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 중단과 계열사 지원으로 자금회수 불가
자존심 걸린 전쟁
2014.08.04 (월) 14:
43:51[1057호]
김나영 기자 (nykim@ilyoseoul.co.kr)
사모펀드 특수목적법인 첫 디폴트…책임은 누가
[일요서울 | 김나영 기자] LG실트론을 사이에 두고 모기업과 국내 최초의 사모펀드(PEF)가 대대적인 소송을 벌인다. 보고펀드는 LG와 구본무 회장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투자했던 LG실트론의 상장 무산과 실적 악화로 투자금 회수가 지연돼 특수목적법인(SPC)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LG 측은 LG실트론 상장 무산의 책임이 오히려 보고펀드에 있다며 맞대응 중이다.
사모펀드는 소수의 투자자들을 비공개로 모집해 거대한 자금을 만들어 운용하는 펀드다. 고위험 고수익을 지향해 종종 투기자본으로 불릴 정도로 수익창출에서 압도적인 성과를 낸다. 국내에서 가장 먼저 생긴 보고펀드나 최대 규모인 MBK파트너스와 같은 사모펀드들도 이러한 선상에 서 있다.
그러나 지난달 말 보고펀드의 SPC가 LG실트론 투자실패로 디폴트(채무불이행)에 빠지면서 사모펀드를 다시 보게 만들었다. 이는 국내 사모펀드 시장이 생겨난 이래 최초의 디폴트로 변양호 대표를 금융투자업계에서 은퇴하게 만들었다.
보고펀드를 만든 변 대표는 보고펀드 1호의 잔여 투자자산 회수만 완료하고 물러나 경영일선에 복귀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옛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 출신인 변 대표는 론스타와 관련한 ‘변양호 신드롬’을 딛고 2005년 보고펀드 설립 이후 9년 만에 약정액 2조 원 규모로 성장시킨 바 있다.
사모펀드와 대기업의 법정 싸움
세부적으로 보면 보고펀드는 지난달 25일 LG실트론의 기업공개(IPO) 중단 책임과 관련해 구본무 LG 회장과 일부 경영진 및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보고펀드 측은 LG실트론의 상장계획 등 여러 면에서 LG와의 합의를 거쳐 지분을 인수한 것으로 주장했다.
앞서 보고펀드 1호는 2007년 LG실트론 지분 29.4%를 인수했다. 당시 동부그룹이 보유 중이던 LG실트론 지분은 29.4%로 인수가격은 4246억 원이다. 보고펀드는 자체 보유금 1996억 원과 금융권 대출 2250억 원으로 이를 사들였다. 이 금융권 대출은 2년 연속 만기연장됐음에도 원리금이 상환되지 않자 결국 기한이익 상실로 디폴트의 직접적인 원인이 됐다.
보고펀드는 투자 이후 2010년 LG실트론의 IPO가 추진됐으나 상장이 중단돼 손실을 입었다고 설명했다. 이후에는 계열사인 LG이노텍에 대한 무리한 지원으로 경영 부실에 빠져 투자금 회수가 불가했다고 밝혔다.
실제로 LG실트론은 2010년 이사회를 통해 IPO를 결의했다. 2012년에는 한국거래소에서 상장예비심사 승인까지 받아냈다. 그러나 갑자기 LG실트론은 대외적으로 밝혀진 이유 없이 IPO 추진을 중단했다.
상장 중단 이후 LG실트론이 손댄 것은 발광다이오드(LED)용 6인치 사파이어 웨이퍼 사업이다. 당시 2인치나 4인치 웨이퍼사업의 전망이 더 밝았음에도 LG실트론은 LG이노텍을 돕기 위해 6인치를 택했다는 것이 보고펀드 측의 주장이다.
들여다보면 LG실트론은 2011년 이 사업에 1140억 원을 투자했지만 2년간 36억 원의 매출을 올리며 사업을 접었다. IPO가 미뤄진 것 역시 실적부진에 따른 불확실성으로 상장이 지연됐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보고펀드는 “주주간 계약에 따라 이사회를 거쳐 LG실트론의 상장을 추진하기로 했으나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지시로 상장 추진이 중단됐다”면서 “이로 인해 투자금 회수 기회를 잃었고 이후 상장 자체가 불가능하게 됐다”고 소장을 통해 밝혔다.
하지만 LG 측은 LG실트론의 상장 중단은 2011년 일본지진, 유럽재정위기, 미국 신용등급 하락 등 금융불안을 고려한 것이라며 맞대응을 논했다. 주식시장이 침체된 상황에서 무리하게 상장을 추진하면 물량이 소화될 수 없어 상장 연기를 제안한 것이라고도 해명했다.
또한 애초 보고펀드가 LG와의 사전협의 없이 주식을 매입한 후에야 주주간 계약서를 체결했다는 입장도 내놨다. 주주간 계약서에는 반드시 상장을 해야 한다거나 언제까지 완료해야 한다는 조항도 없다고 확인했다.
게다가 LG실트론이 주주들에게 상장 연기를 제안할 당시 LG는 여기에 동의했을 뿐이며 보고펀드도 반대나 추가적인 의사 표명이 없었다고 반박했다. 덧붙여 LG이노텍 지원 역시 진입장벽과 안전한 수요처를 고려한 선택이었다고 강조했다.
LG는 “보고펀드는 해당 산업에 대한 이해 없이 LG실트론에 과도하게 집중 투자했고 그에 따른 어려움을 겪자 손실을 LG가 배상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면서 “변 대표 등은 자신들이 보유한 LG실트론 주식을 고가로 매입할 것을 강요하기도 했다”고 맞불을 놨다.
이처럼 양측이 물러서지 않는 것은 책임소재가 있는 쪽의 이미지 타격이 상당히 큰 탓으로 분석된다. 보고펀드는 국내 최초 사모펀드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지금까지 수많은 투자성공 신화를 일궈왔다. 동양생명, 노비타, 아이리버, 비씨카드 등이 대표적인 투자사례다.
그럼에도 LG실트론 문제가 불거지면 지금까지 보고펀드가 이뤄온 성공은 한순간에 깎아내려질 수 있다. 이는 LG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이며 향후 LG실트론 상장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소송 주체에 관료 출신 사모펀드 대표와 대기업 오너가 모두 포함된 만큼 거물들의 자존심 전쟁으로도 해석된다.
일각에서는 양측이 맞소송으로 치달은 후에라도 조용히 합의할 가능성을 빼놓지 않고 있다. 한쪽이 뚜렷하게 승기를 잡지 못한다면 이미지 손상이 커지기 전에 타협하는 것이 나을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일단 LG실트론 지분매각이 순조롭게 이뤄진 후에 양측의 시시비비가 가려질 것”이라며 “또 무리한 투자를 늘리기보다는 펀딩에서 자금회수까지 완벽히 이뤄진 후 다시 투자에 나서는 환경도 조성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nykim@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