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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수출 빅6 ‘퍼펙트 스톰’ 속으로. 조선, 세계 선박발주량 -66% 암울.2월만 수출감소 피해 38억 달러 “경기침체 장기화 조짐

Bonjour Kwon 2020. 3. 13. 07:34

 

중앙일보 2020.03.13

 

한국의 수출 주력 산업이 ‘퍼펙트 스톰’(여러 악재가 겹친 초대형 경제 위기)에 휩쓸릴 위기에 처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세계 실물경제를 집어삼키면서다. 미국·유럽·아시아 소비시장은 얼어붙었고, 글로벌 소재·부품 공급망은 속속 멈춰 서고 있다. 구조적으로 대외 의존도가 높은 한국 산업의 타격이 클 수밖에 없다.

국내 자동차 산업은 생산 및 판매 절벽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12일 한국자동차산업협회(KAMA)에 따르면 지난달 국내 완성차 5개사의 생산량은 전년 동기 대비 26.4% 감소한 18만9235대로 집계됐다. 2월만 놓고 보면 1999년 이래 최저치다. 중국 공장들이 문을 닫으면서 부품 공급이 끊겼고, 국내 업체들도 공장 가동을 중단해야 했다. 지난달 내수 판매량도 8만1722대로 전년보다 21.7% 감소했다. 최대 시장인 미국의 올해 자동차 판매량이 전년 대비 9%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는(모건스탠리) 등 수출도 먹구름이다. 제네시스 G80·아반떼 등 신차 발표도 차질이 생겼다.

자동차 2월 생산량 21년 만에 최저반도체 반등 대신 ‘L자 불황’ 걱정스마트폰 -10% 노트북 -26% 전망정유, 정제마진 급락 팔수록 손해S&P “기업 신용도 대거 하향 위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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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코로나19팬데믹(세계적 대유행)에 따른 수요 감소로 올해 자동차 생산 규모는 350만대(지난해 395만대)까지 떨어질 수 있다”며 “생산 자동차 네 대 중 세 대를 수출하는 한국은 올해 수출과 내수 모두 최악의 한 해가 될 것 같다”라고 걱정했다.

그나마 한국 경제의 버팀목 역할을 하던 전자·반도체도 살얼음판이다. 당장 신학기와 결혼을 준비하는 봄철 특수가 사라졌다. 국제적으로도 유동인구 감소와 소비 침체로 수요가 줄었다. 스트래티지애널리틱스는 올해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 규모가 작년보다 10% 위축될 것으로 예상했다. TV 판매는 1분기 전년 대비 9%(IHS마킷), 노트북은 1분기 26%(트랜드포스)로 줄어들 전망이다. 여기에 오는 7월 열릴 도쿄올림픽이 연기될 수 있다는 점도 악재다. 유진투자증권 이승우 연구원은 “주요 제품 개발 및 출시 지연 우려가 커지고 있다”며 아이폰9 출시 지연을 예로 들었다.

이 때문에 한국 수출의 20% 정도를 책임지는 반도체 산업에서도 불안감이 감지되고 있다. 반도체는 정보기술(IT) 기기에 쓰이는 부품인 만큼 이들의 생산 감소로 반도체 수요가 줄어드는 도미노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시장조사업체 IC인사이츠는 “당초 2020년 초에는 반도체 산업이 2019년 가파른 하락세를 지나 상당히 견실한 회복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했다”면서 “그러나 코로나19로 반도체 산업도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짚었다. 이어 “사태가 단기간에 끝나면 V자형·U자형 회복을 보이겠지만, 현재는 L자형 불황 가능성을 높게 보는 게 합리적”이라고 설명했다. 증권업계에서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LG전자 등의 상반기 실적 전망을 하향 조정하고 있다.

 

 

 

조선, 세계 선박발주량 -66% 암울

한국 산업의 한 축을 담당하는 석유화학·정유 업계도 울상이다. 정유업계는 국제 유가 하락까지 겹쳐 엎친 데 덮친 격이다. 지난해 10월 이후 손익분기점 수준인 배럴당 4달러대 이하로 떨어진 ‘정제마진’은 연초 회복할 기미를 보였지만, 이달 첫째 주 1.4달러로 다시 내려앉았다. 쉽게 말해 팔수록 손해를 본다는 것으로, 경기침체에 따른 매출 감소뿐만 아니라 수익성까지 흔들리고 있다는 의미다. 석유화학업계는 글로벌 수요 위축이 심각한 상황으로 단기적 충격이 우려되고 있다.

조선업 등 한국의 다른 대표 산업 역시 코로나19의 사정권에 접어들고 있다. 클라크슨리서치에 따르면 지난달 전 세계 선박 발주량은 30만CGT(표준화물선 환산톤수·18척)로 지난 1월(87만CGT·33척)에 비해 66% 줄었다.

후방산업으로 꼽히는 철강업계는 공급과잉, 원재료(철광석) 가격 상승 등으로 경영환경이 좋지 않다. 전방산업의 침체가 길어지면 철강 수요가 더 줄 수 있다. 중국 내 철강재 재고가 늘면서 세계 철강업체의 생산과 판매가격도 영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 2월만 수출감소 피해 38억 달러 “경기침체 장기화 조짐”

지난해 해외건설 수주가 13년 만에 최저를 기록한 건설업계는 올해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김종국 해외건설협회 대외협력실장은 “통상적으로 해외 건설 수주 실적은 유가와 함께 움직인다”며 “주로 중동 산유국에서 석유화학 플랜트 수주를 많이 하는데, 유가가 낮아지면 장기적으로 발주액이 줄어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유엔 무역개발협의회(UNCTAD)는 코로나19로 인해 전 세계 수출액이 지난달 500억 달러 감소했으며, 이 가운데 한국은 38억 달러(4조5800억원)의 수출감소 피해를 봤을 것으로 분석했다. 유럽연합(EU)·미국·일본에 이어 4위다. 한국은 국내총생산(GDP)에서 수출의 비중이 40%대로 높다. 수출이 줄면 기업이 투자를 줄이고, 이로 인해 소비가 위축되고 일자리가 줄어드는 연쇄효과가 나타나는 구조다. 주요 경제 전망기관이 한국의 성장률을 잇달아 0~1%대로 하향 조정하는 배경이다.

스탠다드앤푸어스(S&P)는 한국 기업들의 신용도 하향 압박이 심화되고 있다고 이날 밝혔다. S&P는 “한국은 확진자 수가 많고 기업들의 교역과 수출의존도가 높아 신용등급에 미치는 영향이 광범위하게 나타날 것”이라며 “올 상반기에 실적 저하를 보이는 기업이 많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가장 큰 피해가 예상되는 업종은 여행·레저·항공산업이며 정유·화학·철강·유통·자동차·전자 업종 등도 큰 위험에 노출돼 있다고 판단했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내수경기가 이미 푹 꺼진 상황에서 코로나19의 세계적 대유행이 공식화됐다”며 “내수와 수출이 동시다발적으로 타격을 받으면서 한국 경제의 침체가 장기화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손해용 경제에디터 sohn.yo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