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07월 30일 14:45 더벨 유료페이지에 표출된 기사입니다.보고펀드가 결국 LG실트론 지분 인수를 위해 금융권에서 차입한 대출금을 상환하지 못하고 채무불이행(디폴트) 사태를 맞았다. 보고펀드로선 금융권 신인도 하락과 함께 2000억 원 이상의 펀드 투자금도 거의 날릴 위기에 처했다.
PE업계에선 이번 사태를 꽤 충격적인 일로 받아들이고 있다. 10~20%의 소수 지분도 아니고 무려 49%의 대규모 지분을 보유한 재무적 투자자(FI)들이 무기력하게 투자 실패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PE업계에선 이번 사례가 국내 PEF 운용사들의 투자 전략을 재점검할 기회가 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1) 경영권 없는 소수지분 투자시 리스크 관리를 위한 주주간계약(SHA)의 중요성,
2) PEF 운용사들이 즐겨 사용하는 레버리지(leverage) 전략의 양면성 등을 재확인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 엑시트를 위한 마지막 보루, 주주간계약
PE업계 관계자들은 보고펀드가 LG실트론 투자금 회수(Exit)에 실패해 인수금융 디폴트를 맞은 중요한 이유 중 하나로 '느슨했던 주주간계약'을 꼽고 있다.
보고펀드는 2007년 말 KTB 프라이빗에쿼티(PE)와 컨소시엄을 구성해 당시 동부그룹이 보유하고 있던 LG실트론 지분 49%를 7078억 원에 인수했다. 당시부터 지금까지 LG실트론의 최대주주는 ㈜LG로 51%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LG그룹의 주장에 따르면 보고펀드와 KTB PE는 당시 ㈜LG와 일체의 사전 협의 없이 동부그룹 지분을 인수했다. 이후 이들이 ㈜LG와 주주간계약을 체결한 것은 지분 인수 후 2년 반이 지난 2010년 7월이다.
당시 맺은 주주간계약에는 LG실트론 상장 추진과 관련해 주주들이 상호 협의한다는 내용은 담겼지만, 상장 시기나 책임 등에 대한 구속력이 없는 느슨한 형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LG실트론 이사회는 2010년 11월 25일 기업공개(IPO) 추진을 결의했다. 이후 보고펀드와 KTB PE에게는 두 번의 엑시트 기회가 주어졌다. 2011년과 2012년 두 차례의 증시 상장 기회가 그것이다.
하지만 두 차례 모두 IPO가 수포로 돌아갔다. 2011년엔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금융시장 상황이 좋지 않다고 본 LG그룹의 판단에 따라 상장이 보류됐고, 2012년 말엔 낮은 공모가를 이유로 보고펀드와 KTB PE가 IPO 작업을 중단했다.
PE업계에선 보고펀드가 2011년 LG그룹의 의사에 따라 상장을 보류할 때 주주간계약을 강화했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업계 관계자는 "당시 IPO 중단에 동의하는 조건으로 주주간계약 수정을 요청했다면 LG그룹도 쉽게 거부하진 못했을 것"이라며 "IPO나 엑시트와 관련한 관련한 명확한 약속이나 책임 등을 주주간계약에 반영했다면 오늘의 사태에 이르진 않았을 것"이라고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그는 이어 "펀드는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 대안을 갖고 있어야 하는데, 그런 측면에서 보면 당시 보고펀드가 리스크 관리에 조금 소홀했거나 안일하게 대처한 것 아닌가 싶다"고 덧붙였다.
◇ '양날의 칼' 레버리지 투자… 고수익과 위험성 동시 내포
보고펀드는 LG실트론 지분 29.4%를 4246억 원에 인수하면서 금융권으로부터 1800억 원을 차입했다. 거래대금의 42% 가량을 인수금융(Loan)으로 조달한 셈이다. PEF 운용사들이 인수 거래시 통상 사용하는 레버리지 전략을 구사한 것이다.
PEF가 레버리지 전략을 활용하는 이유는 투자금 회수시 수익을 높이기 위해서다. 금융권 차입금은 저리의 이자 비용만 지불하면 되므로 레버리지 전략을 잘 활용하면 적은 돈을 투자해 큰 수익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레버리지 전략에는 전제조건이 붙는다. 수익이 발생할 거래여야 한다는 점이다. 만약 손실이 발생하는 거래라면 레버리지 전략은 오히려 독이 된다.
보고펀드가 LG실트론 지분을 인수할 때 레버리지 전략을 사용하지 않고, 투자액 전체를 운용 펀드 자금으로 마련했다면 지금과 같은 채무불이행(디폴트) 사태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펀드 투자자(LP)들의 동의를 받아 만기를 연장하고 다시 엑시트 기회를 기다릴 수 있었을 것이다.
투자금 전체를 펀드 자금으로 마련하지 않았더라도 차입금 비중(레버리지율)을 20% 정도로만 낮췄다면 지금처럼 보유 지분 전량을 채권단에게 넘겨주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물론 레버리지율을 낮출수록 투자금 회수와 목표 수익률 달성이 훨씬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하지만 PEF 운용사는 투자에 앞서 최악의 시나리오까지 가정해 리스크 관리에 만전을 기할 필요가 있다. LG실트론처럼 경기 변동성이 큰 정보통신(IT) 산업에 속한 기업에 투자할 때에는 레버리지 전략 활용에 보다 신중했어야 한다는 게 M&A업계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이번 일을 계기로 PEF 운용사와 금융사 모두 투자 기업의 경기 민감도나 수익성, 장기 전망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적정 레버리지율을 산정할 필요가 있다는 교훈을 얻었을 것"이라며 "곧 국내 인수금융 시장에도 이와 관련한 변화들이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