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배준희,조동현 2026.05.15
최근 미국 텍사스에서는 천연가스 엔진 42대를 묶어 790㎿(메가와트) 규모 전력을 공급하는 데이터센터용 오프그리드(Off-Grid) 발전소가 추진 중이다. 오프그리드 발전은 한국전력 같은 공공 전력망에서 전기를 끌어오는 대신, 데이터센터 부지 안이나 인근에 별도 발전 설비를 설치해 자체 전력을 공급하는 방식이다. 또 다른 미국 데이터센터 현장에서도 중속 엔진 27대가 507㎿ 규모 주 전력원으로 쓰인다.
과거 배 밑바닥 기관실에서 프로펠러를 돌리던 중속 엔진이 AI 데이터센터 옆에 설치돼 전력원 역할을 맡았다. 바다 위에 데이터센터를 띄우는 ‘부유식 데이터센터(Floating Data Center)’에서는 선박 엔진 기술이 전력 생산과 냉각 문제를 동시에 풀 카드로 거론된다. 데이터센터 수요 폭증으로 전력 인프라 병목 현상이 심화하자 즉시 설치해 대규모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엔진 발전기가 AI 인프라 핵심 부품으로 부상했다.
한때 레거시 산업 상징으로 여겨졌던 엔진이 AI 전력난, 친환경 지연, 지정학적 안보 수요를 타고 첨단 산업 전면에 등장하는 사례가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제조업 강국 K엔진 몸값도 하루가 다르게 뛴다. 미국·유럽·일본 등 전통 엔진 강국은 노후화한 생산 라인과 숙련 인력 부족으로 수요 급증에 민첩한 대응이 어렵다. 조선·건설기계·방산·발전 설비를 아우르는 제조 기반과 납기 경쟁력을 갖춘 한국의 K엔진이 주목받고 있다.
한화엔진의 올 1분기 DF(이중연료) 엔진 신규 수주액은 9323억원으로 전체 선박 엔진 수주액의 80%에 달한다. 사진은 한화엔진 생산시설. (한화엔진 제공)
한화엔진의 올 1분기 DF(이중연료) 엔진 신규 수주액은 9323억원으로 전체 선박 엔진 수주액의 80%에 달한다. 사진은 한화엔진 생산시설. (한화엔진 제공)
K엔진 르네상스 원동력은
중후장대 곳곳서 존재감 과시
중후장대 산업 곳곳에서 엔진이 존재감을 과시한다. K엔진의 재발견은 기업 실적으로도 확인된다. HD현대건설기계는 올 1분기 영업이익 1907억원으로, 1년 전 같은 기간보다 88% 증가하는 ‘깜짝 실적’을 냈다. 이 회사 엔진 사업 부문 영업이익률은 14.1%에 달했다. 선박용 친환경 엔진을 만드는 한화엔진은 올 1분기 영업이익이 514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배 이상 늘었다. 가스터빈을 앞세운 두산에너빌리티는 미국 빅테크 전력 인프라 수요를 타고 수조원 규모 수주를 따냈다. 전문가들은 ▲AI 전력 쇼크 ▲친환경 전환 지연 ▲지정학·안보 위기 등 외부 요인이 맞물려 K엔진의 르네상스를 열고 있다고 바라본다.
사진설명
➊ AI 전력 쇼크
엔진 기반 분산발전
K엔진 르네상스의 첫 번째 원동력은 AI 전력 쇼크다. AI 데이터센터 확산은 전력 시장 수요 곡선을 기하급수적으로 끌어올렸다.
산업계에 따르면, 생성형 AI 확산으로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가 폭증하면서 전력 인프라 병목이 화두로 떠올랐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AI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는 지난해 485테라와트시(TWh)로 전년 대비 16.6% 늘었다. 이 기간 세계 발전량 증가율은 2.8%에 그쳤다. 이 때문에 과거 데이터센터 경쟁력이 반도체·서버·네트워크 장비에서 갈렸다면, 이제는 “전기를 얼마나 빨리, 안정적으로 확보하느냐”가 사업 성패를 좌우한다. 대규모 데이터센터는 24시간 안정적인 전력을 필요로 하므로, 태양광·풍력 같은 재생에너지와 기존 전력망 증설만으로는 속도를 맞추기 어렵다. 재생에너지는 친환경이 강점이지만, 출력 변동성이 크고 송전망 증설에 긴 시간이 걸린다.
이 과정에서 수요가 급증했던 게 가스터빈이다. LNG를 연료로 대규모 전력을 비교적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고 재생에너지 출력 변동성을 보완하는 역할도 가능해서다. 문제는 공급이다. GE, 지멘스에너지, 미쓰비시중공업 등 글로벌 가스터빈 강자 생산 라인은 이미 포화 상태다.
기존 ‘빅3’ 생산과 납기에서 심각한 병목 현상이 빚어지자 국내에서 주목받는 기업이 두산에너빌리티다. 두산에너빌리티는 6년 안팎 약 1조원을 투자해 지난 2019년 발전용 가스터빈 국산화에 성공했다. 2023년 상업 운전을 시작할 때까지 약 10년을 투자했는데, 최근 해외에서 주문이 밀려든다는 후문이다. 양승윤 유진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대형 가스터빈 업체들의 납기는 3~4년 정도 걸리지만, 엔진사들은 2년 정도로 납기 속도 측면에서 우위가 있다”며 “가스터빈 업체들의 공급 병목이 지속된다는 가정 하에 육상 발전 엔진 수요도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데이터센터의 극심한 전력난은 선박용 엔진 기반 분산발전 기술마저 불러냈다. 가스 엔진이나 중속 엔진은 가스터빈보다 대당 출력은 작지만, 여러 대를 묶어 필요한 만큼 전력을 늘릴 수 있는 모듈형 구성이 가능하다. 설치 기간도 상대적으로 짧고 데이터센터 부지 안이나 인근에 자체 발전 설비를 세우는 오프그리드 방식과도 잘 맞는다는 평가다. 이미 미국에서는 천연가스 엔진 수십 대를 묶어 수백 ㎿급 전력을 공급하는 데이터센터용 발전 프로젝트가 줄줄이 추진 중이다. 두산에너빌리티 가스터빈, HD현대중공업 ‘힘센(HiMSEN)엔진’ 같은 한국 기업이 주목받는 이유다. 배기연 메리츠증권 애널리스트는 “부유식 데이터센터 아이디어를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중고선이나 바지선을 활용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조선업에 뜻밖에 데이터센터 훈풍이 불고 있다”고 분석했다.
➋ 친환경 전환 과도기
대체연료 엔진 수요 급증
K엔진 르네상스의 두 번째 원동력은 친환경 전환 지연이다.
해운 업계는 국제해사기구(IMO) 탄소배출 규제 강화에 맞춰 선박 연료를 바꾸고 있다. 하지만, 탄소배출 없는 ‘전기 선박’ 대중화는 아직 요원하다고 산업계는 입을 모은다. 특히, 대형 상선은 장거리 운항에 필요한 에너지 밀도가 높아 현재 배터리 기술만으로는 경제성을 맞추기 어렵다. 충전 인프라와 운항 거리, 화물 적재 효율까지 감안하면 당장 배터리만으로 초대형 컨테이너선이나 LNG선, 벌크선을 대체하기 어렵다는 게 산업계 대체적인 시각이다. 이런 과도기를 타고 LNG·메탄올·암모니아 등 대체연료 기반 엔진이 현실적인 탈탄소 해법으로 떠올랐다는 분석이다.
이런 흐름은 한국 조선 생태계 전반에 기회로 작용한다고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한국 조선사는 LNG선·컨테이너선 등 고부가 선박에서 이미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했다. 친환경 엔진·연료공급장치·추진 시스템까지 결합하면 선박 한 척당 부가가치가 더 커진다. 과거 엔진이 조선업 하위 기자재로 인식됐다면, 이제는 선박 규제 대응 능력과 중고선 가치를 좌우하는 핵심 장치로 위상이 변화했다는 평가다.
➌ 지정학·안보 위기
엔진의 전략자산화
K엔진 르네상스의 세 번째 원동력은 지정학·안보 위기다. AI 전력난과 친환경 전환 지연이 엔진의 산업 가치에 숨을 불어넣었다면, 지정학 위기는 엔진의 안보 가치를 끌어올렸다는 평가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각국은 무기체계 안정적 조달과 핵심 부품 자립을 국가 안보 문제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엔진은 단순한 기계 부품이 아니라 전투기·전차·무인기·함정의 성능과 수출 가능성을 좌우하는 전략자산으로 떠올랐다는 평가다. 특히, 무기체계에서 엔진을 해외에 의존하면 성능 개량, 정비, 수출 승인, 부품 조달에서 협상력이 열위에 놓인다. 전차와 항공기처럼 기동성이 핵심인 플랫폼은 엔진 기술 내재화 여부에 따라 산업 희비가 갈린다는 분석이다. 전방 산업 변화를 노려 한국 기업도 발 빠르게 엔진 기술을 방산·우주 영역으로 확장하고 있다. HD현대건설기계는 K2 전차용 국산 디젤 엔진 기술을 확보해 폴란드 수출형 전차에 적용한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정부와 함께 국산 전투기와 무인기에 탑재할 첨단 항공 엔진 개발을 서두른다. 우주 경쟁에서도 엔진은 핵심이다. 누리호 발사 성공으로 확인된 액체로켓 엔진 기술은 향후 민간 우주 산업의 기반 기술로 평가된다.
두산에너빌리티는 6년 안팎 약 1조원을 투자해 지난 2019년 발전용 가스터빈 국산화에 성공했다. 사진은 두산에너빌리티가 개발한 국산 가스터빈. (두산에너빌리티 제공)
두산에너빌리티는 6년 안팎 약 1조원을 투자해 지난 2019년 발전용 가스터빈 국산화에 성공했다. 사진은 두산에너빌리티가 개발한 국산 가스터빈. (두산에너빌리티 제공)
엔진 사업 다각화 속도
선박 넘어 우주·전차 엔진까지
경영 환경 변화에 맞춰 국내 기업도 엔진 사업 다각화에 힘을 쏟는다. 응용 수요처 확대로 기존 선박은 물론 전력과 AI, 방산까지 외연 확장을 노린다.
발전용 엔진 시장에서는 두산에너빌리티 가스터빈 엔진이 주목받는다. 가스터빈은 초내열 합금과 정밀 주조 기술이 결합된 고난도 설비다. 두산에너빌리티는 2013년부터 현재까지 약 1조1000억원을 투입해 2019년 국내 최초로 발전용 가스터빈 국산화에 성공했다. 2023년에는 상업 운전 실적까지 확보했다.
두산에너빌리티는 가스터빈 기술력을 발판 삼아 AI 전력 인프라로 다각화를 노린다. AI 데이터센터는 짧은 기간에 대규모 전력을 필요로 하지만 송전망과 재생에너지 설비 확충은 이를 따라가지 못한다. 가스터빈은 발주부터 발전소 준공까지 약 3년 안팎으로 비교적 짧고 재생에너지 간헐성을 보완하는 기동성도 갖췄다. 특히, 글로벌 전력 인프라 병목 탓에 GE 등 기존 강자 생산라인은 사실상 포화 상태다. 덕분에 해외 성과도 눈에 띈다. 두산에너빌리티는 지난해 10월 미국 빅테크 기업과 2기 공급 계약을 체결하며 첫 해외 수출 성과를 올렸다. 이후 추가 3기 계약에 이어 올 3월 7기 공급 계약까지 따내 미국 시장에서 기술 경쟁력을 입증했다. 두산에너빌리티는 2030년까지 가스터빈 누적 45기, 2038년까지 누적 105기 수주를 목표로 제시한다. 기자재 공급 이후에도 평균 14년 이상 이어지는 장기 서비스 사업이 기대된다. 두산에너빌리티 관계자는 “2030년 45기 기준 연간 약 4100억원, 2038년 105기 기준 연간 약 1조원의 서비스 매출을 기대하고 있다”고 들려줬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미래에너지융합학과 교수는 “AI 데이터센터는 무중단 고출력 전력이 필수인 만큼 국산 가스터빈은 SMR(소형모듈원전)과 연계한 하이브리드 전력망에서도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산업용 엔진 시장에서는 HD현대그룹의 확장 전략이 두드러진다. 핵심은 건설기계용 엔진을 데이터센터 비상발전, 방산, 수소 엔진으로 넓히는 것이다. HD현대건설기계는 K2 전차용 1500마력급 디젤 엔진을 독자 개발·양산하는 국내 유일 제조사다. 지난 1월 현대로템과 폴란드향 K2 전차용 엔진 116대 공급 계약을 맺었고, 튀르키예 차기 전차용 엔진도 양산한다. 방산 엔진은 일반 산업용 엔진보다 인증과 유지보수 문턱이 높지만, 한번 공급망에 진입하면 장기 계약과 후속 정비 수요가 따라붙어 알짜 사업으로 평가된다. HD현대건설기계는 포르투갈 발전기 제조사 그루펠과 발전기용 G2 엔진 공급 계약도 체결했다. 글로벌 데이터센터 증가에 맞춰 DX37, DX77, DX51 등 초대형 비상발전용 엔진을 개발하고 있다. HD현대중공업도 미국 에너지 인프라 개발사 에이페리온에너지그룹(Aperion Energy Group)과 684㎿ 규모 ‘힘센(HiMSEN)엔진’ 기반 발전 설비 공급 계약을 맺었다. 선박용으로 축적한 중속 엔진 기술이 육상 발전 시장으로 이동한 사례다.
친환경 전환 지연도 선박 엔진 기업에 기회다. 가령, 한화엔진의 올 1분기 DF 엔진 신규 수주액은 9323억원으로 전체 선박 엔진 수주액의 80%에 달했다. DF 엔진은 중유·디젤 같은 기존 선박 연료와 LNG·메탄올·암모니아 등 대체연료를 함께 쓸 수 있는 ‘이중연료 엔진(Dual Fuel Engine)’이다. 선주 입장에서는 연료 규제에 대응하면서, 특정 친환경 연료 인프라가 주류가 되기 전까지 운항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LNG·메탄올 기반 DF 엔진은 선박용 엔진 시장의 중요한 성장 동력인 만큼 한화엔진의 경쟁력은 당분간 유효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가장 진입 장벽이 높은 영역은 항공·우주·방산 엔진이다. 전투기나 전차의 엔진 기술을 확보하는 것은 국가 안보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정부와 함께 앞으로 국산 전투기와 무인기에 탑재할 첨단 항공 엔진을 개발 중이다. 47년 동안 1만대 이상 항공 엔진을 생산했고, 독자 기술로 개발했거나 개발 중인 항공 엔진만 11종에 달한다. 무인기용 1400마력 터보샤프트 엔진과 5500파운드 터보팬 엔진도 국방과학연구소 주관으로 개발 중이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과 교수는 “항공·우주·방산 엔진은 진입 장벽이 매우 높은 전략 산업”이라며 “글로벌 기업과 기술 격차를 줄이려면 정부의 장기 연구개발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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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엔진, 10년에 1번 오는 기회
중국 견제 등 초격차 속도 낼 때
전문가들은 전방 산업 변화로 한국 엔진 산업이 르네상스를 맞을 것으로 기대한다. 가령, 가스터빈과 중대형 발전용 엔진은 재생에너지 보완재이자 데이터센터 전력망 안전판으로 각광받을 전망이다. 유승훈 교수는 “한동안 IT와 소프트웨어에 가려졌던 기계공학의 정수인 엔진이 AI와 방산 붐을 타고 다시 국가 산업의 심장으로 떠오르고 있다”며 “2026년은 한국이 엔진 수입국에서 글로벌 엔진 허브로 도약하는 원년이 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친환경 선박 엔진 시장 전망도 밝다. 이장현 인하대 조선해양공학과 교수는 “암모니아나 수소 선박은 기술적으로 가능하지만 건조 비용이 기존 대비 30~50% 이상 높고, 연료 공급 인프라도 세계적으로 거의 없는 상태”라며 “2030년까지는 DF 엔진이 주력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다만, 급증하는 수요에 맞춰 생산 능력을 확대하는 것은 숙제다. 국내 중속 엔진 제작 능력은 이미 선박용 수요만으로도 빠듯하다는 평가다. 데이터센터 발전용 수요가 중장기 성장 동력이 되려면 증설 결정과 국제 인증 확보가 뒤따라야 한다. 비상발전기 시장에 들어가려면 제품 개발뿐 아니라 3~5년 국제 인증 취득 과정과 설치 실적 축적이 필수다. 이는 특허보다 더 높은 현실적 장벽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중국 추격도 변수다. 발전용 고속 엔진과 일부 중대형 산업용 엔진에서는 공백이 있다. 이장현 교수는 “데이터센터 수요 폭증과 친환경 전환이 동시에 일어나는 지금은 한국 엔진 산업이 포트폴리오를 재편할 수 있는 10년에 한 번 오는 기회”라며 “이 시기를 놓치면 고속 엔진 시장은 중국에 내줄 수 있다는 긴박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배준희 기자 bae.junhee@mk.co.kr, 조동현 기자 cho.donghyu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60호(2026.05.20~05.26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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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가도 K엔진 속속 재평가
고부가 부품 산업…증설 규모는 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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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가에서도 국내 엔진 산업을 고부가 핵심 부품 산업으로 재평가하기 시작했다.
신영증권은 최근 ‘엔진기업 점검’ 보고서를 내고 HD현대중공업이 최근 북미 에너지 인프라 기업인 에이페리온에너지그룹과 체결한 6271억원 규모 공급 계약에 주목했다. 엄경아 신영증권 애널리스트는 “선박에는 추진용 저속 엔진과 발전용 중속 엔진이 탑재되는데, 이번 데이터센터향 수요는 중속 엔진 시장의 새로운 돌파구”라고 평가했다.
특히, 데이터센터용 발전 엔진은 선박용 엔진보다 수익성이 높을 수 있다는 게 증권가 대체적인 평가다.
공급 이후 유지보수 시장으로 이어질 수 있고 장기 유지보수 계약이 붙으면 일회성 매출에 그치지 않고 안정적 이익 기반이 형성될 수 있어서다. 증권가는 HD현대중공업 주가가 90만원 이상 상승할 여지가 있다고 본다. 하나증권은 HD현대중공업 목표주가를 기존 74만원에서 90만원으로 상향 조정하며 조선 업종 최선호주로 꼽았다. 함께 수혜가 기대되는 HD현대마린솔루션에 대해서는 목표주가 33만원이 제시됐다. 데이터센터용 엔진 발전기가 납품 이후에도 장기간 유지보수 계약으로 이어지는 구조인 만큼, 정비와 서비스 역량을 보유한 마린솔루션의 수익 확대 가능성이 기대된다.
상상인증권은 HD현대중공업 목표주가를 91만원, 한화엔진 목표주가를 9만6000원으로 제시하고 매수 의견을 냈다.
유진투자증권도 HD현대중공업과 STX엔진을 수혜 업체로 꼽았다. HD현대중공업이 엔진 부문 증설에 나설 경우 STX엔진의 육상 발전 엔진 수요에 대한 시장의 확신이 강해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단, 투자자들이 경계해야 할 변수도 적지 않다. 데이터센터 투자가 둔화하거나 AI 거품론이 불거질 경우 단기 투자 심리는 흔들릴 수 있다.
엔진 수요가 늘더라도 실질적인 증설이 뒤따르지 않으면 매출 확대 속도는 제한된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데이터센터향 수주는 단기적으로 엔진 업체들의 밸류에이션 상승 재료가 될 수 있다”면서도 “국내 중속 엔진 생산능력이 이미 선박용 수요만으로 상당 부분 채워져 있는 만큼, 중장기 성장으로 이어지려면 생산능력 증설과 라이선스 확보가 병행돼야 한다”고 진단했다.
[조동현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60호(2026.05.20~05.26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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