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Farmland Fund/곡물사료 엘리베이터

동남아시아를 다시 보자/김재수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사장

Bonjour Kwon 2012. 10. 11. 08:44

영국의 신경제재단(New Economics Foundation)은 최근 세계 151개국을 대상으로 삶의 만족도와 기대수명, 환경오염 등을 평가해 국가별 행복지수(Happy Planet Index)를 발표했다. 1위는 코스타리카, 2위는 베트남이었다. 국내총생산(GDP) 1위인 미국은 하위권인 105위였고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서구 주요 선진국들도 대부분 40위권에 머물고 있으며 우리나라는 중간수준인 63위이다. 반면에 방글라데시, 인도네시아, 태국 등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대부분 20위 안쪽에 자리하고 있다.

필자는 최근 우리 농식품 수출 촉진과 국제 곡물가격 상승에 대비한 대책 마련을 위해 동남아시아를 다녀왔다. 잘 알다시피 베트남, 인도네시아, 캄보디아 등 동남아 주요 국가들의 경제는 우리나라의 1960년대나 1970년대 수준이다. 그러나 이들 지역의 천연자원이나 넓은 땅은 식량생산기지로서의 무한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사람들도 활력이 넘친다.

아직 품종이나 재배기술 등 영농기술이 많이 낙후되어 있고 배수 개선, 경지 정리 등 농업 기반시설도 매우 열악한 것이 동남아지역 농업의 공통적인 현실이다. 그러나 기후나 농지면적, 인력 등에서 향후 발전 가능성이 보였으며 우리의 기술 및 자본과 잘 결합한다면 성공적인 국제협력 모델을 구축할 가능성도 있다고 여겨진다.

특히 동남아가 우리에게 중요한 이유는 잠재적 곡물수입처로서의 역할이다. 동남아시아는 열대와 아열대 기후에 속하기 때문에 쌀을 비롯한 여러 작물을 3모작하고 있어 농작물 생산증대 가능성이 매우 높다. 우리가 동남아에서 안정적인 곡물 조달 시스템을 구축한다면 세계적인 곡물 위기에 대비할 수도 있다.

우리나라는 세계 5위의 곡물수입국이다
. 지난해 수입량은 1446만t, 금액은 53억 달러에 이른다. 이 중 60%인 870만t이 사료곡물이다. 국내산 양질 조사료(粗飼料) 공급비율이 35% 정도로 낮아 많은 물량의 사료곡물을 해외 수입에 의존한다. 국제 곡물가격 상승은 바로 사료가격 상승으로 이어져 축산농가의 부담이 증대된다.

국내 사료곡물의 해외수입이 불가피한 현 시점에서 동남아 지역의 활용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현지 장기 계약재배, 해외기지 건설 등 다양한 방안을 추진해야 특정 국가 의존도를 줄일 수 있고 국제곡물가격 상승에 대비할 수 있다.

그러나 해외곡물의 안정적 확보는 간단하지 않다. 그간 동남아, 연해주 등에 많은 기업이 참여하여 농지 개발과 곡물 생산을 해왔으나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지난 4년간 11개국에 28개 업체가 해외 농업 개발을 실시하였으나 국내 도입량은 0.4% 수준에 불과하다. 경제성 분석, 유통망 구축 등 체계적인 대응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미흡한 성과를 거울삼아 면밀한 시장분석, 유통망 확보, 사회간접자본(SOC) 구축, 인력 및 기술 개발 등 종합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는 동남아 국가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6·25전쟁 파병, 베트남전 참전 등 역사적으로 우리나라와 깊은 연관을 맺고 있는 지역이 동남아시아다. 최근 우리 농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다문화가정의 주류도 동남아 국가이다. 한류도 동남아 지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종자, 비료, 농기계 등 우리의 우수한 영농기술과 현지 생산, 유통망이 잘 결합된다면 획기적인 생산 증대를 기할 수 있다. 필자가 농촌진흥청장으로 재직할 때 베트남, 캄보디아, 미얀마 등 동남아 여러 나라에 해외농업기술센터(KOPIA, Korea Project on International Agriculture)를 설치하여 현지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았다. 이 외에도 유전자원 교환, 농업자문관 파견, 농식품 인력 교류협력 등 다양한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

동남아시아는 다가오는 곡물 위기에 대비하여 우리의 식량안보를 튼튼히 하는 후방 병참기지가 되어야 한다. 우리 농업 발전과 식량 안보, 그리고 세계 속 한국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서 동남아 국가에 대한 교류협력을 강화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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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시아문> 수염이 석 자라도 먹어야 산다

  글로벌 곡물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주요 곡물 수출국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밀 등의 수출 중단에 나선데 이어 세계의 농장이라고 불리던 중국마저 최대 식량 소비국으로 바뀌고 있다. 칠레 인근 태평양에서 발생한 라니냐(해수 장기 저온 현상)가 연말쯤 활동이 가장 강해질 것으로 예상되면서 남반구 주요 경작지에도 대규모 가뭄이 예고되고 있다. 중국도 남부지역에 내린 폭우와 홍수 피해로 쌀과 면화 수확량이 급격히 감소한 상태다.

  최근 식량부족과 가격상승의 주범 중 하나로 바이오 연료 개발이 지목되고 있다. 옥수수 등으로부터 바이오디젤을 생산하면서 식량이 연료로 전용돼 식량부족현상을 가속화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세계 곡물시장의 급격한 환경 변화는 우리로선 그다지 반가운 소식이 아니다. 인간이 먹고 사는 중대 사안이다 보니 각국의 ‘식량 안보 전쟁’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웃 일본의 경우, 한정된 농지면적을 감안해 지난 1960년대부터 식량 확보에 힘써 왔다. 그 결과 곡물 유통업에서 큰 성공을 거뒀다. 이를 이끈 건 우리 농협격인 일본 전농(全農)이다. 1978년 자회사 ‘젠노 그레인’이란 곡물회사를 설립한 뒤 1988년 미국계 곡물기업인 `CGB`를 인수, 미국 중부 곡창지대-미시시피강 유역-뉴올리언스 항구로 이어지는 거대 벨트를 보유하게 됐다. 이를 발판 삼아 젠노 그레인은 현재 일본 곡물 수입량의 30%를 취급하고 있다. 특히 곡물 가격이 가장 급등했던 2008년 여름, 사료원료를 시세보다 무려 29%나 회원사에 공급함으로써 국제 곡물시장의 충격을 줄여주는 방파제 역할을 톡톡히 했다.

  사실 우리나라의 식량 자급률은 심각한 수준이다. 지난해 기준으로 51.4%에 불과하다. 주식인 쌀 자급률은 100%에 가까우나, 보리(44.3%), 콩(32.5%), 옥수수(4%), 밀(0.9%) 등은 수입 의존도가 매우 높다. 그야말로 ‘식량 빈국’인 셈이다.

  이에 우리 정부가 식량 확보를 위해 곡물회사를 설립키로 했다. 이른바 ‘한국판 카길(Cargill)’이다. ‘세계의 밥상 지배자’로 불리는 카길은 다국적 농산업 기업으로 연 매출이 900억달러, 우리 돈으로 100조원에 달한다.

  우선 aT(농수산물유통공사)는 내년에 미국 현지법인을 설립키로 했다. 이 회사를 통해 미국 현지의 옥수수, 밀, 콩 등 주요 곡물을 직접 수입해 오거나, 해외 식품가공회사 등에 판매한다는 계획이다. 나아가 오는 2020년까지 주요 곡물 수입량(1400만톤)의 30%인 400만톤을  조달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국제 메이저 곡물 기업들의 영향력이 적은 브라질, 우크라이나, 연해주 등지에는 대규모 식량생산기지도 만들어진다. 국제곡물기업이 설립되면 약 2조531억원의 도입가격 인하 효과가 있을 것으로 정부는 기대하고 있다.

  곡물을 싼값에 확보해 식량안보를 지켜야한다는 큰 틀에 이의를 제기하는 이는 많지 않을 듯싶다. 하지만 일부 반대 목소리에도 정부는 귀를 기울여야 한다. 내용인즉 수입기반 확보와 함께 ‘국내 자급률 향상’에도 소홀함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세계 곡물 가격이 아무래 춤을 춰대도 우리 시장은 그 영향권에서 한 발짝 비켜서 있을 수 있다는 논리다.

  아무튼 식량 주권은 반드시 지켜내야 한다. ‘수염이 석자라도 먹어야 산다’는 말도 있지 않던가.

장진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