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3.03 (월) 15:37:58
이경성 기자 (bluestone@klnews.co.kr)
대량화주(대형화주)의 해운업 진출 가능성에 대한 논란이 다시 재연될 조짐이다. 총리실이 해운법 시행령에서 대량화주의 진입 규제를 일몰제 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의견을 해양수산부에 보냈기 때문이다. 이것이 현실화될 경우 화주기업의 해운업 진출은 어렵게 된다.
소식을 전해들은 해운업계 관계자들은 당연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지만, 화주업계는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나친 시장 규제라며 다양한 가능성을 검토해야 한다는 논리다. 업계에서는 법안 개정 움직임이 본격화되면 이해관계에 따른 갈등이 표면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조만간 법안 개정안 처리할 듯
국무총리실은 지난 1월 해양수산부에 ‘대량화주의 해운업 진출을 금지한 해운법 시행령에 대해 일몰제 대상이 아니다’라는 내용의 공문을 보냈다. 이는 더 이상의 논의 없이 규제를 유지하겠다는 의미다.
일몰제는 과거 해운법의 공정성 시비에 국토부가 2013년 12월 31일까지 일몰제를 하겠다고 밝히면서 시행됐다.
공문을 받은 해수부는 일몰 재검토 작업을 진행하지 않고 있다. 해수부 관계자는 “아직 관련 문항이 변경된 것은 아니다. 당장 해운법을 개정하기보다 가까운 시일 내에 다른 건과 함께 처리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아직 구체적인 조항이 마련되지 않았지만, 이대로 진행되면 대량화주의 해운업 진출 가능성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워질 것으로 보인다.
“대량화주의 해운업 진출은 욕심”
해운업계는 대량화주의 해운업 진출을 반대하는 이유로 과도한 경쟁을 유발해 운임 하락 등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들고 있다. 그 안에는 자본과 물량을 앞세운 대량화주들 사이에서 기존 선사들이 설 자리가 없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숨어있다.
한 해운선사 관계자는 “대량화주들이 해운업에 진출하면 그들의 물량을 처리하던 중소선사들의 입지가 흔들릴 것이다. 유동성 문제에 처해있는 상당수 선사들은 시장에서 밀려날 가능성이 높다”며 “대량화주들은 제조라는 본연의 역할이 있지 않나. 국내 해운선사들의 서비스 품질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운임도 적정선에서 결정되고 있다. 선박이 부족한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굳이 진입하겠다는 건 지나친 욕심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다른 업체 관계자는 “대량화주가 해운업에 진입하고자 하는 이유는 결국 자사 물량을 직접 운송하겠다는 의도다. 그러나 불황에 시달리는 해운시장에 막 진입한 대량화주가 살아남으려면 자사 물량을 확보하거나, 운임 경쟁으로 물량을 빼앗는 방법 밖에 없다”라며 “이렇게 되면 시장질서가 무너지고, 오랫동안 해운업에 종사한 선사들이 더욱 위축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나친 시장 규제일 뿐”
대량화주의 해운업 진입 허용이 필요하다는 주장에는 공정성 확보와 해운업계의 어려움을 해소할 수 있다는 논리가 깔려있다. 공정성 논란은 과거에도 지속적으로 제기됐던 사안으로, 논란이 심화되자 국토부는 시행령의 일몰 기간을 지난해 12월 31일로 정하고 규제를 재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한 화주기업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시장 진입을 막는다는 것 자체가 공정성을 잃은 판단이며, 지나친 시장 규제”라며 “자유로운 경쟁이 꼭 시장 혼탁과 운임하락 등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경우에 따라선 세계적인 선사를 배출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대량화주의 건전한 투자가 글로벌 해운선사를 키울 가능성이 높다는 논리도 있다. 이러한 주장에는 현대글로비스가 사례로 꼽힌다. 현대글로비스는 계열사의 철광석을 운송하지 않겠다는 조건으로 해운업을 개시했다. 초창기에는 모기업의 자동차 물량을 기반으로 했지만, 지금은 벌크선을 추가하는 등 비계열사의 물량을 늘려가고 있다. 국내 선사들이 자동차 운송영역에 진입하지 않았기 때문에 반발이 적었던 측면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업계 관계자는 “일몰제 시행 당시 국토부가 말했던 재검토 결과가 나온 다음에 제외하는 것이 절차상 맞다. 일방적인 행정 절차라면 비판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 선 “M&A 등 건전한 투자 허용해야”
직접 진출 대신 M&A를 통한 진입을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도 있다. 무조건 시장진입을 막을 것이 아니라 새로운 주인을 필요로 하는 선사들에게 회생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줘야 시장이 위축되지 않는다는 논리다. 일부 해운 관계자들도 이에 동조하는 의견을 내고 있다. 금융지원이 부족한 상황에서 대량화주의 자본 유입이 필요하다는 관점이다.
한 선사 관계자는 “선사들이 자금난을 겪고 있고, 버티지 못한 일부 중소선사는 폐업하기도 했다. 팬오션처럼 덩치 큰 선사는 다른 선사가 인수하기에 벅차다. 대한해운 M&A건도 우여곡절을 겪지 않았느냐”라며, “M&A가 지지부진하면 고용이 유지되지 않고, 경우에 따라서는 공적자금이 투입될 여지도 있다. 해운업계는 외국 선사가 인수를 희망해도 국부 유출 등을 이유로 반대하는데, 차라리 국내 대량화주가 인수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편이 나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다른 관계자는 “세계 해운시장이 어려운 상황이지만 머스크라인 등 글로벌 선사들은 에코쉽에 투자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 선사들은 사실상 에코쉽에 투자할 수 있는 여력이 없다. 이대로 가면 글로벌 선사와 국내 선사 간 격차가 커진다. 자금력을 갖춘 대량화주가 시장에 들어와 투자하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다”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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