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14년 01월 22일 18:38 더벨 유료페이지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앞으로 금융 계열사 간 자산 위탁 거래가 공시에서 사라질 전망이다.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가 내부거래 공시의 기준을 위탁자산의 규모가 아닌 수수료 금액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유권해석을 내렸기 때문이다. 공정위 기준에 따르면, 수수료가 개별 거래 기준으로 자기자본(또는 자본금)의 5% 이상, 분기 50억 원 이상이 돼야 공시 의무가 생기지만, 국내 어느 자산운용사도 계열사로부터 이 기준을 넘는 수수료를 받지 못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수수료를 기준으로 내부거래의 공시의무를 판단하는 것이 금융자산의 위탁거래에 합당한 지 의문을 표하고 있다. 위탁 수수료가 턱없이 낮은 국내 자산운용업계의 현실에서, 계열사 간 일감 몰아주기를 판단하는 기준은 수수료가 아니라 위탁자산의 규모와 비중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또 투자자보호를 위해서라도 공시 기준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자산운용사의 관리자산 중 계열사가 위탁한 자산의 비중이 대부분을 차지하더라도 현재의 기준으로는 공시의무가 발생하지 않기 때문에 투자자를 오도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 수십 조원 위탁운용해도 공시 의무 '사실상' 없다
공정위의 내부거래 공시 기준에 따르면 계열사 간 위탁매매가 거래 단위별로 자본총계 또는 자본금 중 큰 금액의 5% 이상이거나, 50억 원 이상이면 그 내역을 공시해야 한다. 이때 재화의 경우 위탁매매의 대상이 되는 자산의 거래가액으로 공시 여부를 판단하지만, 금융서비스와 같은 용역 거래의 경우에는 그 대가인 수수료가 기준이 된다.
그러나 이 규정은 계열사 간 위탁자산에 관한 한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국내 어느 기업집단의 금융계열사도 위탁자산 내부거래로 분기당 50억 원 이상의 수수료를 주고 받지 않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금융업과 보험업에는 특례 규정을 적용해 분기별 거래 누적액이 자기자본과 자본금 중 큰 금액의 5% 이상이거나 50억 원 이상이면 매 분기말 이후 10일 이내에 사후 보고하게 돼 있지만, 이 역시 실효성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대표적으로 삼성생명 삼성화재 교보생명 등 초대형 보험사들도 수십 조 원을 계열 자산운용사에 맡기지만 개별 거래로는 물론이고 분기당 누적 수수료도 50억 원을 넘지 않기 때문이다.
생명보험사의 자산위탁이 올 들어 공시에서 빠지게 된 것도 교보생명 삼성생명 등이 내부거래 공시 기준의 명확한 해석을 공정위에 요구한 것이 계기가 됐다. 보험사의 요청을 받은 공정위가 위탁매매의 법적인 정의에 따라 기준을 유권해석하면서 위탁자산의 규모가 아닌 수수료로 판단해야 한다고 유권해석을 내리게 된 것이다.
일례로 운용자산이 150조 원에 이르는 삼성생명의 경우 지난해 무려 80조 원(한도 기준)을 삼성자산운용에 위탁했지만, 분기당 수수료가 50억 원을 넘지 않았다. 80조 원 전액을 일시에 위탁하지 않아서 이기도 하지만 수수료율이 1~2bp로 매우 낮은 영향이 가장 크다. 수수료율을 2bp로 가정하더라도 최소 25조 원 이상을 분기 내내 위탁해야 공시 의무가 생기는 셈이다. 1bp의 수수료라면 50조 원 이상을 위탁하지 않는다면 공시할 일이 없게 된다.
현재의 수수료 수준이 유지된다면 생보업계 2위인 교보생명 역시 운용자산아 55조 원으로 사실상 대부분을 위탁하지 않는 한 공시할 의무가 없다. 손해보험사의 경우 삼성화재의 운용자산이 40조 원 수준이고 업계 운용자산을 모두 합해도 130조 원 수준이다. 삼성화재를 제외하고는 내부거래에 대한 공시 걱정을 할 필요가 아예 없다는 얘기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자산운용업계의 서열이나 평판이 수수료가 아니라 운용자산의 규모에 비례하는 경향을 감안하면, 금융자산 위탁의 내부거래 공시 기준이 적합하지 않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며 "수십 조 원에 달하는 내부거래를 공시하지 않게 되면 자산운용사의 계열 의존도를 파악할 수 없어 투자자를 오도할 염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 계열사 물량 의존도 확대 우려..수익 악화 가능성도
위탁거래 정보가 노출되지 않게 되면 계열사 물량 의존도가 더욱 심화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계열사 물량은 수수료를 거의 받지 않더라도 안정적으로 트랙레코드(track record)를 쌓을 수 있는 좋은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관리자산이 많을수록 더 좋은 사업기회를 잡을 수 있는 것은 물론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계열사 자산 규모에 대한 공시가 이뤄지지 않으면 외부의 눈치를 보지 않고 계열사 자산 위탁 규모를 늘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1~2bp에 지나지 않는 수수료를 받지만 삼성생명이 위탁자금을 뺀다면 삼성자산운용은 상당한 타격을 받게 될 것"이라며 " 결국 위탁 자산에 대한 수수료가 문제가 아니라 자산 위탁 규모가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수수료율이 낮은 계열사 물량에 대한 의존이 심해지면 자산운용사의 수익 구조도 나빠질 수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법인 위탁 자산의 수수료도 낮다고 불만이 많은데 계열사 물량은 사실상 노마진"이라며 "계열사 물량이 늘어나면 운용사의 관리자산 규모가 커져도 이익률이 떨어지는 악순환의 고리가 형성될 수 있다"고 말했다.
삼성자산운용은 지난해 일임 한도 기준으로 삼성생명으로부터 80조 원 외 삼성화재로부터 11조 원을 위탁받아 관리하고 있다. 한화생명보험과 한화손해보험이 한화자산운용에 34조 원(한도 기준), 교보생명이 교보악사자산운용에 14조 원(한도 기준)을 위탁하고 있다.
< 자본시장 미디어 ‘thebel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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