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분식회계

거짓말 하는 기업들5화. 대한전선이 부풀린 이익.모기업 대한시스템즈에 전선을 팔고 받은 매출채권은 당시 되돌려 받기 힘든 돈.이를 부풀려

Bonjour Kwon 2016. 2. 11. 10:52


대한전선의 거짓말

연재일 : 2016.01.18 by  김도년외 1명


2700억 원

쏘나타 승용차 1만 대를 살 수 있는 돈이다. 연봉 2700만 원을 받는 중소기업 노동자가 한 푼도 쓰지 않고 꼬박 1만 년을 모아야 하는 돈이기도 하다.



전봇대에 설치하는 전깃줄을 생산하는 대한전선은 2014년 12월 이만큼의 돈을 실제로 벌어들인 사실이 없었음에도 벌어들인 것처럼 회계장부에 기록한 혐의로 검찰에 고발됐다. 모기업 대한시스템즈에 전선을 팔고 받은 매출채권은 당시 되돌려 받기 힘든 돈이었지만, 이를 돌려받을 수 있는 것처럼 회계처리를 한 것이다. 지금은 뒤늦게 상환을 받고는 있지만, 당시 상황은 그랬다.

좀 더 들여다보면 이렇다. 대한전선은 전선을 생산해 2011년 모기업 대한시스템즈에 납품한다. 대한시스템즈는 납품받은 전선을 일선 대리점에 외상으로 팔고 대리점이 소비자에게 파는 식으로 돈을 번다.


거꾸로 소비자가 대리점에 전선 값을 주면 대리점이 대한시스템즈에 받은 외상값을 갚고 대한시스템즈가 대한전선에 납품 대금을 갚는 식이다. 자식이 만든 전선을 부모가 시장에 내다 팔아 돈을 벌고, 그 돈으로 자식에게 용돈을 주는 일종의 '앵벌이' 구조다.


설윤석 전 대한전선 사장 


문제는 빚이 많았던 부모기업 대한시스템즈가 대한전선에 줘야 할 납품 대금을 갚지 못하게 되면서 발생했다. 적자가 쌓여 자본금을 모두 까먹게 된 대한시스템즈는 대리점으로부터 받은 돈을 자기가 빌린 대출금과 이자를 갚는데 써버린 것이다. 이 돈이 무려 2270억 원이었다.

대한전선은 이 돈을 돌려받지 못하면 대손충당금으로 쌓아 손실로 처리해야 한다.


대손충당금 : 돈을 빌려주거나 물건을 팔고 받기로 한 돈이 계약 상대방의 부실로 받지 못하게 됐을 때 앞으로 발생할 손실에 대비해 쌓아두는 계정.


전선을 팔아 받아야 할 돈이 안 들어오게 생겨 대손충당금을 설정하면 당기순이익도 그만큼 줄어들게 되고 그에 따라 자기자본도 줄어들 수밖에 없던 것이다.

대한전선은 당시 모회사로부터 돌려받지 못한 2270억 원을 대손충당금으로 쌓지 않고 당기순이익으로 버젓이 회계장부에 기록했다. 순이익을 부풀리기 위한 분식회계가 이뤄진 것이다.


분식회계는

이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이번엔 헐값에 청산해야 할 자산을 마치 고가의 자산인 것처럼 처리했다. 대한전선에게도 자식이 있었는데, 종속기업인 티이씨앤코는 2011년 서울 독산동에서 주상복합건물신축사업을 진행했다. 그러나 부동산 경기는 나아질 줄을 몰랐고 사업자금과 시행사를 확보하기가 어려워진 것이다.

추진 일정은 2년이 넘게 늦어졌다. 이 사업을 진행하는 데 돈을 빌려준 채권은행들은 더는 사업을 믿지 못하게 됐다. 결국 채권단은 사업부지를 계속 사업을 할 수 있는 부지가 아니라 시장에 내다 팔아야 할 대상으로 분류했고 이렇게 되면 대한전선은 시장에서 헐값에 청산되는 가치대로 회계장부에 기록해야 한다.


그러나 대한전선은 개발이 중단된 이 사업장이 마치 정상적으로 사업이 진행되고 있는 것처럼 기록했다. 갑자기 자산가치가 377억 원 가량 늘어난 것이다. 회계감사를 맡은 안진회계법인은 대한전선의 분식회계를 회계감사에서 걸러내진 못했다. 회계기준에 어긋남이 없다는 의미인 감사의견 '적정'을 매겼고 대한전선은 실제로는 없는 총 2700억 원대의 돈을 만들어 내게 된다. 이런 행위로 회계감독당국은 대한전선을 검찰에 고발했다. 안진회계법인에도 소속 감사를 제대로 못한 회계사에게 1년 동안의 직무정지를 건의했다.


분식회계,

감사보고서를 보면

짐작할 수 있다?


일반인들은 기업의 분식회계를 회계장부만 봐서는 제대로 적발해 낼 수 없지만, 회계를 보는 안목을 키우면 분식의 징후 정도는 눈치를 챌 수 있다. 분식회계 사건으로 징계를 받기 전인 2013년 3월 회계법인이 작성한 감사보고서를 보면 '계속기업에 대한 불확실성이 있다'고 밝히고 있다. 즉, 계속해서 사업을 영위하기가 어렵다는 의미로 앞으로 부도가 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당시 안진회계법인의 감사보고서에 나타난 얘기를 보자. 이런 글귀는 기업의 2012년 말 사업보고서를 펼쳐놓고 여기에 첨부하는 감사보고서의 '외부감사인의 감사보고서'란을 보면 나와 있다.


회사는 2012년 12월 31일로 종료되는 회계연도에 4432억 6100만 원의 당기순손실이 발생하였고, 2012년 12월 31일 현재 유동부채가 유동자산을 6840억 8800만 원 초과하는 등 재무상태가 악화되고 있습니다. 또한, 2012년 12월 31일 현재 3791억 5300만 원(대손충당금 등 차감 후)에 이르는 특수관계자에 대한 채권을 계상하고 있는 바, 동 채권에 대한 회사의 향후 회수계획에 차질이 발생할 경우 장부금액을 회수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이와 함께 회사가 특수관계자 등을 위하여 제공한 금융보증계약과 관련하여 최대 4279억 8400만 원의 보증금액이 신용위험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사항은 회사의 계속기업으로서의 존속능력에 중대한 의문을 불러일으킬 만한 중요한 불확실성이 존재함을 의미합니다.

외부감사인의 감사보고서

회계사는 2012년 말 4430억 원 규모의 당기순손실이 발생했고 1년 안에 갚아야 하는 빚(유동부채)이 1년 안에 현금으로 바꿀 수 있는 자산(유동자산)보다 6840억 원이나 많다고 쓰고 있다. 자산을 모두 내다 팔아도 빚을 갚을 수 없을 지경이란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또 특수관계자, 즉 모회사 대한시스템즈에게 받을 돈인 채권 3790억 원이 있는데, 이를 돌려받지 못하면 앞으로 사업을 계속해서 영위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쓰고 있다.


어려운 회계용어로 표현해 놨지만, 회계사가 이 정도로 얘기하는 것은 "회사가 곧 망할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얘기다. 회계사들은 감사 대상 기업에 일감을 얻어야 하는 '을(乙)'의 위치에 있는 까닭에 대놓고 감사의견을 '부정적'이나 '의견거절'을 내리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완곡하게나마 '계속기업 가정의 불확실성'이란 표현을 달아 부실 회사란 사실을 시장에 알리는 것이다.


물론 회계사가 분식회계를 했다고 알려놓은 건 아니지만, 우리가 이런 회계사의 의견을 통해 대한전선이 분식회계를 저지를 수도 있겠다는 짐작을 해 볼 수 있다. 모회사 대한전선으로부터 받아야 할 매출채권을 마치 받을 수 있는 돈인 것처럼 처리하는 식의 분식회계가 이뤄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 볼 수 있는데, 실제 대한전선의 분식회계 내용과 일맥상통한다.


회계사는 회사가 철저히 분식회계 사실을 숨길 때는 이를 미리 파악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간단한 피검사나 소변검사 만으로 환자가 암에 걸려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환자가 의사에게 모든 자료 제공에 동의하고 MRI나 CT 촬영에 협조해야 암을 진단해낼 수 있는 것처럼, 회사가 작정하고 자료를 제공하지 않으면 회계사도 분식회계를 발견해내지 못한다.


감사의견에 반영하진 못했지만, 계속기업 가정의 불확실성을 통해 진단 결과를 내놓는 것은 회계사로선 최선을 다한 결과라고도 볼 수 있다. 그만큼 기업의 거짓말을 밝혀내는 것은 회계 전문가들도 어려운 일이 된 것이 지금의 시장 구조다. 물론 회계사들은 금전적 유혹에 이끌려 기업의 거짓말을 도와주거나 숨겨주는 일에 나서기도 한다.


이런 기업과 회계사 간의 유착 구조가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는 것은 결국, 회계감사 시장을 무한경쟁의 틈바구니에 맡긴 탓이다. 회계사가 감사를 철저히 하려 하면 할수록 기업은 일감을 주려하지 않고 흔해 빠진 다른 회계사에게 일감을 주려하니, 회계법인도 먹고살기 위해서는 적당히 기업의 비위에 맞춰줘야 할 것 아닌가. 근본적인 시스템 개혁이 필요한 때다.

ⓒ 이데일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SNS로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