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동향>**********

신격호 총괄회장 후계 교통정리 오리무중…한국 롯데그룹 경영권 경쟁 불붙었나

Bonjour Kwon 2014. 9. 13. 15:55

 

 

2014.09.12

서울 잠실 석촌호수 주변 도로에서 땅이 움푹 꺼지는 싱크홀(sink hole) 현상이 잇따르는 게 ‘제2롯데월드 건축이 원인이 아니냐’는 의혹이 한창 제기되고 있던 지난 7월 22일. 그날 오후 3시 주식시장 마감 직후부터 롯데그룹 계열사들이 공시를 쏟아내면서 여의도 증권가가 갑자기 분주해졌다.

 

당일 나온 복잡한 공시 내용을 간단히 요약하면 호텔롯데가 롯데건설, 롯데케미칼이 롯데알미늄, 롯데칠성음료가 롯데리아, 롯데쇼핑이 롯데상사, 부산롯데호텔이 호텔롯데, 롯데제과가 롯데칠성음료 지분을 여러 개의 계열사로부터 사들였다는 것이다.

 

그날 롯데 계열사 간 지분 정리에 들어간 돈만 2507억원에 달했다. 여의도 증권가에서는 ‘롯데그룹 지배구조 개편 신호탄이 올랐다’는 해석이 흘러나왔다.

 

 

 

하루 만에 주가 16만원 뛴 까닭은…

 

당시 계열사 간 지분 정리에 대해 롯데그룹 관계자는 “매각회사들의 자금조달 목적, 매입회사들의 투자 목적과 함께 순환출자구조 해소를 통한 지분구조 단순화 차원에서 이루어졌다”고 해명했다. 상호출자 제한 대기업집단(자산총액 5조원 이상) 내 계열사 간 신규 순환출자를 전면 금지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 시행령이 사흘 뒤인 7월 25일부터 시행되는 데 따른 사전 조치라는 설명이었다.

 

롯데그룹이 6개 계열사 지분 정리를 단행한 다음날인 7월 23일 주식시장에서는 롯데그룹 지배구조 핵심 고리에 있는 계열사를 중심으로 주가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지난해부터 신동주 일본롯데 부회장과 그의 동생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지분율을 높여온 롯데제과는 무려 8.1%(16만원)나 급등해 주가가 213만6000원으로 껑충 뛰었다. 같은 날 롯데쇼핑(2.95%), 롯데칠성(1.96%), 롯데케미칼(1.8%) 등도 일제히 상승했다.

 

이후 롯데제과는 시가총액 100만원이 넘는 종목을 일컫는 이른바 ‘황제주’ 가운데 200만원 고지를 안정적으로 넘어선 첫 종목이 됐다. 조금씩 오르던 롯데칠성도 8월 5일부터 주가가 200만원을 넘어섰다.(참고로 국내 주식시장에서 황제주에 등극한 주식은 롯데제과, 롯데칠성 외에 아모레퍼시픽, 영풍, 삼성전자, 태광산업, 삼성전자우(우선주) 등이 있다.)

 

롯데그룹 측이 “후계 구도와는 무관한 지분구조 단순화 차원”이라고 강조했음에도 시장은 반대로 해석한 셈이다. 올 들어 삼성그룹 발 지배구조 개편 이슈로 증시가 뜨겁게 달아오른 적이 있어 시장 움직임이 더 컸던 것으로 보인다.

 

 

 

 

 

‘오비이락’ 계속된 롯데그룹

 

계열사 지분 정리 공시가 있던 바로 그날(7월 22일), 롯데백화점은 ‘글로벌 롯데에서 너의 꿈을 펼쳐라’는 140쪽 분량의 만화 3000부를 제작해 배포한다고 밝혔다. 이 만화는 올해로 만 92세인 신격호 롯데 총괄회장의 일대기를 그리고 있다.

 

이 만화에는 신 총괄회장이 1941년 한국나이 스무 살에 사촌형이 마련해 준 여비를 들고 일본에 건너가 신문 배달을 하며 공부한 얘기, 일본인 사업가에게 5만엔을 빌려 작은 윤활유 공장을 세웠다가 1944년 미군 폭격으로 불타 가동도 못한 일화 등이 담겼다.

 

또 그가 우유 배달과 공사장 일로 사업자금을 마련해 1946년 도쿄에 ‘히카리특수화학연구소’라는 공장을 세워 비누 등을 만들어 팔아 1년 반 만에 빚을 다 갚고 1948년 제과회사 롯데를 세운 내용이 이어진다. 그가 1979년 롯데호텔과 롯데백화점을 창립해 “최고 매장을 만들겠다”며 최고급 이탈리아산 바닥재를 고집했던 일화도 공개돼 있다.

 

이 만화 발간을 놓고 ‘후계 체제 구축을 위한 사전정지 작업의 일환으로 창업주 신격화가 시작된 것 아니냐’는 뒷말이 나왔다. 삼성의 이병철, 현대의 정주영 회장도 말년에 그룹 안팎에서 일대기가 만들어졌다는 그럴 듯한 설명과 함께.

 

공교롭게도 계열사 지분 정리와 만화가 발매된 바로 그날(7월 22일), 맏아들인 신동주 부회장은 롯데제과 주식 매입을 20여 일 만에 재개했다. 7월 22일부터 사흘간 매집으로 롯데제과에 대한 그의 지분율은 기존 3.89%에서 3.92%로 높아졌다. 앞서 지난해부터 신 부회장이 롯데그룹 모체격인 롯데제과 주식을 꾸준히 사들이고, 동생인 신동빈 회장도 롯데제과를 비롯한 계열사 주식 매입에 나서면서 ‘형제 간 지분경쟁설’이 제기된 바 있다.

 

 

 

호텔롯데 진짜 주인은 누구일까

 

이런저런 정황을 짜맞춰 보면 롯데그룹 후계와 관련한 모종의 움직임이 있는 게 확실해 보인다. 하지만 그룹 지배구조의 큰 그림이 어떤 식으로 짜일지, 또 신격호 총괄회장의 두 아들 가운데 누가 어떤 계열사를 가져갈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롯데그룹 지배구조는 재계에서 가장 복잡한 것으로 유명할 정도여서 예측 자체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 7월 22일 지분 정리 이전 기준으로 롯데그룹은 순환출자고리만 51개에 달할 정도로 계열사 간 지분 관계가 거미줄처럼 얽히고설켜 있다. 간단히 핵심만 들여다보면 일본롯데홀딩스·11개의 L투자회사 등이 호텔롯데를 지배하고 있고, 이후 ‘호텔롯데→롯데알미늄→롯데제과→롯데쇼핑→롯데알미늄’, ‘호텔롯데→롯데물산→롯데케미칼→롯데알미늄→롯데칠성→롯데쇼핑→롯데알미늄’ 등으로 요약된다. 결국 호텔롯데만 지배하면 사실상 한국 내 롯데그룹 전체를 지배하는 구조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호텔롯데의 진짜 주인이 누구인지는 아직까지 베일에 가려져 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일본 주식회사 L제1투자회사’, ‘일본 주식회사 L제2투자회사’ 등 12개의 L투자회사(제1부터 제12까지 L투자회사가 나열돼 있는데, L제3투자회사 대신 ‘일본 주식회사L 일본 ㈜광윤사’라고 기재돼 있다.)가 호텔롯데 지분 80% 가량을 보유하고 있다.

 

 

 

 

오너 정보 감추는 롯데그룹

 

최근 베일에 싸인 L투자회사들의 정체가 밝혀질 뻔한 일이 있었다. 롯데그룹 순환출자고리 핵심에 있는 롯데알미늄이 공모 회사채 발행을 준비하면서 7월 7일 사업보고서 기재 정정 공시를 냈던 것이다. 앞서 롯데알미늄 최대주주는 호텔롯데(12.99%)와 롯데쇼핑(12.05%)으로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롯데알미늄은 사업보고서 정정을 통해 일본 동경 시부야에 위치한 L제2투자회사(34.92%)와 광윤사(22.84%) 존재를 최초로 공개했다. 이 두 회사 사업장 위치와 자본금 규모 등의 정보도 밝혔다.

 

이 두 회사가 지분 10% 이상을 보유한 주요 주주이기 때문에 자세한 내용을 밝히지 않는 것은 공시 규정 위반 소지가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금융감독당국은 롯데알미늄 주주 가운데 개인투자자가 전혀 없다는 점에서 공시서류 정정만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장에서는 금융감독당국이 L제2투자회사와 광윤사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밝히도록 조금 더 요구해주기를 원했다.

 

하지만 롯데알미늄은 지난 8월 자금조달 방식을 공모가 아닌 사모 회사채 시장 쪽으로 틀었다. 증권신고서를 통해 구제적인 회사 정보를 공개해야 할 의무가 사라진 것이다.

 

시장에서는 ‘롯데그룹이 구체적인 지분 구조를 밝혀야 한다는 부담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일부러 자금 조달 방식을 바꾼 것’이란 소문이 돌았다.

 

 

 

형제 계열사 지분 매입 계속될까

 

지난 2011년 동생인 신동빈 회장이 형 신동주 부회장을 제치고 그룹 회장으로 승진했다. 이때 롯데그룹 지배구조와 관련해 나온 ‘신 회장은 한국 롯데, 신 부회장은 일본 롯데’라는 시나리오가 정설로 굳혀지는 듯했다. 하지만 지난해 신동주·신동빈 형제의 롯데제과 주식 매입이 시작되면서 ‘한국 롯데 경영권을 놓고 경쟁이 시작된 것 아니냐’는 추측이 불거지기 시작했다.

 

롯데그룹 지배구조 관련 모든 시나리오의 시발점은 한 가지 가정에서 출발한다. 바로 ‘12개의 L투자회사에 대한 신동주·신동빈 형제의 지분율이 엇비슷하고, 아버지인 신격호 총괄회장이 후계 교통정리를 해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롯데그룹의 거미줄 같은 순환 출자구조에서 롯데쇼핑은 43개, 롯데칠성은 24개, 롯데제과는 12개가 연결 고리에 엮여 있다. 연결고리가 가장 많은 롯데쇼핑의 경우 형제 간 지분율이 0.01%포인트밖에 차이 나지 않는다.

 

형제 간 지분율 차이는 롯데칠성에서 2.76%, 롯데제과에서 1.42%로 벌어진다. 하지만 신격호 총괄회장 장녀인 신영자 호텔롯데 사장 겸 롯데장학재단 이사장이 이들 회사 주요 주주로 있어 형제 사이에서 ‘캐스팅 보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주장이 있다. 결국 두 형제 간 이면 합의가 따로 없다고 본다면 롯데쇼핑, 롯데제과, 롯데칠성 등 핵심 계열사를 놓고 지분경쟁을 벌일 수밖에 없다는 추론이다.

 

 

 

한국롯데 계열 분리 가능성도

 

여의도 증권가에서는 ‘신 회장은 한국 롯데, 신 부회장은 일본 롯데’라는 시나리오는 점점 사라지고, 다양한 형태의 지배구조 시나리오가 돌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한국 롯데가 쇼핑·석유화학·건설·금융 부문과 호텔·음식료로 계열분리될 것’이란 시나리오까지 나왔다. 두 형제가 합의점을 한국롯데 계열분리에서 찾을 것이란 해석이다.

 

이경주 한국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회사가 밝힌 바는 없지만 지난 7월 22일 지분 이동을 보면 계열 분리 움직임도 감지된다”며 “롯데쇼핑이 축이 되는 유통, 상사와 롯데제과가 축이 되는 식품(또는 화학 포함)으로 산업군별 통합이 엿보인다”고 분석했다. 그는 “한국 롯데그룹을 지배하는 일본 롯데그룹의 지배구조가 공개되지 않아 한국과 일본 롯데그룹의 2세 경영 구도를 예측하기는 매우 어렵다”면서도 “여러 가지 정황상 신격호 총괄회장의 장남인 신동주 일본 롯데 부회장과 차남 신동빈 한국 롯데 회장이 향후 각기 다른 산업군을 경영할 가능성이 있다고 추측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롯데제과와 롯데칠성의 주가 200만원 돌파도 지배구조 시나리오와 무관하지 않다는 설명이다.

 

한편 삼성그룹이나 현대차그룹과 달리 롯데그룹에서는 지주회사 전환 시나리오까지는 나오지 않고 있다. 지분 구조가 너무 복잡해 예상 시나리오를 만드는 것 자체가 버겁기 때문이다.

 

 

신격호 총괄회장의 마지막 역작이라는 제2롯데월드가 서서히 그 위용을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올들어 초고층 공사현장 화재에 이어 조기 개장을 추진하던 엔터테인먼트동 배관 폭발 사망 사고, 그리고 석촌호수 물이 줄어들고 인근 싱크홀 현상이 롯데 공사현장과 관련 있다는 의혹까지, 롯데그룹에는 시련이 거듭돼 왔다.

 

제2롯데월드 완공과 함께 롯데그룹의 미래 지배구조가 완성될지, 아니면 다시 후계 구도의 불확실성이란 안개에 휩싸일지 사뭇 궁금해진다.

 

[조시영 매일경제증권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