헐값에 사들인 채권 적극 회수
유암코·우리에프앤아이 '고수익'
메리츠종금 등 사업 참여 모색
불황의 늪이 깊어질수록 성장 속도가 빨라지는 회사들이 있다. 원리금 회수가 불투명한 채권을 헐값에 사들인 뒤 적극 회수하는 부실채권(Non-Performing Loan) 관리회사가 대표적이다.
국내 NPL 시장 선두업체인 연합자산관리(유암코)와 우리에프앤아이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최고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2000년 대우사태, 2003년 카드사태 이후 얼어붙었던 NPL 시장이 급성장한 덕분이다.
썩은 고기를 먹는 대머리 독수리의 습성에 비유해 ‘벌처(Vulture)펀드’라고 불리는 해외 펀드도 대부분 철수, 위협적인 경쟁자도 사라졌다.
이 같은 분위기에 힘입어 2009년 한시조직으로 설립된 유암코는 지난달 임시주주총회를 열고 사업 기간을 2019년까지 5년 더 연장키로 했다. 장기적인 사업계획 수립이 가능해지면서 오는 13일에는 설립 후 최초로 만기 5년짜리 장기 회사채도 발행키로 했다.
○이익 ‘곱절’ 신용등급 ‘상향’
NPL 관리회사들은 최근 불황 장기화에 따른 자산 및 수익 증가, 신용등급 개선 효과를 누리고 있다.
대부분의 기업이 실적악화로 고전하는 것과 대조적인 모습이다. 2000년대 초·중반 왕성하게 활동했던 해외 벌처펀드 운용사인 허드슨어드바이저스코리아(론스타 계열), 에이지스코리아(도이치뱅크 계열) 등이 철수한 상황에서 시장 성장에 따른 수혜가 집중된 덕분이다.
국내 대형은행 6곳이 공동출자로 설립한 유암코는 올 상반기에 반기 기준 사상 최대인 624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설립 이듬해였던 2010년 연간 영업이익 187억원의 3배를 웃돈다. 총자산도 올 상반기 말 3조9855억원으로 같은 기간 2배로 급증했다. 이성규 유암코 사장은 “당초 사업계획 대비 NPL 인수물량이 늘어난 덕분에 올해 목표로 했던 당기순이익 860억원을 초과 달성할 전망”이라고 말했다. 그는 연간 내부 수익률은 세전 16%, 세후 12%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
우리은행 자회사인 우리에프앤아이는 올 상반기에 작년 한 해 영업이익의 60%(265억원)를 벌어들였다. 또한 수익성 개선에 힘입어 단기신용등급(A1)은 두 계단 오르고 장기등급(A+)도 ‘긍정적’ 전망을 부여받았다.
NPL 관리회사들은 헐값에 채권을 사들인 뒤 적극적으로 회수에 나서 이익을 낸다. 경기가 부진하면 회수율은 떨어지지만 싸게 매물을 많이 사 모을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난다.
유암코 관계자는 “건설업과 조선업의 구조조정, 아파트 가격 하락과 경기침체에 따른 가계부실 증가로 NPL 잔액이 늘어나는 추세”라며 “바젤III(은행 자본 건전화 방안)와 국제회계기준(IFRS) 도입도 은행들의 부실채권 매각을 촉진하고 있어 사업 전망이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최근 NPL 평균 매입가격은 대출채권 원금 대비 약 60%, 향후 5년간 예상 회수율은 매입가격 대비 110%로 추정했다.
○사업확장 자신감 커져
유암코는 오는 13일 설립 후 처음으로 3000억원 규모의 장기회사채(3, 5년 두 종류 만기)를 발행할 예정이다. 안정적인 시장 성장 덕분에 자금 스케줄을 더 길게, 대규모로 짤 수 있게 된 것이다. 앞서 발행한 회사채 만기는 대부분 1년6개월이었다.
원래는 5년 동안만 영업할 계획으로 설립됐으나 2014년 기업상장(IPO)을 추진, 상시 기업으로 전환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투자은행(IB) 업계 관계자는 “처음 설립할 때만 해도 장기적인 영업성과를 기대하지 않았는데, 그만큼 NPL시장 상황이 좋아졌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유암코의 성장은 경쟁사들의 NPL 시장 진입도 부추기고 있다. 메리츠종금, 미래에셋, 동부증권과 일부 저축은행들이 새롭게 참여해 사업기회 확대를 모색 중이다.
한편 국내 은행들의 NPL 보유 규모는 올 들어 다시 증가 추세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10년 24조8000억원에 달했던 은행 보유 NPL은 2011년 18조8000억원으로 줄었다가 올 상반기 말 20조8000억원으로 늘어났다.
유암코 관계자는 “일부 산업의 실적악화가 지속돼 앞으로도 은행들의 관련 부실채권 비율이 상승할 가능성이 있다”며 “회사의 수익 성장세도 지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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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자본이 주도 … 전 세계가 활동 무대
해외사례
1985년 미국의 7대 철강사 중 하나인 휠링 피츠버그(Wheeling Pittsburgh)사가 법원에 파산 신청을 냈다. 이 회사는 1980~85년 사이에 7억 달러에 이르는 시설 투자를 했으나 1980년대 초반 불경기가 오면서 위기를 맞았다. 이에 회사는 1985년 구조조정 계획을 세우고 채권단과 협상을 벌여 합의점을 도출했으나 노조의 반대로 이마저 무산됐다. 남은 방법은 법적 절차를 밟는 것뿐이었다.
이 회사가 신청한 것은 파산법 11장이 규정하고 있는 ‘기업의 재편’이었다. 통상 법원에서 파산법 11조의 승인을 받은 기업들은 높은 투자 가치를 가지고 있다. 기업 재편에 성공하면 기업 가치가 엄청나게 높아지기 때문이다. 이 기업들은 어려움에 처한 기업의 유가증권이나 자산을 싸게 매입해 정상화한 후 제값 받고 파는 벌처펀드 투자가들이 좋아하는 먹잇감이 된다.
휠링 피츠버그에도 어김없이 벌처펀드 투자가들이 모여들었다. 먼저 론 라보(Ron Labow)라는 투자가가 손을 대기 시작했다. 그는 1987년 10월까지 이 회사가 가지고 있는 선순위 은행 채무의 86%를 1억4000만 달러에 매입한 데 이어 4500만 달러 상당의 주식도 사들였다. 3년 반이 지난 후 그가 거둬들인 총 회수액은 2억7000만 달러였다. 3.5년 동안 46%에 이르는 고수익을 창출한 것이다. 하지만 이 정도 수익은 수수한 정도에 불과하다. 보다 성공한 벌처펀드의 수익률은 수백%에 이른다.
벌처펀드의 고향은 미국이다. ‘부실의 아들’답게 최초의 벌처펀드는 1930년대 대공황기에 탄생했지만 현대적인 의미의 벌처펀드는 부실채권 시장이 형성되기 시작한 1980년대에 들어서야 나타났다. 1980년대 초, 중남미 지역의 지독한 경제 위기로 부실기업이 쏟아져 나온 것이 계기가 됐다. 이때 많은 미국계 자본이 중남미로 건너가 기업 쇼핑에 나섰다.
1980년대 들어 시장 형성 본격화
미국 내에서의 시장은 1980년대 후반 무렵부터 조성됐다. 당시 미국 경제를 위기로 몰아넣은 저축대부조합 부실이 단초가 됐다. 부실을 정리하기 위해 설립된 정리신탁공사(RTC)는 1989년에서 1995년까지 747개의 부실 저축대부조합을 정리하면서 엄청난 규모의 부실채권 시장이 생겨났다. 이때 정리된 자산은 모두 3940억 달러에 이른다.
부실채권 시장의 형성과 함께 법 제도 개정도 1980년대 이후 벌처펀드 활성화에 기여했다. 1978년 파산법 규정이 완화되면서 그동안 수동적으로 참여할 수밖에 없었던 벌처펀드 투자가들이 보다 공격적이고 능동적으로 부실채권에 투자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미국 벌처펀드의 전성기는 1980년대 말에서 1990년대 초라고 할 수 있다. 경기 불황 막바지여서 매물이 많았다. 1991년 지급불능에 처한 부실채권이 1988년의 4배에 가까운 10.8%에 이르렀을 정도로 미국 경제는 불황의 절정에 있었다. 이에 따라 많은 기업이 워크아웃을 단행하거나 파산법 11조 절차를 밟았다. 매각되는 부실채권은 넘쳐났고 이를 싸게 매입하려는 투자자도 많았다. 시장이 달궈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이 무렵 세븐일레븐을 운영하고 있던 사우스랜드사도 벌처펀드의 공격 대상이 됐다. 기업주의 지분율을 높이기 위해 차입금을 동원, 공개적으로 지분을 매집했는데 1980년대 후반 영업 환경이 악화되면서 차입금 상환이 어려워진 것이 빌미가 됐다.
당시 대표적인 투자가가 그 유명한 기업 사냥꾼인 칼 아이칸이다. 그는 1989년 말부터 액면가의 35%에 선순위 회사채 1억7000만 달러어치를 사들였다. 이를 통해 그는 90%의 수익을 올렸다. 칼 아이칸처럼 선순위 회사채를 매집한 또 다른 투자가인 마틴 휘트먼은 74%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전성기답게 이 시기에 다양한 투자 기법들이 선보였다. 칼 아이칸이나 마틴 휘트먼처럼 회사와 비공식적인 협상을 통해 부실채권을 단기 매매하는 방식으로 수익을 내는 투자가들은 주로 선순위 채권에 투자한다. 반면 후순위 채권에 투자하는 펀드들은 본드메일(Bondmail) 전략을 구사했다. 회사의 회생안이 자신에게 유리하지 않을 경우 의결권을 행사, 이를 부결시켜 회사에 압력을 행사하는 방식이다. 풋힐(Foothill)이나 카길(Cargill) 등은 채권을 주식으로 전환해 보유하는 방식을 선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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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개발국 국채도 사냥감
1990년대 들어 미국의 벌처펀드는 심각한 위기에 직면한다. 경제가 되살아나면서 부실기업이 감소한 것이다. 벌처펀드가 일반화되면서 펀드의 수도 증가했지만 시장이 줄어들자 부실채권의 매입 가격이 높아졌고 그 결과 리스크는 커지고 수익률은 떨어졌다. 이에 따라 벌처펀드들은 해외에서 돌파구를 찾기 시작했다. 캐나다와 유럽, 남미로 투자 대상이 확대됐는데 1990년대 말에는 외환위기로 인해 부실기업이 크게 증가한 아시아 시장에 적극적으로 진출했다.
유럽 시장에서는 영국이 주 타깃이었다. 불황의 골이 깊었던 데다 영국 중앙은행을 중심으로 한 구조조정 프로그램인 런던 어프로치(London Approach)가 적용되면서 부실채권 시장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특히 도버해협을 해저로 잇는 유로터널에 대한 투자가 대표적이다. 1996년 135억 달러에 대한 채무 조정이 제안됐는데 이때 미국의 펀드들이 다수 참여했다. 채권의 권리를 정상 가격의 30~50%에 매입해 100% 이상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유로터널에 대한 벌처펀드 투자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됐지만 유럽에서 벌처펀드 시장은 활성화되지 못했다. 자본시장이 발달한 미국과 달리 유럽은 시중은행이 부실기업의 여신을 시장에 매각하는 대신 기업의 정상화를 돕는 문화가 발달해 있어 부실채권 시장이 미국에 비해 활발하게 발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1990년대 들어 장기 불황의 늪에 빠진 일본도 벌처펀드의 사냥터였다. 1991년 최고가에 비해 80% 이상 폭락한 상업 부동산과 기업들이 투자 대상이었다. 특히 리플우드 홀딩스(리플우드)가 적극적이었다. 1999년 일본 최대의 국책은행인 일본장기신용은행을 매입한 데 이어 부품 업계의 강자인 아사이테크의 경영권을 획득했고 통신 업체인 니혼텔레콤도 집어삼켰다.
리플우드의 투자는 대부분 성공으로 귀결됐다. 300억 엔에 인수한 니혼텔레콤은 1400억 엔에 매각해 400% 가까운 수익률을 기록했고 11억4000만 달러에 사들인 일본장기신용은행을 신세이은행으로 상장하면서는 23억 달러를 벌어들였다. 인수 후 구조조정을 통해 기업 가치를 높인 것이 고수익의 비결이었다.
1990년대 중·후반부터 벌처펀드의 투자 대상은 민간 영역을 넘어 국채로 확대됐다. 경제가 어려운 국가의 채권을 싸게 사들여 해당 정부에서 원금과 이자를 받아내는 방식이다. 소송을 통해 가난한 나라에 들어가는 국제 지원금을 얻어내는 것이다. 페루 잠비아 콩고 등 저개발 국가들이 이들의 희생양이 되고 있다. ‘벼룩의 간을 빼먹는’ 악행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지만 이들의 ‘몹쓸 투자’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미국의 엘리엇 어소시에이츠가 대표적이다.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 담보대출) 부실 사태가 본격화되면서 그동안 지지부진했던 벌처펀드가 다시 활기를 얻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미 적지 않은 벌처펀드들이 행동을 개시한 상태다. 미국 유럽 아시아 등 전 세계가 유망 투자 지역으로 떠오르고 있다. 유동성 악화와 경기 위축으로 기업들의 부실이 악화, 부동산 거품의 소멸로 인한 부채 위기가 심화되면 벌처펀드들의 투자 대상은 무궁무진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변형주 기자 hjb@kbizwee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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