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신탁·공동개발

사업추진 빠른 신탁 재개발 재건축 뜬다.소유주의 75% 이상이 동의해야 하고 주민들이 토지 면적의 3분의 1 이상을 신탁사 명의로 등기 이전해야

Bonjour Kwon 2017. 6. 9. 10:46

2017.06.09

신탁 방식 재건축을 추진 중인 서울 여의도 광장아파트 전경. [사진 제공 = 광장아파트 주민]

 

최근 재개발·재건축 사업장에서 신탁방식 채택이 늘고 있다. 서울에서는 지난해 여의도 재건축 단지부터 시작해 강남 4구(강남·서초·송파·강동) 재건축과 재개발 단지로 확산되는 양상이다. 조합이 직접 추진하던 재건축·재개발시장에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그동안 투명하지 못했던 재건축방식에 대한 불신과 신탁사들의 적극적인 수주 전략이 맞물린 결과로 풀이된다. 서울 노후 아파트 단지 중심으로 신탁방식에 대한 '열공'에 빠졌다.

 

신탁방식 재개발·재건축은 조합 대신 신탁사가 사업을 시행하는 것을 뜻한다. 지난해 3월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법'이 개정되면서 신탁방식 정비사업이 가능해졌다. 신탁방식 정비사업이 진행되려면 우선 전체 소유주의 75% 이상이 동의해야 하고 주민들이 토지 면적의 3분의 1 이상을 신탁사 명의로 등기 이전해야 한다.

 

신탁방식은 기존 조합방식과 달리 사업을 빠르게 추진할 수 있다는 게 장점으로 꼽힌다. 추진위원회나 조합 설립 단계를 거치지 않아도 돼 재건축 사업 기간을 최대 2년가량 단축할 수 있다. 재개발·재건축 기간이 짧아지면 그만큼 공사비와 이자 비용을 아껴 이득이다. 또 신탁사가 자금관리를 맡아 금융당국 감독을 받으니 조합방식보다 투명성이 높다. 조합 집행부 비리와 횡령 문제를 사전에 차단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신탁방식 재건축은 2018년 부활이 유력한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를 앞두고 빠르게 확산되는 중이다. 지난 3일 진행된 서울 여의도 광장아파트 주민투표에서 신탁방식이 396표, 조합방식이 96표를 받아 압도적인 차이로 신탁방식이 채택됐다. 이어 진행된 신탁사 선정 투표에서는 KB부동산신탁이 244표를 받아 191표를 받은 한국자산신탁을 제치고 예비 신탁사가 됐다. 2400가구 규모의 대단지인 강동구 명일동 삼익그린맨션 2차 아파트는 한국자산신탁이 단독으로 사업참여 의향서를 제출했고 오는 10일 주민투표에서 신탁방식 재건축 여부가 결정된다.

 

신탁방식은 서울 재개발 사업장으로도 확산되고 있다. 동작구 흑석동 304 일대 흑석11구역 주택재개발 정비사업조합은 최근 우선협상대상자로 한국토지신탁과 코리아신탁 2곳을 정했다. 예비 신탁사는 이달 중순 조합원 총회에서 최종 결정된다. 흑석11구역은 이미 조합이 설립된 상태라 대행자방식으로 진행된다. 대행자방식은 조합원 과반수의 동의만 얻으면 된다. 75% 이상의 동의가 필요한 시행자방식보다 진행이 수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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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탁방식 재건축·재개발에서 신탁사가 가져가는 수수료는 일반분양과 조합분 매출 총액의 2~4% 수준이다. 총 500가구 규모 서울지역 재건축 단지의 경우 신탁사는 100억원가량 수입을 얻는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신탁방식 재개발·재건축이 조합방식보다 비용이 더 든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신탁업계 관계자는 "신탁방식 재건축은 입주까지 5~6년가량 소요되니 연간 신탁사가 가져가는 수수료는 0.4~0.8% 수준에 불과하다"며 "주식형펀드에서 운용사가 가져가는 연간 수수료가 2% 수준임을 감안하면 결코 비싸다고 볼 수 없다"고 강조했다. 또 "조합방식 재건축은 조합장 비리로 10년 이상 표류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감안하면 신속하게 추진되는 신탁방식이 조합방식보다 비용이 적게 드는 셈"이라고 반박했다.

 

단 신탁방식 재건축·재개발의 단점은 중도에 계약을 해지하는 게 쉽지 않다는 점이다. 토지신탁계약서 제21조에 따르면 신탁계약 성립을 위해 75% 이상의 소유주 동의가 필요하지만 신탁계약 해지 시 신탁계약에 동의한 소유주뿐만 아니라 동의하지 않은 소유주의 해지 동의서도 필요하다. 신탁계약 성립보다 해지가 더 까다로운 셈이다.

 

또 신탁방식 재건축은 초과이익환수제를 피할 수 있는 '만능 열쇠'가 아니다. 지난 5월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해 신탁방식도 초과이익환수제를 적용받게 됐다. 조합방식보다 진행 속도가 빠르다지만 사업시행자가 올해 지정됐다면 연내 관리처분 신청은 불가능에 가깝다. 시공사 선정, 건축심의 완료, 사업시행 인가 고시, 조합원 분양 신청, 관리처분 총회 등 절차를 차례대로 거쳐야 관리처분을 신청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일부 신탁사가 수주 과정에서 과대 홍보해 문제가 됐다. 국토교통부가 지난 3월 말 국내 주요 신탁사와 금융투자협회 관계자를 불러 주민들에게 '장밋빛 환상'을 심어주지 말고 관련 정보를 정확하게 전달하라고 주의한 바 있다.

 

신탁방식 재건축과 관련된 법령 정비가 완전하지 못한 점도 문제다. 토지신탁계약서 제 24조 4항이 대표적이다. 불가피하게 신탁계약을 중도 해지할 상황이 벌어졌는데 정산에 필요한 비용을 위탁자 또는 수익자가 지급하지 않는다면 신탁사는 신탁재산의 전부 또는 일부를 처분해 지급에 충당할 수 있다. 재건축을 위해 적극 토지신탁에 동참한 애꿎은 조합원이 모든 손실을 감당할 수 있다는 얘기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현재 계약서 조항은 주민이 신탁방식에 동의하더라도 토지신탁에는 불참하는 게 안전하게끔 돼 있다"고 꼬집었다.

 

토지신탁계약서 제12조와 제21조도 아파트 주민에게 불리한 독소 조항으로 꼽힌다. 제12조에 따르면 '신탁사무에 필요한 비용'을 신탁재산으로 지급할 수 있고 신탁재산으로 부족한 경우 금융기관 기타 제3자 또는 수탁자의 고유계정에서 차입할 수 있다. 하지만 일상적인 서류작업에 필요한 비용까지 신탁재산에서 지급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는 지적이다. 신탁에 따른 수수료를 신탁사가 받으면서도 일상적 업무 비용까지 추가로 계약자에게 떠넘길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신탁방식 재건축을 결정한 한 서울 아파트 주민은 "신탁계약서나 신탁 관련 법령 등에서 부족한 점이 적지 않다"며 "일단 신탁사를 정했지만 주민들이 아주 속 시원하게 신탁방식을 선호한 것은 아니었다"고 전했다.

 

신탁방식이 초기 단계여서 아직 사업을 마친 전례가 없는 점도 부담이다. 사업 과정에서 시행착오를 겪을 수도 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도 "토씨 하나하나까지 꼼꼼하게 분석하는 보험·증권 분야와 달리 부동산 신탁에 대해선 금융당국이 느슨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며 "부동산 신탁이 빠르게 확산되는 만큼 금융당국이 조기에 문제를 바로잡지 않으면 혼란이 초래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용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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