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12.10 07:11+크게
(머니투데이 최경민 기자) 국민연금이 자본시장의 '리더'역할을 외면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부실기업 '블랙리스트' 마련이 사실상 무산되고 국내 중소 연기금들 사이에서 구심적 역할도 하지 못해 국민의 돈 400조원을 보유한 기금다운 모습이 절실하다는 평가다.
◇포커스리스트, 또 다시 무산=지난 10월,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이 이른바 한국판 '포커스리스트(Focus List)' 마련에 관한 내용이 빠진 채 국무회의에서 심의·의결됐다. 의결권 강화와 관련해서는 주주대표소송 행사방안 마련, 사외이사 자격요건 제시, 책임투자 강화 정도만 포함됐다.
포커스리스트는 미국 캘리포니아공무원연금(캘퍼스, CalPERS)이 매년 6월 발표하는 기업지배구조 관찰 리스트다. 이 리스트에 오른 기업들은 미국 현지 증시에서 사실상 '부실종목'으로 낙인 찍힌다. 주가에 막대한 영향을 주기 때문에 일명 '데스노트(Death Note)'로 불리기도 한다.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에서 관련 내용이 언급되지 않아 포커스리스트 추진은 사실상 백지화된 것으로 보인다. 보건복지부 자문기구인 국민연금 기금운용발전위원회가 경영성과가 저조하거나 배임·횡령 등 지배구조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기업의 목록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을 정부에 전달하면서 한국판 포커스리스트 구성에 대한 기대감이 컸지만 결국 무산된 것.
포커스리스트 무산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1년 이명박 정부 시절에도 대통령 직속 기관인 미래기획위원회가 국민연금 등 연기금의 주주권 행사를 강화하기 위해 포커스리스트 마련을 계획했지만 흐지부지됐다.
포커스리스트는 국민연금 가입자를 구성하는 재계에서 반대하고 있다. 재계는 경영권 침해를 우려하며 포커스리스트 추진 등 국민연금의 의결권 강화 행보에 우려의 시선을 보내왔다. 국민연금 관계자는 "일각에서 지적하고 있는 '연금 사회주의' 논란이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국민의 기금인 국민연금이 포커스리스트와 같은 기금운용 정책을 통해 국내 기업 및 자본시장 발전에 기여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포커스리스트는 지배구조가 부실한 기업에 국민연금이 기업가치를 높이도록 압박을 가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
남재우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포커스리스트를 시장에 공개하지 않고 수익률 관리를 위해 내부에서만 활용하는 수준이었는데도 재계 반대가 워낙 심했다"며 "부실한 지배구조로 시장에서 가치가 떨어진 기업을 관리한다는 취지에서 이런 리스트가 필요한데 안타깝다"고 말했다.
◇국민연금 의결권 '리더' 역할 해야=미국의 캘퍼스처럼 국민연금도 중소 연기금들 사이에서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캘퍼스는 기관투자가협회(CII)라는 의결권 협의체 구성을 주도해 중소 연기금들의 목소리를 한 곳으로 모으는 역할을 하고 있다.
CII는 미국 내 128여개 연기금들의 목소리를 대변해 의결권을 행사하기 때문에 중소 연기금도 당당하게 입김을 낼 수 있다. 공적 연기금뿐만 아니라 존슨&존슨과 같은 사기업 연금도 함께 가입돼 있다.
반면 국내 사학연금, 공무원연금 등은 의결권 행사와 관련해 "개별종목에 대한 지분율이 낮다"며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실제로 사학연금은 올들어 열린 주주총회에서 단 한 번도 반대표를 던지지 않았다. 국내 중소 연기금들도 국내주식 투자규모를 모두 합하면 10조원대에 달해 힘을 합한다면 충분히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다.
국민연금 역시 주총에서 '지원군'이 필요하다는 평가다. 올들어 지난 9월까지 총 274건(10.9%)의 반대 의결권을 행사했지만, 반대표가 부결로 이어진 것은 4건에 불과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각 연기금별로 미세하게 차이가 나는 입장을 조절할 수 있어야 연대가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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