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분식회계

동양그룹의 사례.동양 사태는 곧 금산분리 규제의 허점이 만든 결과.침몰하는 재벌의 발악,분식

Bonjour Kwon 2016. 2. 11. 10:41

'빚을 감춰라'
침몰하는 재벌의 발악

동양그룹의 거짓말
연재일 : 2016.01.04 by 김도년외 1명



우리나라에서 증권시장이 탄생한 이래 이렇게 규모가 큰 불완전판매 사건이 있었을까. 동양그룹 계열사의 회사채나 기업어음(CP)에 투자한 사람만 4만 1398명. 이들은 "재계 서열 38위인 동양그룹이 설마 망하겠느냐"는 동양증권 창구 직원의 말만 믿고 채권을 샀다가 동양그룹이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투자금을 날린 사람들이다. 피해금액만 1조 7000억 원에 달했다

동양 사태는 곧 금산분리 규제의 허점이 만든 결과다. 금융위기 이후 부동산 경기 침체로 ㈜동양과 동양시멘트 등 주력 계열사들의 영업적자가 급격히 늘어나지만, 이런 자금난을 해결하기 위해 동원한 곳은 동양증권, 동양파이낸셜대부와 같은 동양그룹 내 제2금융사들이었다.

우리나라는 산업자본의 은행 지배를 원천적으로 금지하고 있지만 증권, 보험, 신용카드, 캐피털, 대부업체 등 제2금융사에 대한 소유 규제가 없다. 재벌 그룹들은 각자 제2금융사 하나씩은 두고 있고 돈을 좀 만지게 된 중소기업의 오너들도 사금고로 쓰기 위해 자그마한 저축은행에 눈독을 들이기도 한다.

동양그룹의 부실,
정부 규제 공백이 키워

규제 공백은 정부가 스스로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동양그룹이 제도의 허점을 파고들기도 했지만, 사태의 발단은 온갖 자본시장의 규제를 풀어준 자본시장통합법(이하 자통법)이라고 볼 수 있다. LIG건설, 웅진그룹 등 부실 대기업들이 회사채 대신 기업어음을 장기적인 자금조달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해 준 것도 이 법 때문이다. 기업어음은 1년 안에 갚아야 하는 단기 자금을 빌리기 위한 증권이었지만, 자통법은 기업어음에 대한 만기, 발행자 요건, 최저액면금액 등 규제를 대거 폐지했다.


이렇게 만기와 발행금액 제한이 없어지면서 만기가 1년이 넘고 금액 단위가 큰 장기 기업어음 발행 비중이 크게 늘었다. 회사채를 발행하려면 기업 내부에서도 이사회 의결을 받아야 하고 금융당국에 증권신고서를 제출해야 하는 등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하지만, 기업어음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회사채와 다름없을 만큼 장기 자금을 빌려 올 수 있는데다 의사결정 과정도 간편했기 때문에 동양그룹 부실 계열사들은 기업어음에 크게 의존했던 것이다.

자통법 시행으로 기업어음 발행 규제가 완화됐을 뿐만 아니라 신탁 상품 관련 규제도 풀렸다. 과거에는 신탁 상품을 통해서는 계열사의 회사채나 기업어음에 투자해 부실 계열사를 지원해줄 수 없었지만, 자통법 시행 이후에는 가능해진 것이다.

즉, 동양증권이 특정금전신탁의 투자 자산에 ㈜동양이나 동양시멘트 등 부실 관계회사 기업어음을 넣고 증권사 창구에 찾아오는 개인투자자들에게 파는 행위가 과거엔 불법이었지만, 자통법 시행 이후로는 합법화됐다.

특정금전신탁이란 금융회사가 고객에게 받은 돈을 고객이 지정한 운용 방법과 조건에 따라 운용한 뒤 수익을 배당하는 상품이다. 원래는 고객이 주식이나 채권, 파생상품 등 원하는 상품을 골라 담고 금융회사가 고객이 담은 상품을 운용하는 '일대일 맞춤형 금융투자상품'이지만, 동양증권은 고객에게 적절한 설명도 없이 동양그룹 부실 계열사의 회사채와 기업어음을 고객의 특정금전신탁 상품 안에 담아 투자자 피해를 키웠던 것이다.


동양 사태는 우연히
일어난 사고가 아니었다

2013년 9월 말쯤 터질 것이란 건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이나 금융당국자들, 금융권을 출입하는 기자들 등 알 만한 사람은 대부분 알고 있었다. 사실상 예고된 일이었던 것이다. 금융위원회는 당시 신용등급이 투자부적격 등급(신용등급 BB+ 이하)인 계열사 회사채나 기업어음을 같은 기업집단에 소속된 금융회사가 일반 고객에게 팔지 못하게 하는 규정을 2013년 10월 24일부터 적용하도록 했다.

즉, 자금난에 처한 재벌그룹 계열사가 재벌그룹 안에 있는 증권회사를 이용해 투자자를 모집, 자금난을 해결하는 일을 막기 시작했던 것이다. 좀 더 일찍 규정을 적용할 수도 있었지만, 왜 그해 9월 동양 사태가 터지고 난 뒤에서야 이를 적용했는지 의문이 남는다. 정부의 대기업 봐주기를 의심할 수 있는 대목이다. 

동양그룹은 사실상 동양증권이 투기등급의 회사채와 기업어음을 개인투자자들에게 팔아 끌어 모은 돈으로 가까스로 생명 연장을 하고 있었는데, 이 제도가 더는 시행되지 않는다는 것은 동양그룹에는 산소호흡기를 떼버리는 것과 같은 일이었던 것이다.

이런 사실을 알고 있던 언론도 노골적으로 이슈를 다루기엔 어려움이 있었다. 아직은 망하지 않은 기업을 '망할 가능성이 있다'는 식으로 시장에 알렸다가 실제로 자금이 돌지 않아 기업이 망하게 됐을 때의 뒷감당은 끔찍한 것이다. 수많은 직원들이 일자리를 잃게 될 것 아닌가.

그래서 당시 주요 경제신문들은 'D의 공포' '대기업 ○곳 위기'란 식의 제목으로 에둘러 보도하곤 했지만 'D'가 상장하는 곳이 '동양그룹'이란 사실을 아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눈치를 챈 사람이 많았다면 동양사태 피해자들이 4만여 명에 달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동양그룹 분식회계,
침몰하는 배에 난 구멍,
스펀지로 막기

동양그룹의 분식회계는 이렇게 서서히 침몰해가는 거함의 바닥에 뚫린 작은 구멍들을 스펀지로 막는 행위나 다름없었다. ㈜동양은 글로벌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2008년 빚더미에 앉게 되면서 계열사인 동양시멘트의 주식을 리더스 사모투자전문회사(PEF·Private Equity Fund)에 매각했다. 주식을 팔아 들어온 돈으로 빚을 갚으려 했던 것이다. 하지만, 완전히 주식을 판 게 아니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건 동양이지 사모펀드가 아니었기 때문에 동양 입장에선 불리한 조건들이 붙었다.

사모펀드는 동양시멘트 주가가 하락해 손해를 보게 되면 동양에 샀던 주식을 미리 정한 가격에 다시 팔 수 있는 권리(풋옵션·Put option)를 달라고 했던 것이다. 동양 입장에선 나중에 사모펀드가 동양시멘트 주식을 다시 동양에 팔겠다고 하면 고스란히 돈을 내줘야 하기 때문에 이렇게 내줘야 하는 금액은 회계장부에는 부채로 기록해야 한다.


하지만, 동양은 부채를 감추기 위해 이를 간단히 무시했다. 겉보기엔 동양이 동양시멘트 지분을 매각하면서 구조조정을 단행한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연복리 10%의 대출을 받았던 셈이다. 이렇게 감춘 부채가 2008년에만 2000억 원에 달했다.

리더스 사모펀드는 동양에 풋옵션을 설정한 것은 물론 동양이 돈이 없다고 드러눕는 사태를 대비해 현금 대신 가져갈 수 있는 담보까지 요구했다. 동양은 계열사인 동양파이낸셜대부의 주식을 담보로 받은 뒤 이렇게 받은 담보를 사모펀드에 제공했다. 어머니가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야 하는데 담보로 잡을 게 없어 아들이 가진 자가용이라도 담보로 내 준 셈이다. 어머니와 아들처럼 모회사와 자회사는 특수관계인이기 때문에 특수관계인 간 거래는 재무제표 주석에 기록해야 한다. 하지만, 동양은 이를 기록하지도 않았다.


이 부분은 중요하다. 만약 동양과 동양파이낸셜대부가 의도적으로 특수관계인 간 거래를 빠뜨렸다면 그룹의 배임 행위를 감추기 위해 서로 공모한 혐의가 성립될 수도 있다. 동양파이낸셜대부는 부실한 모기업을 돕기 위해 자신의 주식을 담보로 내줬지만, 본인의 회사에는 손해를 끼친 행위가 되기 때문에 담보 제공을 결정한 경영진에게는 배임죄를 물을 수 있다.

골프회원권도 기업들이 종종 이익을 뻥튀기하는 수단으로 동원한다. 동양은 2012년 계열사 동양레저로부터 사들인 골프회원권의 가치를 부풀렸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국내 골프장은 불황에 시달렸다.

이렇게 골프장을 찾아오는 고객이 줄어들면 골프회원권의 가치도 하락할 수밖에 없는데, 이렇게 되면 골프회원권의 가치를 재평가해 손상차손(損傷差損·시장에서의 자산 가치가 급격히 떨어져 장부가격보다 현저히 낮아질 가능성이 있으면 재무제표 상 손실로 반영해야 하는데, 이때 반영하는 손실을 손상차손이라고 한다)으로 기록해야 한다. 동양이 이렇게 손실을 본 액수는 145억 원에 달했지만, 이를 당기순이익에 반영하지 않아 이익을 부풀렸다.


동양그룹의 중간 지주회사 역할을 하는 동양레저도 보유하고 있는 골프장을 이용해 빚을 숨겼다. 동양레저는 자금 사정이 나빠지면서 골프장을 담보로 동양생명으로부터 돈을 빌린다. 기존 대출을 갚으려고 다른 데서 대출을 받는 일종의 '돌려막기'를 한 것이다. 당연히 빚의 총량은 줄었을 리가 없지만, 동양레저는 마치 골프장을 동양생명에 팔고, 이렇게 들어온 매각대금으로 빚을 완전히 청산한 것처럼 회계장부를 꾸몄다. 동양레저는 매달 동양생명에 나눠 갚아야 하는 대출금과 이자를 회계장부에는 '임대료'로 기록해 빚을 낸 사실을 숨겼다. 이렇게 감춘 빚이 2010년에만 2290억 원에 달했다.


기업이 빚을 갚을 능력이 있는지를 알아볼 때 주의 깊게 봐야 할 항목은 재무제표상의 '유동자산'과 '비유동자산' '유동부채''비유동부채'다. 유동자산이란 1년 안에 현금으로 바꿀 수 있는 자산이고 비유동자산은 현금화하는 데 1년이 넘게 걸리는 자산이다. 같은 논리로 유동부채는 1년 안에 갚아야 할 단기 빚을 말하고 비유동부채는 1년 뒤에 천천히 갚아도 되는 장기 빚이다. 당연히 현금으로 바꿀 수 있는 유동자산이 많은 기업의 재무구조가 좋고, 빨리 갚아야 할 빚인 유동부채가 많은 기업은 나쁘다.


어떻게든 부채를 줄여야 하는 동양레저는 당장 갚아야 할 빚인 '유동부채'가 작아 보이도록 골프회원권 보증금에 대한 회계처리에서도 '마술'을 부렸다. 골프회원권은 전셋집을 이용하듯 보증금을 내면 일정 기간 뒤 계약을 갱신하거나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다.

즉, 계약 기간이 지난 골프회원권 보증금은 회원이 당장 내 달라고 요구하면 내줘야 하는 '유동부채'이지만, 동양레저는 이를 천천히 갚아도 되는 빚, 즉 '비유동부채'로 분류했다. 이렇게 잘못 분류한 빚이 2012년에만 2050억 원에 달했다

동양그룹은 이런 방식으로 재무제표에서 빚을 감추고 부채비율(부채총액/자기자본), 유동비율(유동자산/유동부채) 등 각종 재무지표가 우량한 것처럼 속여 회사채와 기업어음(CP)을 발행했을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개인투자자들은 그저 망하지 않는 대기업의 채권인 줄 알고 퇴직금을 몽땅 투자해 노후에 대비하려 했을 것이다.


침몰하지 않으려고 저질렀던 동양그룹의 분식회계는 결국, 한 대기업을 수많은 피해자의 인생을 망쳐버린 괴물로 만들어버렸다. 자본은 시장 경쟁의 구렁텅이에서 살아남기 위해 온갖 거짓말로 선량한 시민을 현혹해 호주머니를 턴다. 마치 열심히 땀 흘려 일해 돈 버는 일개미들을 잡아먹는 개미지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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