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9.09
서울 주택 공급 확대가 집값 안정을 위한 최고 정책과제로 떠올랐지만 이미 예정됐던 1만가구의 신규 주택 공급이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분양가 발목에 줄줄이 늦어지고 있다. 이달 들어 당·정·청이 한목소리로 공급 확대 필요성을 강조한 것과 달리 정부 스스로 서울 도심의 주택 공급을 늦추고 있어 자가당착에 빠졌다는 비판이 나온다. 9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현재 서울에서만 7개 재건축·재개발 사업 구역의 일반분양이 분양가를 둘러싸고 조합·건설사와 HUG 간 갈등으로 일정이 지연되고 있다. 일반분양 가구 수 기준 3754가구, 조합원 물량 포함 총가구 수 기준 1만822가구의 대규모 새 아파트 공급 일정이 차질을 빚고 있는 것이다.
당초 지난 4월 분양 예정이던 동대문구 청량리4구역 재개발인 '롯데캐슬 SKY-L65'는 9월로 한 차례 분양 일정을 연기했다.
이 구역은 HUG와의 분양가 줄다리기가 길어지면서 아직까지도 구체적인 분양 일정을 확정하지 못한 상태다. 롯데건설 관계자는 "HUG와 의견차를 좁히기가 쉽지 않다"면서 "연내 분양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인근 동부청과시장 정비 사업으로 공급 예정인 한양 '동대문 수자인' 역시 마찬가지다. 지난 4월 분양 예정이었으나 여전히 일정을 확정하지 못하고 있다. 대림산업이 시공을 맡은 동대문구 용두5구역 재개발 사업인 'e편한세상 청계 센트럴포레'도 현재 10월 분양을 목표로 하고 있으나 아직까지 HUG와 분양가 줄다리기가 계속되고 있어 미뤄질 가능성이 작지 않다.
은평구 수색·증산뉴타운의 수색9구역(DMC SK VIEW)은 당초 9월 분양 예정이었으나 분양가를 둘러싼 HUG와의 갈등으로 최근 11월로 연기했다. 바로 옆 증산2구역도 당초 12월로 분양 일정을 계획했으나 HUG와의 분양가 이견으로 내년 초로 연기하기로 결정했다.
HUG는 현재 서울 전역과 경기 과천·광명·하남, 세종 등을 고분양가 관리지역으로 지정하고 자체 규정인 '고분양가 사업장 기준'에 해당할 경우 분양보증을 거절하는 방식으로 분양가를 통제하고 있다. 소위 '110%룰'로 불리는 HUG 분양보증 문턱을 넘으려면 신규 아파트 분양 가격이 △사업장 인근(반경 1㎞ 이내) 아파트의 평균 분양가 또는 평균 매매가의 110% 이하 △사업장 해당 지역(자치구)에서 입지·가구 수·브랜드 등이 유사한 최근 1년 이내 분양 아파트의 분양가 이하라는 두 가지 기준을 모두 충족해야 한다.
수색9구역의 경우 HUG는 인근에서 가장 최근(작년 6월) 분양한 'DMC 롯데캐슬 더퍼스트'의 3.3㎡당 평균 분양가 1690만원을 기준으로 110% 수준인 1890만원을 한도로 제시했다. 전용면적 84㎡ 기준 약 6억2000만원으로 현재 9억원대 중반에서 거래되는 조합원 입주권 시세와 비교하면 3억원 이상 낮은 가격이다.
반면 조합 측은 인근 지역 평균 매매가를 기준으로 3.3㎡당 2200만원을 요구하고 있다. 조합 관계자는 "HUG가 분양가를 낮추기 위해 인근 최신 아파트 분양가만 갖고 들이대고 매매가격은 아예 들여다보지 않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연말 분양을 예정했던 강남권 단지 상당수도 분양가 문제로 내년 초로 일정이 밀릴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당초 4월 분양을 계획했던 서초우성1차 재건축인 '래미안 리더스원'은 아직까지도 정확한 분양 일정을 잡지 못하고 있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핵심은 분양가 협상 난항이다. 분양 관계자는 "일단 9월 중 분양으로 일정을 잡았지만 아직 분양가 협상이 끝나지 않아 더 밀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서초구 서초동 무지개아파트를 재건축해 짓는 GS건설의 '서초그랑자이'와 강남구 개포동 개포주공4단지 재건축인 '개포그랑자이'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HUG의 과도한 분양보증 규제로 인한 분양 지연은 서울만의 문제가 아니다. 수도권 요지에 대규모 물량으로 관심을 모은 과천지식정보타운도 분양가 협상으로 난항을 겪고 있다. 올 상반기부터 분양이 시작될 것으로 예상됐지만 아직까지 분양 일정이 확정된 곳은 한 곳도 없다. 가장 먼저 분양이 예고됐던 S4블록의 경우 당초 4월 분양 예정이었으나 고분양가 논란에 발목이 잡혀 있다. 업계는 3.3㎡당 분양가를 2500만원 수준으로 예상했으나 기존 세곡·내곡·위례신도시에 비해 너무 비싸다는 얘기가 나오면서 속도를 못 내고 있다.
김학권 세중코리아 회장은 "로또 분양에 사람들이 몰리면서 부동산 시장 전체가 매우 뜨거운 것처럼 분위기를 만들어가고 이것이 기존 주택 가격에도 상향 압박을 가하고 있다"면서 "분양 가격은 시세 대비 80~85% 수준이 적당하다"고 말했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정부가 분양원가 공개 확대, 재개발 조합원 지위 양도 규제 강화 등에 나서면서 결과적으로 주택 공급이 더욱 위축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최재원 기자 / 박인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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