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07월 30일 14:46 더벨 유료페이지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국내 사모투자펀드(PEF) 시장이 본격적으로 열린지 딱 10년이다. 대략 10년 정도인 펀드의 한 주기를 돌고보니 기대 이상의 수익을 올린 프라이빗 에퀴티(PE) 하우스가 있는가 하면 원금 회수도 어려워 전전긍긍하는 곳도 나오고 있다.
최근 터진 보고펀드의 LG실트론 채무불이행 사태가 대표적이다. LG실트론이 파산 혹은 청산 절차를 밟는 상황이 아님에도, 기업가치 하락으로 보고펀드는 인수금융도 못 갚는 신세가 됐다. 최근 LG실트론이 영위하고 있는 태양광 사업이 저점을 찍고 상승 기류를 타는 시점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국내 세컨더리 펀드 시장이 활성화 됐다면 최악의 사태는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국내 PE업계의 역사가 길지 않아서인지 PEF의 운용 전략이 다양하지 않고, 투자 대상도 미국이나 유럽 등 PE 시장이 발달된 곳보다 상대적으로 단순하다. PE업체들의 투자금 회수 수단 역시 기업공개(IPO) 혹은, 재매각으로 한정돼 있다.
국내 IPO시장이 불황에 빠져 있는 가운데, PE업체들의 자금 회수 수단은 인수합병(M&A)으로 압축된다. 하지만 인수를 해줄 여력이 되는 곳은 사실상 전략적투자자(SI)에 국한돼 있다. 바이아웃 기업이야 SI에 넘긴다고 하더라도, 50%이하의 마이너(Minor) 지분 투자나, 피투자기업의 성장을 기대하고 들어간 그로스(Growth) 투자의 경우 자금 회수가 쉽지 않다.
PE시장이 발달한 미국이나 유럽의 경우 우리나라와 상황이 다르다. PEF끼리 매물을 주고 받는 세컨더리펀드 시장이 발달해있다. 펀드 만기 때문에 자금 회수를 해야 하는 경우, 펀드 조기청산을 위해 물량을 내놓는 경우, PEF내 유한책임사원(LP)의 교체가 필요한 경우 모두 세컨더리 시장에서 해답을 구한다.
피투자기업이 망가졌을 때도 물량을 받아주는 PEF도 있다. 일명 특수상황펀드(Special Situation Fund·SSF)로 부실채권(NPL)이나, 경영권 분쟁이 생긴 매물 등에 집중적으로 투자한다.
초기(Primary) 투자 뿐 아니라, 엑시트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는 세컨더리펀드가 존재하고, 피투자기업이 파산에 이르렀을 때 NPL 물량을 받아주는 SSF도 존재한다. 다양한 투자 형태가 존재함으로써, PE업계 생태계가 자연스레 유지될 수 있고, 초기 투자 역시 활발하게 이뤄진다.
과거 미국이나 유럽에서도 세컨더리 시장이 '수건돌리기' 혹은 '폭탄돌리기'로 의심 받았지만, 최근에는 투자 회수기간이 짧고, 수익률이 안정적이라는 측면에서 오히려 초기 투자보다 더 각광 받기도 한다. 되사오는 만큼 일정 수준의 할인률이 있고, 엑시트 시점도 빠르다.
실제로 미국의 모간스탠리 얼터너티브 인베스트먼트 파트너스가 1993~2008년 동안 조성된 세컨더리펀드와 일반 사모펀드의 수익률을 비교해본 결과 평균적으로 세컨더리펀드의 수익률이 일반 사모펀드 수익률보다 8%포인트 높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초기 투자 시장의 매물들이 말라가는 반면, 세컨더리펀드 시장 매물은 점점 늘어간다는 평가다. 세컨더리 시장의 활성화는 사모펀드 투자의 유동성을 개선시켰고 더 많은 자금이 유입되는 선순환이 진행되고 있다.
국내 연기금들도 최근 이런 시장의 변화를 감지하고, 해외 세컨더리 펀드에 적극 출자하고 있다. 국민연금은 2009년 판테온벤처스(Pantheon Ventures)가 조성하는 세컨더리 펀드에 2억 달러(2144억 원)를 출자했다. 올해 초에는 렉싱턴파트너스(Lexington Partners)에 6억 달러(6429억 원)를 출자하며 규모를 키웠다.
군인공제회도 렉싱턴파트너스에 2000만 달러(약 216억 원)를 출자했고, 공무원연금도 포모나캐피탈(Pomona capital)에 3000만 달러(약 324억 원)를 출자했다.
하지만 여전히 국내 PE업계에서는 세컨더리 시장이 활성화 되지 못했다. PE업계의 역사가 깊지 않다는 문제도 있지만, LP 풀(Pool)이 너무 빈약하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LP입장에서는 자기가 출자한 펀드끼리 기업을 사고 파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할 수 있다. 이런 경우 LP입장에서는 싸게 팔아도 문제고, 비싸게 팔아도 문제가 된다.
해외 세컨더리펀드의 무관심도 한 몫 하고 있다. 아무래도 미국이나, 유럽에 비해 국내 세컨더리 펀드 시장의 규모가 작을 수밖에 없다. 국내 세컨더리 시장이 활성화 될 때까지 해외 자금 유입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분석이다.
현재 국내 세컨더리펀드 시장은 태동기다. 인수자가 많지 않을 뿐더러, 매각자와 인수자 간의 룰(Rule) 역시 형성되지 않았다. 하지만 다수의 PEF의 만기가 도래하고, PE시장이 성숙하면서 향후 세컨더리펀드 시장이 활성화 된다는 것은 기정사실이다. 조만간 국내 LP들도 국내 세컨더리펀드 위탁운용사 선정을 위해 출자를 단행할 가능성이 높다.
다만, 시장이 성숙단계에 접어들 때까지 투자기회를 놓치는 것이 아쉽다는 평가다. LG실트론이나, 에스콰이어와 같이 PEF가 보유한 포트폴리오 기업의 매각이 필요할 경우가 있다. 앞으로도 이와 같은 세컨더리 매물이 다수 출회될 것으로 전망된다.
세컨더리 펀드 시장의 참여자가 부족하면 당분간은 산업은행이나, 정책금융공사 등 정책 자금이 나서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부실기업 대출과 같은 떠안기가 아닌 제대로 된 투자를 실시하는 것이다. 피투자기업에 대해 정밀하게 평가한 뒤 일정 할인율을 적용해 사들였다가, 경기가 활성화 되거나 해당기업이 턴라운드 된 후 높은 가격을 받고 파는 투자가 필요하다는 견해다.
PE업계 관계자는 "세컨더리 펀드 시장은 위험성이 적은 데 비해 안정적인 수익률을 얻을 수 있으며, 자금 회수 시기 역시 상대적으로 빠르다는 장점이 있다"면서도 "국내에서 세컨더리 매물이 서서히 많이 나오는데 비해 세컨더리 투자를 목적으로 설립된 펀드는 거의 없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세컨더리 펀드 시장을 조기에 안착 시키기 위해서는 LP들의 국내 세컨더리 펀드 육성을 유도하는 출자가 필요하고, 정책자금 등 공적 자금 활용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 자본시장 미디어 ‘thebel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