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Farmland Fund/도시농업

[설 자리 잃는 기업가 정신] 기업들 도전 의욕사라진다.제동걸린 한국기업, '미래 도전' 포기… 카풀·스마트팜 등 新사업접어. 해외서 신사업 도전

Bonjour Kwon 2018. 8. 26. 07:35

 

제조업 한다는 자부심 다 잃었다, 이 땅서 더는 못버텨"

 

경제 홈성호철 기자, 임경업 기자, 오로라 기자, 조승한 인턴기자(연세대 기계공학과 대학원 재학)

 

입력 2018.07.23

 

지난 20일 경기 시흥시 정왕동에 있는 중소 모터 제조업체 태화의 권동철(61) 사장은 "10년 전쯤 기회가 있었을 때 중국으로 공장을 옮기지 않은 게 후회스럽다"고 말했다. 태화는 한때 매출 110억원을 올리며 '우수 중소기업 지정'(중소기업은행), '우수중소기업인상'(중기청)을 수상한 강소(强小) 기업이었다. 모터 핵심 부품인 고정자·회전자 제조에서만큼은 국내 최고 기술력을 보유했다. 깐깐한 삼성전기에도 납품했다. 권 사장은 바늘처럼 생긴 부품 하나를 들더니 "이게 모터의 고정자"라며 "모터가 회전할 때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하는데 이게 조금이라도 휘면 모터는 불량품이 된다"고 말했다.

 

 

 

"느는건 빚과 한숨뿐" - 지난 20일 경기도 시흥시에 있는 중소 제조업체 태화의 공장에서 권동철 사장이 작업복을 입은 채 모터 제작 기계 앞에 서 있다. 권 사장은“인건비를 줄이려고 다시 작업복을 입고 기계를 돌리지만 열심히 해봐도 느는 것은 이익이 아닌 빚”이라고 말했다. 그는“10여년 전에 중국으로 공장 이전할 기회가 있을 때 나갔어야 했는데 한국에 남았던 것을 후회한다”고 했다. /고운호 기자

권 사장은 "2005년 주거래 업체가 함께 중국으로 가자고 제안했지만 거절했다"며 "제조업이 한국의 힘이라는 자부심도 셌고, 인건비만 보고 중국에 갈 게 아니라 한국에 남아 신제품으로 승부를 보자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그는 "직원들을 남겨두고 나만 살겠다고 떠나는 것도 못할 짓이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하지만 2010년 무렵부터 값싼 중국산이 밀려 들어오고, 한국 내 생산 원가는 계속 오르기만 했다. 작년 매출은 25억원으로 급락했다. 권 대표는 "한때 25명이었던 직원은 지금은 5명만 남았다"며 "올 초 15년 근속한 직원이 나가는데 돈이 없어서 빚을 내 퇴직금을 지불했다"고 했다. 그는 "오너 갑질 같은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나도 모르게 위축됐고 한국에서 중기 사장을 한다는 자부심도 다 없어졌다"고 말했다. 권 대표는 가동을 멈춘 기계를 헝겊으로 닦다가 "올해 곧 결혼하는 딸이 '아빠는 할 만큼 했어요. 그만 해요'라고 말하더군요"라고 했다.

 

◇한국땅에서 사라지는 제조업 도전정신

 

국내 산업 현장에서 '한국에서 제조업은 한계를 맞았다'는 위기감이 팽배해지고 있다. 최근 정부가 중소기업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근로시간 단축과 최저임금 인상을 밀어붙인 데 대해 중소기업인들은 '더 늦기 전에 한국을 떠나야 할 때'라는 시그널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제조업 현장에서는 "진짜 '한국 엑소더스(대탈출)'는 내년부터 시작될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내년 1월 최저임금 8350원이 시행되는 데다 2020년 1월부터는 직원 수 300인 미만의 중소기업에도 근로 시간 단축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대구 달성군에 있는 자동차 부품 업체 Y사는 2년 전부터 중국·인도·헝가리 등지에 4개의 해외 신규 공장을 연이어 지었다. 최근에는 동남아시아에 추가 공장을 짓기 위해 부지를 알아보고 있다. 이 회사는 20여년 전 창업 이후로 줄곧 한국 공장을 고집한 수출 제조 업체였다. 최근 4년 동안 매출이 290억원에서 830억원으로 증가할 정도로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인정받고 있다. 박모 대표는 "한국 내 노동 환경이 기업에 갈수록 불리해지고 있다"며 "중장기적으로 한국에서 (제조업이) 안될 게 뻔히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국내 공장의 직원 80여명은 해고하지 않지만 인원 보충하지 않고 자연 감소로 내버려둘 생각"이라고 말했다.

 

인천에 있는 금형 업체 D사는 최근 태국에 공장 부지를 구매했다. 이 회사의 강모 대표는 "한국에서는 젊은 신입사원을 구하기도 어려운 마당에 이제 근로 시간까지 단축되면 공장을 제대로 돌리기 힘들다"며 "지금 태국에서 직원을 고용해 잘만 가르치면 1~2년 후 제대로 물량을 뽑을 수 있다"고 말했다.

 

◇자부심 잃고 위축된 기업인들

 

국내 제조업 현장에서는 경영 상황이 최악으로 치닫고 있는데도 제대로 된 대책을 못 내놓는 정부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다.

 

현장에서 만난 20여명의 사장들은 "아무리 우리가 떠들어봐야 정부는 꼼짝도 안 한다. 조용히 있다가 해외로 나가든가 그냥 문 닫겠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1년 전 만났던 한 중견기업의 관계자는 "해외 이전을 추진하는 기업 사례로 신문에 나온 뒤 정부 부처로 불려가 경고받았고 오비이락(烏飛梨落) 격으로 세무조사까지 받았다"고 말했다.

 

해외 공장 이전으로 중소기업의 고용이 흔들리면 국내 전체 고용 환경이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에 따르면 국내 전체 근로자 가운데 중소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87%(1311만명)로 미국(41.33%)·일본(52.8%)·영국(53.08%)·프랑스(63.3%) 등 주요 국가에 비해 월등하게 높다. 중소기업의 한 대표는 "한계 기업은 문을 닫고 자금 여력 있는 기업들은 다들 해외로 나가면 한국의 젊은이들은 누가 고용하느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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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순찬 기자, 김강한 기자 | 2018/07/28 03:06

 

[설 자리 잃는 기업가 정신] [下] 기업들 도전 의욕 사라진다 기업가 정신 지수, 44개국 중 33위

 

현대차는 작년 8월 국내 카풀(차량 동승) 스타트업 럭시에 50억원을 투자했다. 작년 초 차량 공유·인공지능(AI) 등 신사업 발굴·투자를 위한 전략기술본부를 출범한 후 첫 국내 투자였다. 현대차는 럭시와 함께 다양한 혁신 프로그램을 선보였다. 작년 말 현대 하이브리드차를 리스(대여) 방식으로 구매한 고객이 카풀을 하면 리스료를 차감해주는 프로그램을 내놨다. 차량 운전자의 운행 패턴과 카풀 탑승객의 이동 경로를 조합해 최적의 차량을 배차해주는 소프트웨어(SW)도 개발했다. 당시 현대차 내부에서는 "로봇 택시와 무인 배달 차량과 같은 혁신 기술 개발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가 컸다.

 

하지만 현대차는 투자 6개월 만인 올 2월 럭시 지분을 돌연 매각했다. 카풀 서비스에 반대하는 택시 업계의 반발 때문이었다. 현대차의 고객인 택시 업계의 '현대차 불매 운동' 움직임도 큰 부담이었다. 현대차 관계자는 "럭시 대표가 택시 업계의 강력한 압박에 '도저히 견디기 어렵다'며 회사 매각을 결정해 현대차 지분도 같이 넘겼다"고 말했다. 미국 2위 차량 공유업체 리프트의 주요 주주인 GM이 리프트와 함께 갖가지 새로운 실험을 하며 2019년 무인 자동차 상용화에 박차를 가하는 반면 현대차는 출발부터 제동이 걸린 셈이다.

 

 

 

 

한국 기업들의 새로운 도전이 사라지고 있다. 전 세계가 빠르게 4차 산업혁명으로 달려가는 상황에서 한국은 신사업을 가로막는 규제, 이해 당사자와 조정 역할에 소극적인 정부, 반(反)기업 정서, 성숙하지 못한 시장 환경 등 다양한 문제들로 기업들이 꽁꽁 묶여 있다.

 

글로벌 기업 암웨이가 올해 발표한 글로벌 기업가 정신 보고서에서도 한국의 기업가 정신 지수는 39점으로 전체 44개 조사국 중 33위를 차지했다. 글로벌 평균(47점)과 아시아 평균(61점)을 크게 밑돈 수치다.

 

LG그룹의 IT(정보기술) 서비스 기업인 LG CNS는 한국에서 농업과 기술을 결합한 스마트팜(smart farm) 사업을 시작해 해외 시장에 진출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수년째 한국에서 첫 삽도 뜨지 못한 채 농민들로부터 공적 취급을 받고 있다.

 

LG CNS는 지난 2016년 전북 새만금에 스마트팜 단지를 조성하고 전문 재배사가 수출용 토마토·파프리카를 재배해 전량 수출하려고 했지만 '대기업의 농업 진출은 안 된다'는 농민 단체의 격렬한 반발에 부닥쳐 사업을 접었다.

 

최근 농림부가 2022년까지 스마트팜 혁신밸리 4곳을 조성하는 사업에 다시 나섰지만 이 역시 일부 농민 단체들의 반발에 직면한 상황이다. 재계 관계자는 "막상 농민 반대에 맞닥뜨리면 정부는 기업이 알아서 갈등을 해결하라며 발을 뺀다"며 "기업들 사이에서는 스마트팜이 트라우마 같은 존재가 됐다"고 했다.

 

대기업뿐만이 아니다. 서울대에서 자율주행차 연구를 총괄하는 서승우 지능형자동차IT연구센터장(전기정보공학부 교수)은 자율차 개발에는 성공했지만, 수익 모델 단계에서 발목이 잡혀 있다. 서 교수는 "자율차 개발 이후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하지만 국내에서는 승차 공유나 셔틀버스와 같은 유료 영업은 전혀 못하게 돼 있다"면서 "지금처럼 도로교통법, 운송사업법에 규제가 겹겹이 막혀있으면 어떻게 신사업에 도전할 수 있겠느냐"고 했다.

 

이런 현실은 수치로도 확인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지난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4차 산업혁명의 주요 기술인 인공지능, 빅데이터·클라우드, 사물인터넷, 3D 프린팅, 지능형 로봇에서 한국은 기술 경쟁국인 미국·유럽·중국·일본에 모두 뒤처진 4~5위로 사실상 경쟁국 가운데서 꼴찌에 머물고 있다.

 

암웨이의 글로벌 기업가 정신 조사에서도 한국은 작년보다 순위가 10계단이나 떨어지며 조사 대상 44국 가운데 가장 크게 하락했다.

 

◇한국 떠나 해외서 신사업 도전

 

일부 기업들은 규제와 반기업 정서에 밀려 한국을 떠나 해외에서 신사업에 도전하고 있다. 국내 양대 포털업체인 네이버와 카카오 모두 일본에서 블록체인 사업을 진행 중이다.

 

카카오는 지난 3월 블록체인 자회사 '그라운드X'를 일본에 설립했다. 카카오는 "아시아 시장을 겨냥했기 때문에 해외를 택했다"는 것이 공식 입장이지만, 업계에서는 가상 화폐 발행(ICO)을 금지한 한국 대신 규제가 유연한 일본을 택한 것으로 보고 있다.

 

네이버도 일본의 자회사 라인을 통해 블록체인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상태다. 지난 1월 일본에 블록체인 기반의 금융사 '라인 파이낸셜'을 설립했고 연내에 자체 가상 화폐를 발행할 계획이다. 이달 중순에는 싱가포르에 가상 화폐 거래소 '비트박스'도 열었다.

 

벤처업계 관계자는 "한국에서 네이버와 카카오가 가상 화폐 관련 사업을 하면 검찰 수사를 받거나 국회에 불려다니느라 날이 샐 것"이라며 "한국에서 손톱만큼이라도 논란이 될 만한 신사업은 절대로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두나무 등 국내 주요 가상 화폐 거래소는 줄줄이 검찰 조사를 받았다.

 

서강대 박수용 교수(컴퓨터공학과)는 작년 말 연구실에서 개발한 블록체인 기술을 들고 미국 실리콘밸리로 향했다. 벤처 투자자들에게 기술을 알리고 반응을 보기 위해서였다. 한국에서도 여러 투자자들을 만났지만 실리콘밸리 투자자들은 달랐다.

 

박 교수는 "투자 위험, 출구전략을 집중적으로 묻는 한국과 달리 미국에선 독창적인 기술 그 자체에 관심을 보였고 심지어 새로운 기술 아이디어와 비즈니스까지 제안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투자자들의 비즈니스 제안 중에는 한국에서는 가상 화폐 발행 등 규제 때문에 불가능한 것도 여럿 있었다.

 

박 교수가 난색을 표하자 미국 투자자들은 "아예 회사를 미국에 설립하라"고 제안했다고 한다. 박 교수는 "고민 끝에 일단 한국에서 시작하기로 했다"면서도 "세계 시장에서 꿈을 펼치기 위해 해외로 나가는 게 아니라 규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해외 진출을 고민해야 하는 것이 너무 안타깝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