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 農政 브레인이 말하는 ‘희망농촌’ ‘파워농촌’] “농특세 일몰, 쌀 관세화 대비하고 농협은 경제사업 더 매진해야”
농업 관련 국책 연구기관인 한국농촌경제연구원(KREI, 이하 농경연)은 새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당선인의 농정 공약을 검토해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의견을 내는 작업을 해왔다. 농경연 선임연구위원인 김정호 박사(60)는 지난해 12월말 부터 올해 1월 초순까지 박근혜 대통령당선인의 농업정책 분야 공약을 검토해 인수위에 전달하는 작업을 맡았다.
김 박사는 서울대 농대를 졸업하고 일본 교토대에서 농업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1986년부터 26년간 우리 농업 정책을 연구해온 베테랑 연구원이다. 그동안 농경연에서 농업구조연구센터장, 농업관측센터장, 농림기술관리센터 소장, 부원장을 역임했다. 실제 우리 농정에 많은 영향을 끼친 수십 건의 주요 연구 실적을 냈으며, 2002년 대통령자문 농업·농어촌특별대책위원회 전문위원을 필두로 지금껏 정부의 농정 관련 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최근에는 ‘한국농업 미래비전(공저)’이라는 책을 내기도 했다.
“제2의 새마을운동을”
설밑인 2월 4일 농경연의 김 박사를 직접 만나 박 당선인이 마련한 농정 공약의 의미와 공약이 나오게 된 배경, 그 실현 가능성에 대해 알아봤다. 그는 “공약을 직접 만든 사람이 아니라 말을 하기가 조심스럽다”면서도 “박 당선인의 농정 공약은 전체적으로 우리 농업과 농촌의 현실을 고민한 흔적이 곳곳에 묻어 있다”고 밝혔다.
“‘행복농촌, 희망농촌, 파워농촌’이란 말 속에는 박 당선인의 농정 철학과 목표가 담겨 있다고 봐야 합니다. ‘농업인이 행복하고 그래서 젊은 사람이 모여들어 농업과 농촌이 지속성 있게 발전하는 것’을 말하죠. 박 당선인이 말하는 ‘농촌’은 농업이 있는 농촌 즉 ‘농업인의 삶의 공간’을 뜻합니다. 공약에서 농가소득 증대, 농촌복지 향상, 농업경쟁력 제고 등이 3대 핵심과제로 제시됐는데 이는 농정 목표의 구체적 실천과제라고 봐야 합니다.
저는 특히 ‘파워농촌’이라는 말에 호감이 갑니다. 과거의 헐벗고 못살던 농촌의 기억을 지우고, 남에게 떳떳하게 보여줄 수 있는 농촌을 만들어보자는 의지의 표현이라고나 할까요. 최근 동남아시아 등에서 우리 농촌의 발전 경험을 배우러 오기도 하지만, 박근혜 정부에선 발전 잠재력이 가득한 농업인이 모여들어 젊은 농촌을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박 당선인은 대선 당시 “제2의 새마을운동을 일으키면 좋겠다”는 말을 여러 차례 했다. 1970년 시작된 새마을운동이 정부의 무상지원과 자조자립 정신에 기초한 농촌재건운동이었다면 박 당선인이 말하는 제2의 새마을운동은 농업인의 소득을 높이고 실질적 복지혜택을 늘려 도시와 비교해서 경쟁력을 가진 농촌을 만들자는 삶의 질 개선 운동이다. 농촌이 살기 좋아지면 젊은 사람이 모이고, 젊은 사람이 모이면 농업이 더욱 발전하는 선순환구조를 만들어보자는 것.
김 박사는 새 정부가 농정 관련 공약의 실천을 위해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 있다고 말했다.
“공약을 조급하게 추진하기보다 그것을 근간으로 향후 5년간의 농업·농촌 발전계획을 수립하는 게 급선무죠. 이 계획을 수립하려면 농업인과 전문가, 정부 등 범(汎)농업계의 합의가 중요합니다. 정권 교체기에 중기계획을 수립하면 농림수산식품부 예산도 60~70%는 중기 재정계획에 맞춰 집행되는 체계가 자리 잡을 겁니다. 그렇게 하면 정책의 일관성도 있고 안정적인 시책 추진이 가능하게 되겠지요.”
피해는 막고, 소득은 늘리고
박 당선인은 농정 공약 첫머리에서 “농업은 국민의 소중한 먹을거리를 책임지는 생명산업이자 안보산업”이라고 못 박았다. 새누리당은 공약집에서 “2008년 이후 기상이변으로 곡물 수확이 감소하면서 국제 곡물가격이 급등하고 있다”면서 “식량자급률 제고를 통해 식량안보체계를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그 대안으로 △식량안보 모니터링 및 조기경보 시스템 도입 △우량 농지 보전, 사료작물 등의 생산 확대 △해외 식량 조달 시스템 구축, 일정 물량 상시 비축 등을 들었다.
현재 우리나라의 식량자급률은 50% 남짓하고 전체 곡물자급률은 25% 안팎이다. 쌀 자급률은 2010년까지 95% 이상을 유지해왔으나 2008년 이후 3년 연속 대흉작이 계속되면서 현재 80%대에 머물고 있다. 1980년 냉해 이후 최저 수준이다. 농식품부는 2011년 농어업농업촌기본법상의 목표를 다시 조정해 2020년까지 식량자급률은 60%, 곡물자급률은 32%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다. 김 박사는 “식량안보체계 구축을 위해선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말했다.
“목표는 세웠지만 그 실천을 위한 로드맵은 아직 마련되지 못했습니다. 정부 내에서조차 식량안보에 대한 개념이 불명확한 데다, 부족하면 수입해 먹으면 된다는 인식까지 팽배해 있고요. 1997년 말 외환위기 때 인도네시아가 돈을 주고도 쌀을 사지 못했던 적이 있는데 이게 남의 일이 아닙니다. 식량안보체계를 구축하기 위해선 우선 국내 생산기반을 강화해야 하고, 여기에는 일차적으로 국민적 합의가 전제돼야 합니다. 국민적인 합의를 바탕으로 국가 식량안보의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우량 농지 확보, 농지 총량관리제 도입, 나아가 농업 생산기반 정비라든지, 쌀 농가의 소득보전 방안의 확충 등이 이뤄져야 하는 거죠.”
박 당선인 농정 공약의 핵심 축은 농업인의 소득과 복지혜택을 늘려 농촌을 도시 중산층과 비교해도 삶의 질이 차이나지 않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2011년 농가소득은 도시근로자 평균소득의 59.1%에 불과하다. 따라서 농업인에게 지급되는 고정직불금을 ha당 70만 원에서 100만 원으로 인상하며 농어업 재해보험을 확대하고 내실화해 경영 리스크를 줄여주는 한편 비료, 농약, 사료, 에너지 등에 소요되는 농업 경영비를 절감해줌으로써 농가소득을 끌어올린다는 게 공약의 내용이다.
▼ 고정직불금을 확대하면 실질적으로 농가소득에 도움이 될까요.
“현재 정부는 쌀 생산 농가 소득보전 직불금을 고정직불금과 변동직불금으로 나눠 지급하고 있습니다. 고정직불금은 ha당 70만 원씩 지급되고, 변동직불금은 정부가 정한 목표가격(현재 80kg 한 가마당 17만83원) 이하로 쌀값이 하락하면 지급되는 구조죠. 그런데 정부가 변동직불금을 더 주기 위해 목표가격을 올리면 시중 쌀값만 오릅니다. 그러니까 쌀값과 연동하지 않는 고정직불금을 올린다는 발상이죠.
그런데 목표가격을 인상하지 않고 고정직불금만 인상하면 벼 재배면적이 더 감소합니다. 농가들이 쌀보다 소득이 높은 작물을 재배하게 되기 때문이죠. 그러면 쌀 공급이 줄어 장기적으로는 쌀값 상승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결국 이는 소비자의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죠. 결론적으로 고정직불금 인상 폭을 적게 하면서 목표가격을 조정해 변동직불금 인상도 고려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하늘이 낸 흉년, 근본적 보상”
농업 보조금 문제도 중요하지만 2014년 말 쌀 관세화 유예기간 만료에 따라 생겨날 농가 피해도 박근혜 정부가 해결해야 할 난제 중 하나다. 1994년 4월 타결된 우루과이라운드(UR) 협정에 따라 설립된 세계무역기구(WTO) 체제 출범 당시 한국 일본 필리핀 3국은 식량안보를 이유로 쌀 관세화를 10년 미뤘다. 2004년 한국과 필리핀은 2004년 재협상에서 의무수입량을 늘리는 조건으로 10년 유예기간을 추가로 연장했는데, 내년 관세화 유예가 종료되는 것이다. 현재 일부 농민단체에서 추가 유예를 주장하고 있지만 정부와 학자들은 국제법상 추가 연장이 어려울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김 박사는 “쌀의 의무수입 물량이 2014년 현재 40만8000t인데 여기에서 추가 증량하면 우리가 지불해야 할 대가가 너무 크다”며 “이제 현실적으로 관세화 전환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2015년 관세화로 전환하려면 쌀 관세율을 정해야 하는데 관세를 매기기 위한 수입가격과 국내 도매가격의 기준을 어떻게 산정하느냐 하는 문제를 비롯해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더미입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장기적으로 식량안보 체제를 갖추면서 쌀 농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게 제일 중요합니다.”
▼ 농업경영비 문제는 어떻습니까.
“농업소득 증대를 위해서는 경영비를 줄이는 것밖에 달리 수단이 없지요. 농업경영비 가운데 농자재 비용이 30~40%를 차지하기 때문에 이를 공약으로 채택한 것은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국내 농자재시장 규모가 영세하고 대부분이 중소기업인 실정에서 저렴한 가격만을 강조할 경우에는 품질 저하나 사후서비스 미흡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고품질의 농자재를 저가에 공급하려면 관련 산업에 대한 중장기적인 지원방안을 강구해 발전시키는 등 농자재산업 육성 및 농자재 유통구조 개선을 위한 정부 정책이 시급히 마련돼야 합니다. 또한 농협의 독점적 농자재 유통에 대해서도 발전적으로 검토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 농업 재해보험을 2017년까지 단계적으로 50% 이상 확대하고 보장의 범위와 보험료도 현실성 있게 재편한다고 합니다.
“기상이변이 빈번한 상황에서 적절한 판단이라 봅니다. 현재 농어업재해대책법을 근거로 재해지원과 재해보험이 실시되고 있는데, 기본적으로 농업인이 불의의 재해 피해로 인해 좌절하지 않고 재기할 수 있는 기틀을 제공하는 방향으로 추진되는 게 바람직합니다. 재해지원은 생산수단의 복구를 위한 무상지원으로 대책법에 규정하고, 재해보험은 별도로 농어업재해보험법을 제정해 수익자 부담원칙에 따라 경영 안정을 지원하는 제도로 정착해야 하죠. 이를 위해 재해보험의 대상 품목 및 보장 범위를 확대하고 보험사업 규모 확대에 걸맞은 체계를 정비해야 합니다.”
▼ 각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때 농민의 권익을 최대한 배려하겠다는 공약이 있었습니다.
“우선 당면한 게 중국과의 FTA 협상이죠. 중국과는 그동안의 협상과정에서 농수산 협력 이슈에 관한 전문가 회의를 하기로 했죠. 이에 기초해 우리 농업의 민감성을 최대한 반영하는 전략을 구사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국제적으로 공론화한 농업의 비교역적 기능과 다원적 기능의 개념에 기초해 양국 농업이 경쟁보다는 협력을 도모하는 내용의 상생협력 의제를 제시하고 협정문에 농업협력 규정이 포함되도록 하는 게 바람직합니다.”
박 당선인은 이처럼 농업인의 실질적 소득을 보장해주는 한편 “농업이 다른 산업과 비교해도 경쟁력에서 뒤지지 않는 신성장동력으로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그 실천 방안으로는 △IT와 BT의 연계 활용 △연구비 투자 확대 및 종자·생명산업 육성 △농어업과 고부가가치 식품산업 연계 등을 제시했다. 김 박사는 “2000년 들어 우리 농업의 성장세가 꺾이기 시작해 지난 10년간 농업 부가가치가 21조~22조 원에 머물고, 실질성장률이 1% 안팎에서 정체되는 상황”이라며 “이는 우리 농업의 내수 한계”라고 진단했다.
“쌀 소비는 줄고 과일과 채소 소비는 정체되는 가운데 축산물 소비가 조금 늘어나는 정도인데, 국내 먹거리 시장을 수입농산물에 내주고 있으니까 농업 생산량이 축소되는 것은 당연하지요. WTO 체제 출범으로 이미 예고된 상황이지만 최근 각종 FTA 추진으로 속도가 빨라졌습니다. 문제는 국내 농식품 시장이 거의 포화상태에 이르러 앞으로는 줄어들 일만 남았다는 점이죠.”
김 박사는 농식품시장 포화의 대응책으로 수출을 제시했다. 수입 농산물로부터 국내 시장을 지키는 한편, 수출을 통해 우리 농업의 외연을 늘려보자는 것. 그는 “내수시장을 기반으로 수출을 할 수 있으면 금상첨화겠지만, 식품은 문화이기도 하기에 수입국 소비자들을 위한 맞춤형 상품을 생산해야 수출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수출이나 내수시장을 키워 농업이 성장하기 위해선 신성장동력에 과감한 연구개발(R·D) 투자가 필요합니다. 종자산업, 곤충산업, 농기계·장치산업, 바이오 리파이너리(Bio-refinery), 전통 식품산업 등을 들 수 있겠죠. 아열대과일, 청경채소, 기능성 작물 등 고부가 소득 작목의 개발도 중요합니다. 다음으로는 저탄소 녹색기술, 정밀농업 기술, 지역단위 경축복합농업(재배농업+축산업) 등을 통해 친환경농업을 확충해야 합니다. 2009년 농경연 연구에 따르면 농업성장률을 2%로 유지하기 위해선 R·D 예산이 매년 14.7% 증가해야 하는 것으로 분석된 바 있죠.”
농업의 지속가능한 성장
▼ ‘지속가능한 축산업’을 육성하겠다는 공약이 있습니다. 이런 공약이 나온 배경은 무엇입니까.
“우리 축산업은 ‘시설형 축산’이라 할 정도로 경종농업(재배농업)과 괴리돼 발전해왔습니다. 2011년 말에는 구제역이 창궐해 돼지와 소를 합쳐 약 400만 마리가 매몰됐지요. 그래서 축산정책에서도 친환경적이고 경영안정적인, 즉 ‘지속가능’이란 개념이 대두된 거죠.”
지속가능한 축산업은 지역 단위에서 재배농업과 축산업의 연계를 통해 자원순환농업을 구축한다는 개념으로, 가축분뇨를 효율적으로 처리·이용함으로써 논과 밭의 토양산성화를 완화하고 신재생에너지를 얻는 효과도 있다. 김 박사는 “현재 개별적으로 운영 중인 가축분뇨 공동자원화시설과 유통센터를 통합처리시스템으로 전환하는 한편, 지역별·전국적 네트워크를 통해 가축분뇨 이용의 수급 불균형을 해소해야 한다. 가축분뇨의 자원화 촉진을 도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정부 부처 간의 협력이 절실하죠. 현재 가축분뇨 자원화 정책은 농식품부, 환경부, 지식경제부 등으로 다원화해 있습니다. 행정체계를 일원화하거나 관련 부처 간 협력과 정책연계성이 강화될 수 있도록 업무 조정이 필요합니다.”
▼ ‘생산·유통·가공·외식·관광 등이 연계되는 6차 산업정책을 확대하겠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6차 산업이란 개념이 생소합니다.
“정확하게는 ‘지역농업의 6차산업화’라고 표현해야지요. 지역 단위로 공동체성을 살려서 농업생산과 연계된 가공·유통·관광·교류·직거래 등을 통해 소득원과 일자리를 늘리려는 발상입니다. 1차산업인 농업에 2차산업인 제조업, 그리고 3차산업인 서비스업을 서로 합하거나 곱해 6차산업이 된다는 것인데, 1990년대 들어 일본 지방자치단체들이 지역 활성화 시책으로 시작해 성공사례가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우리 농업도 일본과 마찬가지로 영세하고 자원도 빈약하지요. 그래서 지역 단위로 규모의 경제를 구축하자는 건데, 농업인이 직접 가공하거나 또는 지역 농협 주도로 특산품을 개발해 지역 브랜드화 해야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다는 겁니다. 지역특산물을 원료로 식품제조업, 외식업, 소매업 등과 연대하면 새로운 수요를 창출할 수도 있지요. 그래서 일부에선 ‘농공상연대’라고 하기도 합니다. 지역농업과 지역경제의 활성화를 위한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
재원과 인력을 확보하라!
박 당선인의 다른 분야 정책 공약도 마찬가지지만, 이런 농정 공약들이 연착륙하기 위해선 하나같이 적지 않은 추가예산이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벌써부터 예산 확충을 둘러싼 고민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상황. 김 박사는 우선 “2014년 일몰을 맞는 농어촌특별세를 연장하고 그것을 전제로 중장기 재정계획을 조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오늘날 농업 부문에 있어 정부 재정지출은 시장 실패를 막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농업이 살아남기 위한 버팀목 기능을 했다고 봅니다. 농업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인프라 확충에 정부 재정이 큰 기여를 하고 있죠. 농식품 분야 예산에서 농특세 세입이 차지하는 비중은 23%나 됩니다. 세입이 중단되면 현재 추진 중인 사업에조차 큰 혼란을 초래하죠. 이런 점에서 2014년에 만료되는 농특세 연장은 또 다른 안정적 재원이 마련되지 않는 한 꼭 필요한 조치입니다. 조세저항을 피하려면 과세 범위나 세율을 종전과 같이 가져가는 게 좋겠고요. 농특세 연장을 전제로 정부는 중장기 재정사업의 조정을 통해 예산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현재 농촌 현장이 직면한 가장 큰 고충 중 하나는 인력부족이다. 농촌의 고령화와 인구 감소로 전문 농업인은 물론이고 일용직도 구하기 힘든 형편이다. 사계절 농사를 짓는 일부 하우스 재배 농가를 제외하고는 인력의 고용이 특정 시기에 집중되는 게 가장 큰 문제. 추수 시기에는 많은 돈을 주고도 인력 구하기가 어렵다. 박 당선인과 새누리당은 이에 대해 농림수산업 인력은행(외국인 노동자 포함)을 설립하기로 했다. 김 박사는 “농번기 농업인력을 확보하기 위해 도시의 여유인력을 활용하는 인력은행의 설치는 좋은 대안”이라며 “이렇게 되면 외국인노동자나 해외농업연수생도 은행에서 관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진정한 판매농협 기반 마련
“농업인력 문제는 정말 심각합니다. 특히 전문농업 경영주인 영농후계자가 눈에 띄지 않는 게 가장 큰 걱정이죠. 근본적으로는 우리 국민에게 농촌이 하나의 직장으로 인식되는 게 중요합니다. 최근 들어 귀농인이 증가하는 것은 희망적입니다. 저는 이런 귀농 희망자를 농업경영인으로 육성하는 제도를 만들기를 제안합니다. 귀농 희망자를 대상으로 역량을 평가해 ‘농업인자격증’을 주는 제도를 도입하자는 거죠. 농장을 차리기 전에 농업법인 등에서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하는 ‘농업 인턴십’ 공약은 좋은 발상입니다.”
지난해 3월 농협법 개정을 통해 신용부분과 경제사업부분을 분리하는 대개혁을 단행한 농협중앙회에 대한 새 정부의 정책변화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우리 농업인 대부분이 조합원으로 참여한 농협의 변화는 우리 농업과 농촌의 미래상을 결정짓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박 당선인은 농협에 대해 “경제사업을 더욱 활성화해야 한다”고 밝혔고 유통비용 절감과 농업경비 절감을 요구했다. 김 박사는 “농협법이 통과된 지 1년이 안 된 시점에서 평가하기는 이르지만 이제 농협개혁의 기반만큼은 마련됐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중앙회와 2개 지주회사, 즉 금융지주와 경제지주로 법인을 분리하고 독립사업부 제도를 도입하는 등 조직 정비를 완료함으로써 개혁의 발판을 충분히 마련했다는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합니다. 특히 경제지주회사에 대한 기대가 큰 만큼 신규투자를 통해 유통기반시설을 확충하고 직거래형 유통체계를 구축하는 한편, 기존 경제사업을 경제지주로 적절하게 이관하는 등 사업 체제를 갖추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 박 당선인은 “경제사업을 더욱 활성화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그렇습니다. 어떻게 보면 농협개혁은 경제사업 활성화를 위해 시작된 것이라고 봐도 무방하죠. 농산물 유통구조를 개선하는 데는 농협의 몫이 매우 큽니다. 농협의 유통역량 강화를 위해선 유통인프라를 확충하고 전국 단위 도매물류센터의 기능을 강화하는 것이 급선무죠. 농업인이 생산한 농산물을 농협이 책임지고 판매하는 구조를 정착시키는 게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특히 산지유통의 규모화·전문화가 관건인데, 지역 조합의 합병이 추진돼야 할 것으로 봅니다. 지역 조합과 농업법인의 합병을 지원하는 형식의 구조조정을 통해 대규모 품목별 판매조직으로 발전시켜야죠. 사업 규모화와 함께 지역조합과 중앙회 공동사업의 경쟁력을 높여나가야 합니다.”
▼ 축산 부문의 유통단계 축소도 중요한 것 같습니다.
“축산 부문도 농협 중심의 유통계열화를 체계화해야 합니다. 개별농가 중심의 생산과 출하방식을 지역 조합 중심으로 계열화·조직화해 생산성을 향상시키고 거래 교섭력을 높여야 하죠. 유통 주체별로 분산된 도축·가공·배송 기능을 통합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고 경영효율을 높여나갈 수 있도록 일관경영 체계를 구축하자는 거죠. 이를 위해선 농협중앙회와 지역 조합의 협력체계 구축이 필요하고, 지역 조합은 생산 중심, 중앙회는 유통 중심으로 임무를 재정립해야 합니다. 이런 작업은 현재 추진 중인 거점 도축장 육성과 도축장 구조조정과 연계돼야 합니다.”
“협동조합의 맏형 돼주길…”
▼ 새 정부의 농정 정책과 관련해 농협에주문할 게 있다면.
“글쎄요. 새로 체제를 짠 농협에 대한 기대가 큰 만큼 여러 가지 주문이 있을 수 있지만, 핵심은 역시 경제사업이죠. 농업인이 생산하면 농협이 판매를 책임지는 산지 유통사업 조직을 재정비해야 합니다. 지역조합을 시군 단위, 도 단위로 묶어 연합마케팅 조직을 계속 만들어나가는 것은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봅니다. 개방화 시대를 맞아 우리 농산물의 시장기반을 지키기 위해 지역 조합이 ‘로컬푸드’운동을 확산시키고 있는 것도 칭찬할 만하고, 농업인의 영농비 절감을 위한 농협 지역본부의 영농자재의 연합구매 추진도 경제사업을 활성화하는 좋은 방법입니다.”
김 박사는 박 당선인의 재해보험 확대와 관련, “농협의 금융 부문이 수익성이 낮아 일반 보험회사에서는 거의 취급하지 않고 있는 농작물재해보험, 가축재해보험, 농기계종합보험을 확대 취급해야 한다”고 밝혔다.
“올해 협동조합기본법이 시행되면서 다양한 협동조합이 설립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농협이 이들과 경쟁하기보다 협동조합의 맏형으로서 소규모 협동조합을 지도 편달하는 책임을 다해주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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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망스러운 점은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 이후에 공약을 제대로 지킬 생각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죠. 당시 슬로건이 ‘돈 버는 농어업, 살맛 나는 농어촌’이었는데 돈 버는 농어업 정책은 조금 신경을 쓰는 듯하다가 물가 문제만 나오면 농수산물부터 희생양으로 만들었습니다. 농어업 종사자로부터 원성을 샀죠. 살맛 나는 농어촌 공약은 사실상 방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은 농어업 분야에 엄청난 파장을 미칠 사안인 데다 당시에 꼭 시작할 필요도 없었는데 밀어붙였고, 농특위를 폐지한 것도 농어업인의 민심을 잃는 데 큰 몫을 했죠. 제가 농특위원장으로 있었기 때문에 하는 원망이나 푸념이 아닙니다. 농특위 부활은 농어민단체와 여야 간 합의로 국회에서 농특위 관련 법안을 처리하면 박 대통령께서 수용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인수위 시절 경제 2분과 국정과제 토론회에서 “농어업은 단순히 농수산물을 생산하는 1차산업이 아니라 가공, 유통, 관광, 이런 종합산업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개별 농어가의 지역조직을 농어업 경영모델로 개발하고 발굴, 확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이 회장이 생각하는 ‘농어민이 잘사는 농촌’이란 실질적으로 어떤 모습일까. “농어업이 실질적으로 수지가 맞고 재해로부터 충분히 보호를 받을 수 있어서 농어민이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할 수 있는 농어촌이죠. 일자리와 소득원이 충분하게 마련돼 농어촌 주민의 소득을 증대시킬 수 있는 기반이 구축된 곳, 기초생활이 보장될 뿐 아니라 부가가치를 높이고 경영비를 절감해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곳, 기술과 능력을 갖춘 곳, 재해대책 시스템이 잘 가동되어 웬만한 자연재해를 입어도 재기할 수 있는 농어촌입니다.”
▼ 제2의 새마을운동을 강조했습니다. “1970년대의 새마을운동은 정신개혁과 환경개선에 초점을 맞췄고 가난에서 벗어나 물질적으로 잘살아보자는 게 우선이었지만, 이 시점에서 요구되는 제2의 새마을운동은 공동체를 복원하려는 새마을정신의 재점화와 함께 소득 증대를 바탕으로 진정한 자립의 기반을 공고히 하고 그 위에서 문화적으로 다 함께 잘 살아보자는 운동이 돼야 합니다.”
▼ 이번 정부와 지난 정부의 농가소득 향상 공약 간에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입니까. “재해대책과 직불제가 강조된 것이겠죠. 특히 고령 저소득 농어가의 기초생활을 보장하도록 하는 직불제를 도입하고, 직불제 관련 예산을 농어업·농어촌 관련 예산의 30% 수준까지 높이겠다는 것을 공약으로 검토한 바 있습니다. 유럽 70%, 일본이 40% 정도에 달하는 점을 감안해 새 정부도 그 비중을 최대한 높이도록 노력할 겁니다.”
재해 방치는 직무유기 ▼ 새 정부의 직불제가 지난 정부의 그것과 다른가요? 직불금 제도가 농민들로 하여금 쌀농사를 기피하게 만들 것이라는 우려도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쌀 생산기반을 유지하려면 직불금을 올려야 해요. 직불금 제도의 요체는 개별 농어가의 기준 소득을 정해놓고 그보다 못한 농어가에 개별적으로 모자라는 차액만큼 직불금으로 주자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소득을 객관적으로 추정하기 어려워 제도 시행이 중단되다시피 했죠. 품목 중심의 현행 직불제는 형평에도 맞지 않고 합리적이지도 않다고 판단되니 단계적으로 품목 중립적인 경영안정 직불제로 개편해야 한다는 얘깁니다. 밭작물에 대해서도 대상 품목을 확대할 뿐 아니라 지목 제한을 해제해 2모작 사료작물 등과 하천부지를 이용한 밭농사에까지 확대해야 합니다. 다양한 형태의 공익형 직불제를 개발해 직접적으로 농민의 소득을 보완하자는 얘기죠.”
▼ 농어촌의 주거·의료·교육 여건 개선도 공약 중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인수위 국정과제에 포함된 내용을 보면 △공동생활 홈 조성 △마을 리모델링 추진 △마을회관 급식시설 설치 △가사 도우미 지원 확대 △농어촌 상수도 보급 확대 △도시가스 배관 확대 △농어촌 의료 시설·장비 확충 △농어촌 환경 개선 △농어촌 취약지 거점의료기관 육성 △지속 가능한 농어촌 학교 시스템 구축 △농어촌 고교 출신자 지원 확대 등이 있죠. 이런 것들은 농어가 소득이 증대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일종의 인프라들이니까 반드시 국가가 해줘야 합니다.” 박 대통령은 대선 당시 경제민주화와 함께 농정공약에선 ‘맞춤 복지’를 강조했다. “현실에 맞는 맞춤형 사회안전망을 구축하겠다”고 약속했다. 새누리당은 공약에서 ‘산재보험 수준의 안전재해 보장제도를 도입하고 국민연금보험료 지원시 기준 소득을 현행 79만 원에서 대폭 현실화하는 한편, 건강보험료는 현행 50% 일률 지원방식에서 소득 수준에 따라 차등 지원하는 방식으로 변경하겠다’고 밝혔다.
▼ 정부의 재해대책이 농민의 피해 현실과 너무 동떨어져 있다는 지적이 많은데요. “재해 현장에 가보면 정말 화가 치밀죠. 박 대통령도 후보 시절 태풍 피해지역 세 군데를 다녀온 후 분개했습니다. 농어업인이 자기 책임이 아닌 천재지변으로 인해 재기불능 상태에 빠진 것을 방치하는 것은 국가의 직무유기라는 게 제 소신이자 대통령의 생각입니다. 대선 때 처음 발표한 공약이 재해대책이었던 것도 그 때문이죠. 보험료가 너무 비싸서 농어민들이 가입하기 어렵다거나 피해 조사가 너무 늦게 이뤄지는 바람에 피해를 본 농수산물이 때를 놓쳐버리게 된다거나 하는 문제를 세심하게 검토해 대책을 마련해달라고 인수위에 요청한 바 있습니다. 궁극적으로는 보험이 아니라 재해 피해액을 국가 예산으로 전액 보상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이명박 정부가 한중 FTA를 추진한 데 대해 비판했는데, 향후 농어업인의 피해의식을 줄이기 위한 실질적 정책 대안이 있습니까. “무엇보다 FTA를 신중하게 추진한다는 기본 접근방식이 중요하죠. 이미 협상을 시작한 한중 FTA는 피해가 최소화하도록 정말 노력해야 합니다. 농어업인의 피해의식을 덜어주려면 농어업인들의 신뢰를 확보하는 게 선결과제죠. 협상과정을 가급적 투명하게 하면서 농어업인의 의견을 협상과정에 최대한 반영하도록 해야 하죠. FTA로 인해 피해가 발생할 경우에 대비해 FTA 피해보상 이행기금 조성을 확대하고 적절하게 피해보상이 이뤄질 수 있도록 시스템을 정비해나가는 것도 중요합니다.”
▼ 지속가능한 축산업을 육성하겠다고 역설했는데. “축산업이 지속가능하려면 먼저 환경오염 문제에 적절하게 대처해야 하고, 가축질병 방역과 피해보상도 적절하게 시스템화해야 합니다. 사료가격 등 축산업 생산비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부분에서도 적절한 안정제도가 정립돼야 하고요. 수요 창출과 시장 개척, 제품 개발 등을 통해 경쟁력을 강화하는 한편, 축산물의 유통 개선과 가격안정 대책도 적절하게 강구돼야 할 것입니다. 축산식품의 안전 문제도 빼놓을 수 없고요.”
“관세화로 쌀산업 무너질 수도” 인수위가 정한 국정과제에는 이 회장이 말한 부분이 그대로 반영됐다. 축산물 유통구조 개선을 위한 선진국형 도축·가공·유통 일관시스템 구축과 계열화 확립, 소비자가격 인하 유도를 위한 농협 관리운영 점포 대폭 확대도 들어 있다. 농가는 생산, 지역 축협은 수집·공급, 농협중앙회는 도축·가공·유통·판매를 담당하는 협동조합형 패커(packer·일괄처리업자)의 육성도 주요 항목이다.
▼ 요즘 돼지 돈수가 급격히 증가해 고기 가격이 폭락했습니다. 농가에서 살처분 얘기까지 나오는데 해결책이 없겠습니까. “옥수수 사료가 비싸면 돼지 농사를 적게 짓고 그러면 고기 값이 올라가죠. 그러다 옥수수 농사가 잘되면 사료가격이 떨어지고 돼지를 많이 키워 고기 가격이 떨어집니다. 그러면 옥수수 수요가 늘고 사료 가격이 올라갑니다. 그러면 돼지 사육 수가 줄어들고 가격은 또 오르고…. 이게 콘 호그 사이클(Corn-hog Cycle)이라고 해서 경기변동론의 기초예요. 우리의 경우 보통 2~3년에 한 번씩 사이클이 반복되는데 지난 10년 동안은 자연조건 때문인지, 정부 정책 때문인지 한 번의 파동도 없이 호황 국면이 계속됐어요. 이럴 때 정부가 가격을 잡겠다고 나서면 안 됩니다. 시장이 알아서 해결하도록 해야 해요.”
▼ 직불금 확대, 맞춤형 재해대책, 자유무역협정 대응 확대 등은 모두 막대한 예산이 필요합니다. 박 대통령은 계속 ‘증세 없는 공약 실천’을 주장하는데, 이게 가능할까요. “공약 실천을 위한 재원조달 문제는 공약 작업 초기부터 가장 중요하게 거론됐어요. 박 대통령은 지키지 못할 약속은 절대 안 하는 분입니다. 겪어봐서 알아요. 공약 실천에 소요되는 재원 추정과 그 재원의 조달 방안은 기초단계에서부터 필수적인 검토사항이었죠. 박 대통령은 재원조달 방안이 불투명하거나 실현이 어렵다고 판단되면 가차 없이 공약에서 뺐습니다. 공약 실천을 위한 예산 확보는 정부의 세출구조를 전면적으로 개편하는 데서 시작될 것입니다. 현재의 예산항목을 전면 재검토해 불요불급하거나 특혜성, 선심성이라고 간주되는 예산은 과감하게 삭감해 여유 재원을 마련할 겁니다. 공약 실천 과제도 우선순위와 추진 일정을 감안해 재조정할 것이고, 이를 적절히 중장기 재정계획에 반영한 다음 연도별 예산에 반영하도록 할 것으로 봅니다.”
▼ 2014년 말이면 쌀 관세화 유예기간이 끝납니다. 대책이 있습니까. “쌀 관세화는 지금까지 2번 유예를 받았기 때문에 더는 유예를 받기 어렵죠. 여러 사정으로 선택의 여지가 없어요. 관세화는 관세율을 비롯해 주요 사항에 관해 쌀 수출국들과 협상을 거쳐야 하는데, 이게 새 정부의 당면 과제 중 하나입니다. 협상에 임하기 전에 국민적 공감대 형성, 정치권의 합의가 선행돼야 합니다. 관세화가 시작되면 이렇든 저렇든 국영 무역체제가 민간 무역체제로 바뀌고 수입제한이 없어지므로 쌀 수입은 당연히 늘어날 겁니다. 정책 대비가 필요합니다. 고율의 관세를 부과한다고 해도 지금까지 최소시장접근(MMA) 명목으로 허용된 물량은 저율관세(TRQ)로 계속 수입량이 조금씩 늘어날 것이고, 우리 무역 관행으로 볼 때 이중계약이나 품목변경 등의 기회주의적 행태로 인해 시장교란 효과가 예상보다 훨씬 커질 우려도 있습니다. 잘 대비하지 않으면 우리 쌀 산업이 무너지는 사태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심각하게 대처해야 할 사안입니다.”
(계속) “회원 농협 환골탈태해야”
▼ 농협은 우리 농정의 큰 축입니다. 농협이 사업구조 개편을 통해 개혁을 시작한 지 만 1년이 넘었는데 평가를 한다면. “지난 1년간 농협 개혁의 최우선 과제는 신용사업과 경제사업 부문으로 분리된 조직의 조기 정착이었죠. 정부 지원자금 부족분 해소, 농협중앙회에 대한 상호 출자제한 및 기업집단 지정 해소 등 어려운 과제가 있었습니다. 경제사업 부문에 대한 신규 투자가 기대에 못 미친다는 평가가 있지만, 조직의 안정화와 예측하지 못했던 시행착오들을 해소해나가는 데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합니다. 앞으로 판매농협, 경제사업 활성화 등의 당초 목적과 취지가 달성되도록 후속 지원 및 관련 조치를 계획했던 대로 실천해가는 게 중요하죠. 궁극적으로 농산물 유통사업을 개선해 농업인의 실익이 증대되고 농촌 환경 변화에 부응한 사업의 확대로 농업인의 복지를 향상한다는 농협 본연의 기능을 실현해야 합니다.”
▼ 농협 개혁의 핵심은 경제사업의 활성화입니다. 여기에 회원 농협의 몫이 있다면. “2020년까지 조합원이 생산한 농축산물을 50% 이상 팔아주는 판매농협 구현이 경제사업 활성화의 목표였죠. 경제사업 활성화의 성공은 중앙회 단독으로는 불가능하고, 산지 회원 농협의 적극적인 동참이 필수입니다. 회원 농협들이 서로 역량의 차이가 있다 해도 산지의 생산을 조직화하고 육성하는 기능은 당연히 회원 농협이 해줘야 합니다.”
▼ 유통단계 축소는 경제사업 활성화의 핵이자 농가소득을 늘리는 지름길입니다. 어떤 대안이 있을까요. “올해 6월 문을 여는 안성농식품물류센터를 시작으로 2015년까지 전국 5개소에 순차적으로 설립되는 물류센터를 통해 유통단계를 축소하고 중간 유통마진을 최소화한다는 게 농협의 계획이죠. 하지만 물류센터 건립과 정착에는 오랜 시간이 소요되고 시대상황이 변화함에 따라 그 중요성과 기능도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죠. 따라서 농산물 유통에도 새로운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첨단 IT 기술과 인프라를 이용해 사이버 물류센터를 만들 수도 있고 그곳에서 생산자와 소비자가 직거래를 하게 하는 방법도 도입해야 할 것입니다.”
▼ 새 정부의 농업정책 파트너로서 농협은 어떤 길을 가야 합니까. “우선 회원 농협이 농촌지역의 경제복지센터 역할을 수행해야 하겠죠. 특히 노인복지와 지역공동체 유지, 농촌 사회적기업 육성 지원, 농촌 환경보전 등에 주도적으로 나서줘야 합니다. 고령화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고 농촌 주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켜야 합니다. 협동조합형 기업 육성을 통해 농촌의 일자리 창출을 돕고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가꾸는 기능도 맡아야 하고요. 농협이 제2의 새마을운동 실천주체가 돼야 한다는 의미죠. 이렇듯 회원 농협이 본연의 기능을 다하기 위해선 임직원을 위한 조직이 아니라 농민 조합원의 행복을 위해 봉사하고 헌신하는 지역농협, 지역축협으로 거듭 나야 하죠. 농협 개혁의 궁극적인 목표, 즉 농업인의 삶의 질 향상과 행복한 농어촌을 실현하려면 회원 농협의 조직과 지배구조, 사업 추진과 예산 집행 방식 등을 근본적으로 재편하는 과감한 변화가 필수적입니다.”
“선심, 특혜는 이제 그만” 박근혜 대통령은 후보 시절 공약집과 인수위 토론회에서 “농업은 우리의 소중한 먹거리를 책임지는 생명산업이고 또 안보산업”이라고 강조했다. 인수위 국정과제에는 국내 생산기반 확대를 통해 자급률을 제고하고 식량위기 사전대응 시스템을 확립하는 한편, ‘자주율’개념을 도입해 해외개발·비축 등 안정적 해외공급 기반을 구축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우리나라의 곡물자급률(사료용 포함)은 25% 안팎인데 그나마 쌀(83%)을 제외하면 3.4%에 불과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하위권이다. 국제연합식량기구에서 10여 년 가까이 활동해온 이 회장은 “식량자급률이 계속 떨어지는 것은 정책의 문제라기보다 구조적 문제”라고 진단했다. “국민 식량의 안정적 확보 공급은 국가의 원초적 의무이기도 하므로 결코 이 문제를 소홀히 할 수 없죠. 하지만 농업인 1인당 평균 150평(약 495㎡) 정도의 경지면적을 가진 나라에서 늘어나는 각종 농축산물(사료곡물 포함)을 자급한다는 것은 사실상 어렵다고 봐야죠. 그게 합리적 판단입니다. 식량자급률 하락의 원인은 생산과 공급의 구조적 감소로 발생하기도 하지만 수요가 증가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1인당 국민소득이 2만 달러를 넘어선 나라에서 개인의 늘어나는 수요를 억제한다는 건 불가능하죠. 자급률을 무턱대고 높여야 한다고 주장할 일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한 최대한의 자급률을 목표로 설정하는 게 중요합니다.” 이 회장은 우리 농정이 발전하기 위한 대전제를 소개하며 인터뷰를 마쳤다. “우리 농정이 발전하려면 정책 시안이 나오는 단계부터, 지방의 일선 행정조직 단계부터 현실을 충분히 감안해야 하며, 이해당사자 간의 협상과 합의가 이뤄져야 합니다. 농정은 더 이상 농업인이나 농촌 주민만이 아니라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해야 하므로 국민 전체의 공감을 얻지 못한 지역이기주의나 집단이기주의에 끌려 다녀서는 안 되죠. 정치성, 선심성 특혜와 나눠 먹기식 예산 관행은 이제 완전히 사라져야 합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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