채권을 이양받아 만기 시점까지 관리하도록 해 투자자들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시민단체인 금융소비자원의 조남희 대표는 “금융사에 있어 신뢰는 기본이다. 벤처업체다 보니 시행착오가 많을 수 있지만 소비자 보호 부문에선 적당히 용서하고 넘어갈 수 없다. 당장 법이 마련되기 힘들다면 금융정책 당국이 다른 소비자 보호 수단이 적용되도록 업계, 기업을 지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대윤 피플펀드 대표는 “정보량이 부족하거나 잘못된 평가를 하는 기업에는 자연스럽게 투자자가 덜 몰릴 것으로 보고 있다. 여러 사건이 터질 수는 있겠지만 일정 기간이 지나면 시장에서 어느 정도 옥석 가리기가 될 것”이라고 조심스레 보탠다.

 

[박수호 기자 suhoz@mk.co.kr / 사진 : 윤관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