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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권 금융’ 한국 공습. 증권사·보험사 닥치는 대로 인수 대형 시중은행 인수도 호언장담.유안타.중신.안방

Bonjour Kwon 2015. 9. 14. 20:17

2015.09.14

 

서울시 중구 을지로2가의 대만계 유안타증권과 중국계 중국건설은행 사옥.

 

중국과 대만 등 중화권 금융이 한국 금융을 강타하고 있다. 중화권 금융의 한국 공습은 금융사 인수와 서울의 핵심 금융 중심지의 랜드마크 빌딩 인수 형태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막대한 자금을 앞세운 중화권 금융사들이 그동안 한국 금융시장의 주류 외국계 금융자본으로 대접받던 미국과 유럽계 자본에 버금갈 만큼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최근 중화권 금융사들의 한국 금융사 사들이기는 거침이 없다. 지난 8월 21일 대만 최대 금융그룹인 유안타금융그룹이 유안타파이낸셜홀딩스를 통해 한신저축은행 지분 100% 인수를 결정했다. 유안타금융그룹은 지점 수가 3개이고 직원 수 36명에 불과한 한신저축은행 인수를 위해 1351억200만원을 투자했다. 유안타금융그룹은 지난해 3월에는 주요 증권사 중 하나로 꼽히던 동양증권을 인수한 바 있다. 당시 유안타금융그룹은 동양증권(지분 53.6%) 인수에 3000억원 가까이 투자했다. 그리고 지난해 10월, 동양증권이란 이름을 버리고 유안타증권을 전면에 내세웠다. 한국 금융시장에 ‘중화 금융’의 정체성을 드러낸 것이다. 유안타금융그룹은 공개 M&A를 통해 한국 금융사를 인수한 최초의 중화권 금융사로 부각되며, 중화권 금융사들의 한국 금융시장 공습에 첨병 역할을 하고 있다.

 

대만계만이 아니다. 중국 본토 금융사들이 보이고 있는 한국 금융시장 진출 의지는 대만이나 홍콩계보다 더 강렬하다. 지난 2월 중국 최대 보험그룹인 안방보험그룹(安邦保險集團)이 한국 생명보험시장 8위 동양생명을 인수했다. 안방보험은 동양생명 지분 63% 인수에 1조1319억원을 투자했다. 삼성생명과 교보생명 등 한국의 생명보험사는 현재 중국 내 생명보험사 지분 50% 이상 인수가 불가능하다. 때문에 ‘시장경제 체제의 상호주의 원칙상 중국 국적 보험사인 안방보험의 한국 국적 동양생명 인수 허용에 신중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시장 일각의 지적도 있었다. 하지만 결국 지난 6월 한국의 금융위원회가, 또 8월에는 중국의 보험감독관리위원회가 안방보험의 동양생명 인수를 승인하며 안방보험은 ‘한국 토종 금융사를 인수한 첫 중국 본토 금융사’가 됐다. 안방보험의 동양생명 인수가 한국 보험업계를 긴장시키고 있다. 존재감조차 없던 중국 보험사가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해 한국 생명보험시장의 약 6~7%를 차지해 버렸기 때문이다.

 

지난 8월 24일 KDB산업은행의 핵심 계열사로 자산 기준 국내 2위 증권사인 KDB대우증권이 M&A 매물로 나왔다. KDB대우증권이 매물로 나오자 가장 먼저 인수 의사를 공식화한 자본이 중국 금융사다. 중국 본토의 최대 증권사로 꼽히는 중신증권(홍콩 주식시장 상장)은 수년 전부터 “KDB대우증권이 매물로 나오면 인수전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혀 왔다. 중신증권은 중국 국적의 시틱그룹(CITIC) 계열사다. 시틱그룹은 삼성그룹 둘째이자 호텔신라와 삼성물산 사장을 맡고 있는 이부진씨를 (독립)사외이사로 선임해 한국에서 유명세를 탔었다. 시틱그룹은 KDB대우증권이 M&A시장에 나오자마자 씨티글로벌증권 등과 인수 전략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KDB산업은행과 KDB산은자산운용, KDB생명은 KDB대우증권 지분 43.05%를 보유하고 있다. 현재(9월 1일 기준) 가치로 1조6948억8000만원을 훨씬 넘는다. KDB산업은행의 장부상 KDB대우증권의 지분가치는 이보다 더 큰 ‘1조7758억원’에 이른다. 그런데 KDB대우증권을 인수하려면 실제 이보다 훨씬 많은 돈이 필요하다. KDB대우증권은 2015년 6월 말을 기준으로, 총자산 34조6167억1000만원에 순자산이 무려 4조2581억300만원에 이른다. 더구나 이 순자산 중 이익잉여금으로 쌓아 놓은 돈이 1조8787억5800만원에 달한다. 여기에 국내 최대 증권사라는 브랜드 프리미엄과 전국에 촘촘히 깔린 영업망 등 경영권 프리미엄까지 더해지면, 매각가가 최소 3조원대에서 최대 4조원대는 돼야 한다는 게 시장의 시각이다.

 

이보다 낮은 가격에 팔게 되면 KDB산업은행과 이번 매각 카드를 꺼낸 현 경영진에게 헐값·부실 매각과 배임에 따른 법적 문제는 물론 특혜 매각과 갑작스러운 매각 배경에 대한 의혹들이 일 수 있다.

 

문제는 이 가격을 지불할 수 있는 매입희망자가 한국 안에 많지 않다는 것이다. 현재 KDB대우증권 인수에 가장 열의를 보이는 국내 금융사는 KB금융지주밖에 없다. 때문에 막강한 자금 동원력을 확보하고 있는 중국 금융사 시틱그룹의 KDB대우증권 인수 가능성 역시 계속 거론되고 있는 것이다. 참고로 시틱그룹이 KDB대우증권 인수에 동원한 계열사인 중신증권은 지난해 매출 291억9800만위안(5조3546억원)에, 순이익이 113억3700만위안(2조791억원)에 이른다.

 

KDB대우증권을 품으려는 중국 본토 금융사는 시틱그룹만이 아니다. 동양생명을 인수해, 한국 금융사 M&A 성공 노하우를 갖고 있는 안방보험 역시 인수 후보로 시장에서 오르내리고 있다.

 

오랫동안 M&A 매물로 내놨지만 제대로 된 매각 작업조차 해보지 못했을 만큼 인기가 없는 국내 중·소형 금융사들은 오히려 중국 거대 금융사들에 드러나지 않게 러브콜을 보내고 있는 실정이다. 이베스트투자증권의 경우 6월까지도 ‘중국 대형 증권사 궈타이쥔안증권(國太君安)에 매각을 타진한 게 아니냐’는 말이 공공연히 나돌 정도였다.

 

사실 중국 본토 금융사들의 한국 금융사 M&A 시도는 꽤 오래전부터 있어 왔다. 11년 전인 2004년 시장 매물로 나온 LG투자증권(현 NH투자증권)을 대만의 유안타금융그룹이 인수하려 했었다. 당시 유안타금융그룹은 LG투자증권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돼 한국 대형 금융사 인수 9부 능선을 넘는 듯했지만, 실패했다. 또 지난해 중국의 푸싱그룹(復星集團)은 LIG손해보험과 KDB생명, 현대증권 인수를 동시 다발로 추진했었다.

 

이뿐이 아니다. 2010년 중국 4대 국영 상업은행 중 한 곳인 중국공상은행이 광주은행(당시 우리금융지주 계열) 인수전에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또 2014년 11월에는 국내 4대 시중은행 중 한 곳인 우리은행을 중국 안방보험이 인수할 뻔했다. 세 차례의 매각 실패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2014년 6월 네 번째 우리은행 매각작업을 강행했다. 이때 우리은행 매각 입찰에 참가한 유일한 자본이 중국의 안방보험이었다. 물론 ‘복수의 매수 희망자가 있어야 한다’는 ‘유효경쟁 원칙’ 때문에 안방보험의 우리은행 인수는 좌절됐다. 당시 ‘유효경쟁’이 이루어졌다면 자금력을 앞세운 안방보험의 우리은행 인수 가능성이 매우 컸을 것이라는 게 시장 평가다.

 

이들 외에도 2010년 이후 증권·보험 등 업종을 불문하고 한국의 중소 규모 금융사 매각에 중국 금융사들의 이름이 오르내리는 것이 이제 당연한 것처럼 비쳐지고 있다.

 

중화권 금융의 한국 금융 공습을 실감할 수 있는 곳은 금융사 M&A시장만이 아니다. 중화권 금융사들의 막강한 자금은 한국 금융 중심지의 랜드마크 빌딩 시장으로도 쏟아져 들어오고 있다. 서울 시청과 명동(을지로), 종로 일대가 대표적이다.

 

 

서울 중구 을지로2가 중국건설은행.

 

 

시청과 명동, 종로 일대는 여의도와 함께 명실상부 한국 금융의 핵심 중 핵심이다. 여의도는 금융감독원과 한국거래소(KRX)를 중심으로 KDB대우증권·NH투자증권·현대증권 등 주요 증권사·자산운용사들이 모인 전형적인 증권가다. 이에 반해 시청과 명동, 종로 일대는 금융위원회를 중심으로 우리은행·하나은행(금융지주)·KB국민은행·IBK기업은행·신한은행·SC은행·한국씨티은행 등 주요 금융지주와 국내외 주요 시중은행 본사들이 집중돼 있다. 여기에 미래에셋금융그룹과 삼성증권·삼성생명·삼성화재 등 삼성그룹 금융계열사들, 또 교보생명과 현대해상 본사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종류의 대형 금융사들이 오래전부터 터를 잡고 있는 명실상부 한국 금융의 심장부다. 이 한국 금융의 심장부에 최근 중화권 금융사들이 깃발을 꽂으며 ‘중화권 금융사의 한국 금융 공습’의 중심지가 되고 있다.

 

‘중구 을지로2가 185번지와 185-10번지’, 이곳은 소위 명동 한복판이다. 맞은편에 IBK기업은행 본사와 미래에셋금융그룹 본사가 있고, 바로 옆에서 전국은행연합회 빌딩과 한국외환은행(현 KEB하나은행) 본사, 300~500m쯤 떨어진 곳에 KB국민은행과 하나금융지주 본사, 삼성화재 본사 등 한국을 대표하는 금융사들의 본사가 집중된 곳이다.

 

이곳 을지로2가 185번지와 185-10번지에 세워진 빌딩들의 주인이 바로 중화권 금융사들이다. 이 중화권 금융사들이 지난해 한국 금융의 심장부 중 한 곳인 이곳을 차지하며 중화권 금융사들의 힘을 한국인들에게 내보이고 있다.

 

먼저 을지로2가 185번지를 보자. 이곳의 현재 주인은 유안타금융그룹이다. 원래 주인은 동양그룹과 동양증권이었다. 동양그룹이 이 땅에 지하 5층 지상 15층, 연면적 2만8024.47㎡(약 8774평)짜리 건물을 지어 동양증권 본사로 썼었다. 유안타는 지난해 10월 이 빌딩에서 동양증권 간판을 떼고, 을지로가 바로 내려다보이는 빌딩 최상층부에 초대형 ‘유안타증권’ 간판을 내걸었다.

 

을지로2가 185-10번지로 눈을 돌려보자. 이곳은 유안타증권 빌딩의 등장보다 한국 금융에 더 큰 충격을 준 곳이다. 이곳의 원주인은 보고펀드 소유의 동양생명이었다. 1991년 동양생명이 지하 5층 지상 12층, 연면적 1만1135.5㎡(약 3368평)짜리 사옥을 지어 2014년까지 본사로 사용했다. 지상 12층으로 비교적 크지 않은 듯 보이지만, 실제 언덕 위에 자리한 입지와 푸른색 유선형 유리 외관으로 이곳을 지나는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둘 만큼 랜드마크의 기능을 했던 곳이다.

 

이곳을 지난해 10월 중국 4대 국영 상업은행 중 하나인 중국건설은행이 510억원에 사들였다. 최근 중국건설은행은 이 빌딩으로 입주했는데, 이로써 중국 본토 은행 자본이 한국에 독자적으로 빌딩을 매입해 한국 사옥을 갖게 된 최초의 사례가 됐다.

 

최근 이 건물 최상부에는 중국식 한자인 ‘간자체’로 쓰인 ‘중국건설은행’의 초대형 옥외 간판이 설치됐다. 이 옥외 간판은 을지로 어디에서도 보일 정도다.

 

중국건설은행만이 아니다. 중국 최초의 현대식 은행으로 중국 금융의 상징인 중국은행(BOC) 역시 최근 한국 금융에 강렬한 존재감을 심고 있다. 중국은행은 지하에 대형 서점인 영풍문고가 있고 지하철 종각역과 연결된 영풍빌딩의 1층과 2층에 있다. 이 영풍빌딩의 주인은 영풍그룹이다. 그런데 오히려 중국은행의 간판이 더 크고 화려하게 세워져 있다. 중국은행은 종각역과 청계천 사이에 ‘한자’로 쓰인 거대한 입간판을 세워 놓았다. 중국은행 역시 현재 종로와 을지로 등 한국 금융 중심지에 자신들의 독자 사옥을 물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화권 금융사들이 한국 금융시장으로 대거 밀려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짚을 수 있는 건 보유 자금은 넘쳐나지만, 2010년 이후 심각해지고 있는 중국 금융시장을 대체할 새로운 수익성 높은 시장을 찾고 있다는 관점이다.

 

현재 중국 외환보유고는 3조6513억달러(블룸버그·7월 기준)다. 세계 1위다. 이 같은 외환보유고를 확보하는 데 큰 역할을 한 곳이 대부분 ‘국영’ 체제로 운영되고 있는 중국의 금융사들이다. 문제는 2010년 이후 중국 금융시장과 산업시장이 동시에 흔들리고 있다는 점이다.

 

시장이 불안해지면서 중국에 들어가 있던 해외 핫머니들의 이탈이 가속화하고 있고, 이것이 중국 자본시장의 위험도를 다시 현격히 키우고 있는 것이다. 중국 자본시장의 이 같은 불안한 상황이 중국 산업계와 내수시장에 영향을 끼치며 중국 경제 침체의 깊이를 키우고 있다. 중국 자본시장이 요동치고, 생산·내수시장의 침체가 깊어질 때마다 중국 정부와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이 나서 급한 불을 끄고는 있다. 하지만 시장 혼란을 막기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오히려 시장 혼란과 중국 정부의 대책이 악순환의 고리를 만들고 있는 상황이다.

 

때문에 중국 본토 금융사들, 또 중국 시장과 밀접히 연결된 중화권 금융사들이 중국 시장의 불안을 피해 갈 수 있는 외국 금융시장으로 계속 눈길을 돌리고 있다. 사실 한국뿐 아니라 동남아시아와 호주는 물론, 미국과 유럽 금융시장으로도 중국 금융 자본의 진출이 거세다.

 

그럼에도 중화권 금융사들에 한국 금융시장은 ‘다른 금융시장보다 진입장벽이 낮고, 접근성이 좋은 시장’으로 비쳐지고 있다. 한국과 경제 규모가 비슷한 다른 나라의 M&A 대상 금융사들에 비해 한국 금융사들이 ‘싸다’는 인식이 중화권 금융사들의 구미를 당기게 하고 있다.

 

중국 안방보험의 예를 들어보자. 안방보험은 올해 네덜란드 보험사인 ‘비바트’의 지분 100%를 1억5000유로(약 2003억원)에 매입했다. 그런데 그들이 지불한 돈이 사실 이게 다가 아니었다. 추가로 10억유로(약 1조3354억원)를 투자하기로 약속한 것이다. 이에 반해 올해 한국 생명보험시장 8위인 동양생명을 먹는 데는 약 1조1300억원 남짓밖에 들지 않았다. 더구나 1조1300억원 남짓 투자해 손에 넣은 동양생명으로 이들은 한국 생명보험시장 점유율을 단숨에 6~7%나 확보할 수 있었다.

 

매물로 거론되는 한국의 시중은행과 증권사들 역시 보험사보다는 몸값이 비싸지만, 비슷한 경제 규모를 가진 다른 나라의 M&A 물건들과 비교했을 때 가격 면에서 결코 비싸지 않다는 인식이 강하다.

 

또 지리적으로 중국과 가깝고, 한국의 중국 시장 의존도가 크다는 점 역시 중화권 금융사들에는 투자처로서 매력적으로 비치고 있다. 엄청난 자본력을 무기로 전 세계 시장을 휩쓸고 있는 중화권 금융사들의 무차별 공습을 한국 금융시장이 피하기란 사실상 힘들다.

 

그렇다면 우리 금융시장에 도움이 될 알짜 중화권 금융은 누구이고, 먹튀 자본 성격이 큰 중화권 금융은 어떤 것인지를 지금부터라도 면밀히 따져 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