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9.09
포브스 선정 글로벌 100대기업 판도 변화
◆ 끝나지 않은 금융위기 10년 ② ◆
리먼브러더스 파산으로 본격화한 2008년 금융위기는 세계 경제 판도를 바꾸는 동시에 글로벌 핵심 산업 재편을 가속했다. 무엇보다 세계 금융권을 쥐락펴락했던 미국 월가 금융회사들이 처참히 무너지거나 다른 회사로 흡수·합병되는 신세로 전락했다. 리먼브러더스는 간판을 내렸고, 메릴린치는 뱅크오브아메리카(BoA)에 합병됐다. 반면 금융위기는 젊고 혁신적 아이디어로 무장한 새로운 강자를 탄생시키기도 했다.
9일 매일경제가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선정한 100대 기업을 분석한 결과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하기 1년 전인 2007년 세계 100대 기업 중 올해 해당 리스트에 살아남은 기업은 불과 41개에 불과했다.
2007년 100대 기업에 이름을 올렸던 기업 중 59개가 올해 상위 100대 명단에서 사라졌다. 포브스 100대 기업 순위는 매년 기업 매출액, 수익, 자산, 시가총액 등을 토대로 합산한 '종합 성적표'다.
무엇보다 금융위기 진원지인 미국 금융기업 몰락이 두드러졌다. 세계 100대 기업에 이름을 올린 금융회사는 2007년 50개에서 올해 41개로 줄어들었다. 특히 이 가운데 미국 금융기업은 15개에서 8개로 대폭 줄어들었다. 2007년 1위에 당당히 올랐던 미국 씨티그룹은 올해 100대 명단에서 찾아볼 수 없다.
월가 투자은행(IB)의 상징인 골드만삭스도 명단에 이름을 올리기는 했지만 25위에서 60위로 추락했다. 2007년 골드만삭스와 공동 25위였던 모건스탠리는 올해 50위에 그쳤다. 올해 기준 '톱 10' 안에 든 미국 금융회사는 JP모건(3위), BoA(6위), 웰스파고(7위)에 불과했다.
월가의 빈자리는 중국 금융기업이 메웠다. 올해 기준 중국공상은행(ICBC)이 1위를 차지한 것을 필두로 중국건설은행(2위), 중국농업은행(5위), 중국은행(9위), 핑안보험그룹(10위) 등 중국 금융회사들이 상위 10위 중 무려 절반을 차지했다. 2007년 중국 금융기업이 세계 100대 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불과 3개였지만 올해는 무려 12개로 대폭 늘었다. 미국을 앞지른 것이다.
중국 기업 약진은 금융업에만 그치지 않았다. 2007년 100대 기업에서 중국 기업은 5개에 불과했으나 올해는 21개로 4배 넘게 증가했다. 금융위기 이후 중국이 무섭게 성장하면서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됐다.
기사의 2번째 이미지이미지 확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에 무역전쟁을 선포한 것도 중국 부상을 경계하기 위한 조치라는 분석이 가능하다. 미국은 중국산 수입품에 대해 고율 관세를 부과하고 있는데 중국의 첨단 제조업 육성 정책인 '중국 제조 2025' 관련 업종이 대거 포함됐다.
업종별로도 지난 10년 새 변화가 확연하다. 세계 100대 기업에서 정확히 절반을 차지하던 금융기업은 41개로 줄어든 반면 정보기술(IT) 업종 기업은 같은 기간 12개에서 15개로 늘었다. 개수로는 소폭이지만 구성 비중은 크게 바뀌었다. 휴렛패커드(HP), 프랑스텔레콤, 이탈리아텔레콤 등 하드웨어를 위주로 한 기술 업종은 10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그사이 애플(8위), 알파벳(23위), 아마존(53위), 페이스북(77위), 알리바바(81위) 등 4차 산업 기반 기술기업이 부상했다. 한국을 대표하는 삼성전자는 2007년 63위에서 올해 14위로 껑충 뛰어올랐다.
이러한 변화는 증시에도 고스란히 나타났다. 미·중 무역전쟁에도 불구하고 애플에 이어 아마존까지 '꿈의 시가총액'으로 불리는 1조달러를 돌파하는 등 미국의 대표 IT주로 불리는 이른바 'FAANG(페이스북·아마존·애플·넷플릭스·구글)'의 시총이 올해 들어 일제히 급증했다. 앞으로 4차 산업혁명이 세계 경제에 중심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와 관련해 지난달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전미경영학회(AOM)에서는 세계 유수 경영학 석사 학위(MBA) 졸업생들은 과거에 비해 월가 대신 실리콘밸리로 눈을 돌리는 경향이 점점 더 뚜렷해지고 있다고 석학들이 입을 모았다. 아마존, 구글 등 기업이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주도할 '혁신' 기업의 상징인 데다 보상 역시 크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샤론 오스터 예일대 교수는 "기존 대기업들이 스타트업 혹은 최신 IT회사와 인재 쟁탈전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회사 매력에 대해 좀 더 고민할 필요가 있다"며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기존 기업 혁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국제회계법인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 분석에서도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이후 성장을 주도한 대표적 기업은 애플, 알파벳, 페이스북, 아마존 등 IT기업으로 조사됐다.
[뉴욕 = 장용승 특파원 / 서울 = 김덕식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