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4.05
`GM공장 폐쇄` 위기의 군산, 롯데아울렛 출점제한 걸려…현지채용 400명 출근 기약없어
2년전 창원용지 매입한 신세계…주변시장 반대 건축허가 못내
"전통시장만큼 삶의 질도 중요"…소비자단체 vs 골목상권 충돌
스타필드 하남 입점브랜드중 80%는 자영업자·소상
◆ 규제로 좁아지는 한국쇼핑 (下) ◆
평일에도 북적이는 스타필드 하남
체험형 공간으로 유명세를 탄 복합쇼핑몰 스타필드 하남이 5일 오후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방문객들로 북적이고 있다. [한주형 기자]
경남 창원시에 사는 40대 초반 회사원 김 모씨는 주말이면 유치원생 아이와 함께 갈 만한 곳이 마땅치 않아 롯데프리미엄아울렛 김해점이나 대구신세계, 부산 센텀시티까지 가곤 했다. 2016년 신세계그룹이 창원시 중동 군부대 이전 자리에 상업용지 3만3000㎡를 매입했다는 소식에 기대가 컸다. 하지만 창원 최대 상설시장인 명서전통시장은 물론 창원중앙동상인연합회 등 소상공인들과 노창섭 정의당 시의원이 입점을 반대하고 시를 압박하고 나서자, 다음 시장에게 공이 넘겨졌다. 신세계그룹은 아직 건축허가도 내지 못했다.
김씨는 지난해 `창원 스타필드 지지자 시민모임`을 지인들과 함께 만들었다. 직장인 등 일반 시민과 소상공인 일부가 참여한 이 인터넷카페에는 4일 기준 1530명이 가입했다. 이들은 작년 말과 올해 초 기자회견까지 열고 "골목상권만큼 시민들 삶의 질과 지역 발전도 중요하니 스타필드가 조속히 입점하도록 창원시가 인허가 승인을 해달라"고 요구했다. 이들은 스타필드 입점에 반대하는 정치인에 대한 낙선운동을 벌이겠다는 입장이다.
시민들이 이례적으로 목소리를 낸 것은 복합쇼핑몰 스타필드 하남이 들어서면서 일자리 창출은 물론 외부 인구 유입으로 지역경제가 활성화하는 효과를 직접 목격했기 때문이다. 스타필드 하남 연간 방문객은 2500만명으로, 수도권 거주 인구가 한 번씩은 방문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인근 식당 하남돼지집은 매출이 전년 대비 30% 뛰는 등 인근 상권에 온기도 퍼지고 있다. 하남 쇼핑몰 근무자의 60%는 지역 주민이다.
하지만 대형 유통업체 진출에는 기존 지역 상권 반발이 뒤따른다.
이달 개장 예정이던 군산 롯데아울렛은 출점제한 규정 때문에 오픈일자를 확정하지 못하고 있다. 2016년부터 소상공인을 위한 20억원 규모 상생기금을 만들어 인근 소상공인들이 저리 대출을 받게 하는 상생협의를 진행해 왔지만, 오픈을 앞두고 보세의류협동조합 등 다른 상인회가 또 사업조정을 신청했다. 이 상인회는 개장을 3년 연기하거나 상권 활성화 지원금 260억원을 지급하라고 요구 중이다. GM 공장 폐쇄로 지역경제가 위기에 처한 군산에서는 지난 3월 롯데아울렛이 개최한 채용박람회에 3000여 명이 몰렸다. 하지만 현지 채용이 결정된 400여 명은 언제 출근할지 기약이 없다.
5년째 표류 중인 상암 쇼핑몰 용지
상암 롯데 복합쇼핑몰 용지는 주변 상인들 반발로 5년째 삽도 뜨지 못한 채 방치돼 있다. [매경DB]
지방자치단체가 정치논리에 취약한 것도 현실이다. 상암 디지털미디어시티(DMC) 6호선 DMC역 인근 롯데복합쇼핑몰 사업(상암 롯데몰)은 5년째 공회전이다. 2013년 서울시에서 1972억원에 매입한 3개 필지 2만644㎡는 여전히 비어 있다. 대형 쇼핑몰이 들어서면 상권이 붕괴된다며 망원시장 등 인근 상인들이 반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역 상인들과 태스크포스(TF)도 만들고 상생을 협의했으나 진전이 없었다. 결국 작년 말께 롯데쇼핑이 3개 필지 중 가장 큰 구역을 오피스텔로 바꾸고 나머지 2필지만 합쳐 복합쇼핑몰로 개발하겠다는 양보안을 내놓았고, 서울시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러나 지역 상인들은 여전히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롯데 측은 땅을 판 서울시가 쇼핑몰 건립허가를 내주지 않자 `서울시 도시계획 심의 미이행에 따른 부작위위법확인소송`을 서울행정법원에 제기해 1심을 기다리고 있다.
현행 유통산업발전법에 따르면 전통시장 1㎞ 이내에는 대형마트나 기업형슈퍼마켓(SSM) 신규 출점이 제한된다. 또 요건을 충족해도 지역 중소상인들이 점포가 생긴 후 상권에 영향을 줄 것으로 판단하고 사업조정을 신청하면 출점할 수 없다. 대형 유통점 출점제한은 올해 초 발의된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에서 더욱 강화된다. 중소벤처기업부는 개인까지 사업조정제도를 신청할 수 있도록 상생법 개정을 추진 중이다.
문제는 유통 생태계가 인위적 시장 개입이 발생하면 반작용을 일으키는 유기적이고 입체적인 구조라는 점이다. 대형 쇼핑몰이 영업제한을 받게 되면 입점한 중소 자영업자들과 이들에게 물건을 납품하는 중소 제조업체도 도미노처럼 타격을 입는다.
실제로 스타필드 하남의 입점 브랜드 700여 개 가운데 대기업 계열사는 20%에 불과하고, 나머지 80% 상당수가 일반 자영업자·소상공인이다. 대형마트 일요일 의무휴업으로 직격탄을 맞은 곳은 청과류를 공급하는 산지 농가다. 공산품과 달리 신선식품은 재고 관리가 어렵기 때문이다. 대형 유통업체는 자체 기획한 브랜드 상품(PB)으로 중소 제조업체 동반성장에도 기여한다. 이마트 노브랜드는 지난해 중소기업진흥공단과 우수 중소기업 성장 플랫폼 기반 조성을 위해 상품 개발과 수출 지원에 나섰다. 2016년 중소기업 협력사가 123개에서 지난해 167개로 늘었다.
하지만 규제 압박 수위가 높아지면서 대형 유통사들은 추가 출점이 막혔고, 대규모 일자리 창출도 요원해졌다.
[이한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