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분식회계

건설사 분식 관행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공사손실충당부채로 쌓아야 함에도 쌓지 않아.'분식회계 관행을 인정해 달라?' 건설사 논리 ?

Bonjour Kwon 2016. 2. 11. 11:09


거짓말 하는 기업들 11화

건설사 분식 관행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

대우건설의 거짓말


연재일 : 2016.02.08 by  김도년외 1명


2013년 겨울, 2문장짜리 짧은 보도자료가 금융감독원 기자실에 뿌려졌다.

대우건설의 회계처리기준 위반 혐의에 대한

제보가 접수돼 감리에 착수했음.

공사 관련 회계를 적정하게 했는지를 감리할 예정


보통 금융당국은 특정 기업의 분식회계 조사 여부를 공개적으로 밝히지 않는다. 금감원이 조사에 착수한다는 사실이 시장에 알려지는 것만으로도 해당 회사 주식가격에 미치는 여파가 상당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금감원은 이례적으로 대우건설의 분식회계 조사 사실을 언론에 공개했다. 평소와 다른 모습이었기에 뒷말이 무성했다. 금융당국이 대우건설의 대주주 산업은행을 길들이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나왔다.


무성한 뒷말을 뒤로 하고 1년 9개월이 흘렀다. 금융당국은 2015년 9월 23일 결국 대우건설이 3900억 원 규모의 당기순이익을 부풀린 분식회계를 저질렀다고 결론 내리고 중징계를 의결했다. 대우건설은 20억 원, 회계감사를 맡은 삼일회계법인은 10억 6000만 원의 과징금을 내게 됐다.

3900억 원 분식회계에 고작 20억 원의 과징금이라. 과징금 수준이 터무니없이 낮다는 논란도 있지만, 어쨌든 대우건설은 현행법상 분식회계가 드러난 기업이 내는 최고 수준의 과징금을 내게 됐다. 대우건설 논란 이후 금융위원회는 분식회계 기업의 과징금 기준을 대폭 상향 조정했다.

예상 손실 반영하지 않은 대우건설..금융당국, '공사손실충당부채'에 주목

대우건설이 어떻게 당기순이익을 조작했는지 살펴보기 전에 알아야 할 개념은 '공사손실충당부채(工事損失充當負債)'란 계정이다.

공사손실충당부채 : 건설사가 주기적으로 역마진이 날 금액을 평가해 그때그때 손실로 처리하는 항목.

공사발주처가 갑자기 부도가 나는 등 앞으로 거액의 손실이 예상되는 사건이 있을 때도 공사손실충당부채를 반영해 손실로 처리한다. 간단히 말해, 계산할 수 있는 미래의 예상 손실을 미리 반영하는 계정이 공사손실충당부채다.


렇게 예상 손실을 재무제표에 미리 반영해야 하는 것은 건설사나 조선사처럼 일감을 구해 돈을 버는 이른바 '수주기업'의 특징이다. 일반 제조업체는 그저 상품을 시장에 내다 판 만큼만 매출액을 인식하면 되지만, 수주기업은 손실과 이익을 계산하는 독특한 회계처리 방법이 있다.


건설사는 제조업체와 달리 만들어진 상품이 팔렸을 때 매출을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공사 진행률을 계산해 매출을 인식한다. 건물 하나가 만들어지는 데 워낙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제조업체처럼 상품 가격에 판매수량을 곱해 매출액을 인식하면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기간 동안에는 매출액이 '0원'일 수밖에 없다.


짓다만 건물을 내다 팔 수는 없지 않은가. 매출이 나오지 않는 회사에 사업자금을 빌려줄 금융기관도 없을 테니 제조업체처럼 공사가 다 끝나고 건물을 팔았을 때 매출액을 인식하라고 하면 아무도 건설업을 하려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이 때문에 매출액 100억 원짜리 공사를 수주하면 공사를 얼마나 진행했는지를 계산해 수주받은 금액을 잘게 나눠 매출액을 잡는다. 공사가 20% 진행됐다면 매출액은 20억 원이 되는 식이다.

공사 진행률 : 실제 투입원가를 총공사 예정원가로 나눈 비율.


100억 원이 투입될 것으로 예상되는 공사에 50억 원이 투입됐다면 공사 진행률은 50%라고 보는 것이다. 매출액만 이렇게 공사가 끝나기 전에 미리 인식해야 하는 건 아니다. 예상되는 손실액도 공사가 진행되는 기간에 '합리적으로 추정' 할 수 있다면 즉각 반영해야 한다.

가령 매출액 100억 원짜리 공사를 수주했는데 공사가 70%만큼 진행돼 70억 원을 매출액으로 미리 인식했다고 가정하자. 남은 공사를 마저 끝내더라도 앞으로 더 들어올 수 있는 매출액은 30억 원 밖에 없다. 하지만, 앞으로 공사에 더 투입해야 할 원가는 70억 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면, 70억 원을 들여 고작 30억 원의 수익이 들어오게 되니까 40억 원 만큼의 역마진이 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이렇게 손실이 예상된 금액은 공사손실충당부채 계정으로 쌓아 재무제표 상에서도 손실로 잡는다. 금감원은 대우건설이 이렇게 미리 공사손실충당부채로 쌓아야 함에도 쌓지 않은 돈이 3900억 원에 달한다고 봤다.


회사 유리한 대로

분양수익 '고무줄 계산'


분식회계는 주로 분양가를 시세보다 높게 평가해 이익을 부풀리거나 할인분양으로 손실이 날 것이 예상됨에도 이를 반영하지 않는 식으로 이뤄졌다. 건설사에 일감을 주는 시행사는 공사부지를 사는 데 쓸 돈을 은행에서 빌리는 데 대우건설은 시행사가 이 돈을 갚지 못하면 대신 갚아주겠다는 약속을 했다.

건설사가 시행사에 보증을 서 준 것이다. 만약 분양이 제대로 안 돼 시행사가 공사대금을 주지 못하면 대우건설은 손해를 보게 되는 것이고, 시행사가 은행 빚을 갚지 못하면 대우건설은 이를 대신 갚아줘야 하니 손실은 더 커지게 된다.

사업장별로 보면 시행사는 상가를 분양하면서 미리 공고한 분양금액보다 더 많은 분양수입이 들어올 것처럼 과대평가해 이익을 부풀렸다. 가령 상가를 20억 원에 분양한다고 공고해놓고 수익으로 들어올 돈은 30억 원이라고 적은 것이다.

실제로 시행사는 건설사에 공사대금을 줄 수 있을 만큼의 자금사정도 안됐지만 분양수익을 과도하게 부풀렸고 대우건설도 충분히 시행사로부터 공사대금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 평가해 예상되는 손실을 반영하지 않았다

또 분양실적이 전혀 없었던 변두리 상가의 분양수입을 마치 번화가에 위치한 상가의 시세대로 해놓거나 할인분양으로 예상보다 분양수입이 덜 들어올 것이 뻔한 곳도 시행사가 건설사에 공사대금을 줄 수 있는 능력, 즉 공사채무를 상환할 수 있는 능력을 양호한 것처럼 평가했다. 오피스텔 분양수입을 계산할 때도 인근 시세보다 분양가를 과대평가하기도 했다.



건설사는 발주처로부터 수주한 공사가 아니라 회사가 직접 자체사업을 진행하면 공사가 진행되는 정도에 따라 미리 매출 실적을 인식할 수 없고 공사가 다 끝나 건물이 팔린 뒤에야 매출액을 인식할 수 있다.


이는 화가를 떠올려보면 이해하기 쉽다. 서울시청 벽면에 벽화를 그리는 일감을 수주한 화가가 있다고 가정하자. 벽화를 그리는 데는 대략 3개월 정도가 걸릴 것으로 보고 수주계약을 맺었다. 이 화가는 벽화를 완성하지 않았더라도 벽화가 진척되는 정도에 따라 매달 급료를 받아야 일상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화가가 누군가에게 일감을 받아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마음먹고 자기 작품을 그린다고 가정하면, 이 그림은 절반 정도 그림을 완성했다고 해도 본인 스스로 그린 작품이기 때문에 작업에 대한 대가를 줄 사람이 없다. 그림을 완성한 뒤 팔려야만 돈이 들어오는 것이다. 즉, 화가가 스스로 그림을 그리게 되면 그림을 그려 시장에 파는 데 따르는 모든 손실과 이익은 화가 본인이 지게 된다.

대우건설은 화가처럼 스스로 건물을 짓는 사업을 해놓고 마치 발주처로부터 수주한 공사인 것처럼 가장해 공사 진행률을 계산하는 방식으로 매출 실적을 앞당겨 인식하기도 했다. 구체적인 사례를 보면, 대우건설은 건물을 지을 땅을 제공한 사람에게 분양수입이 들어오면 이중 얼마를 '확정제공금'으로 주겠다고 약속을 한다.


이후 실제 분양이 이뤄졌을 때 확정제공금보다 분양수익이 더 많이 들어오면 대우건설이 갖고, 분양수익이 더 적으면 그에 따른 손실도 건설사가 부담하니 이는 건설사 자체 사업을 한 것으로 볼 수 있지만, 마치 땅주인으로부터 공사를 수주한 '도급공사'인 것처럼 회계처리해 공사이익을 미리 인식하기도 했다.


이것도 화가의 사례를 들어 이해해보도록 하자. 도화지도 물감도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화가가 도화지와 물감을 제공한 사람에게 나중에 그림을 다 그리게 되면 그 그림을 팔아 100만 원을 주기로 계약을 맺었다고 가정하자.

실제로 그림이 120만 원에 팔리면 계약자에게 준 100만 원을 뺀 차액인 20만 원은 화가가 가질 수 있다. 하지만 80만 원에 팔린다면, 화가는 20만 원을 어디서든 구해서 계약자에게 100만 원을 맞춰줘야 하니 20만 원의 손실을 보게 된다.

이런 계약에서 화가는 계약자에게 일감을 받아 그림을 그린 게 아니라, 도화지와 물감만 빚을 내서 구해온 것이다. 이익이 나도 화가의 것이고 손실을 봐도 화가가 부담하게 되니 100만원어치 도화지와 물감을 빌려 화가 스스로 그림을 그렸다고 봐야 한다.


'분식회계 관행을

인정해 달라?'

건설사 논리 반박하기


대우건설을 징계하는 것이 쉽지 만은 않았다. 건설업계는 금융당국이 지적한 사안들이 건설업계의 오랜 관행이라 목소리를 높였다. 대우건설이 징계를 받으면 모든 건설사를 징계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건설업계에 정부가 찬물을 끼얹고 있다며 노골적으로 불편한 속내를 감추지 않았다.


"유가와 환율, 인건비 등 투입원가가 얼마나 들어갈지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에 예상손실은 신뢰성 있게 추정하기 어렵다"

대우건설 징계 논란이 일자 건설업계는 이렇게 주장했다.

'예상원가를 계산하기 어렵기 때문에 예상손실도 합리적으로 추정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것이 건설업계의 '특수한 사정'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국제회계기준(IFRS)이 도입되기 전부터 일반기업 회계기준에선 '공사손실 발생이 예상되는 경우에는 예상손실을 즉시 공사손실충당부채로 인식하고 중요 세부 내용을 주석으로 기재한다(16.53)'고 돼 있다. 이것은 공사진행률로 수익을 인식하는 건설사 회계의 특수성을 무시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건물 하나 짓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 건설사의 특성에 맞춰 손실과 이익을 최대한 현실에 가깝게 반영하라는 취지다. 손실을 예상하는 일이 쉽진 않겠지만, 외부에 공개하는 재무제표의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 최대한 정확히 예상하려는 노력이 라도 해보란 주문이기도 하다.

예상 투입원가가 얼마나 들어갈 지 예측하기 어려워 손실을 추정하기 어렵다는 논리라면 건설사는 이익도 추정하기 어렵기는 마찬가지여야 한다.


왜냐하면 공사진행률이란 실제 투입원가를 총공사예정원가로 나눈 값인데, 분모인 예정원가를 예측하기 어렵다면 공사진행률 자체를 계산하기 어렵다는 것이고 이렇게 되면 건설사들은 공사진행률이 계산될 수도 없으니 수익도 인식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수익은 발주처가 인정하는 것보다 공사진행률을 높여 미리 인식하면서 손실은 그때그때 인식하기 어렵다는 것은 모순이다. 회사의 유불리에 따라 손익이 달라지는 재무제표를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는가.



잘못은 곰이 하고

매는 주인이 맞은

허술한 시스템


대우건설이 총 3900억원 규모의 손실을 반영하지 않아 이익을 부풀린 시점은 2012년부터 2013년 말까지다. 그런데 과징금은 누가 냈을까? 임원중에선 2013년 7월부터 재직한 현직 대표이사뿐이다. 전직 대표는 물론 분식회계가 이뤄진 기간에 일을 했던 재무담당 임원은 전혀 처벌이 이뤄지지 않았다.


회사에 대한 과징금 20억 원도 공정하지 못하긴 마찬가지다.

분식회계는 경영진의 직무 유기나 고의로 이뤄지는 범죄이기 때문에 경영진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 순리일 텐데 회사가 이들이 내야 할 과징금을 대신 내주고 있는 꼴이다.


회사가 내 준 과징금 20억 원은 회사의 주인인 주주의 재산이라고 볼 수 있는데 대우건설 주식을 가진 주주들은 분식회계 소식에 주가가 내려 손해를 보고 과징금까지 주주의 재산으로 내게 되는 어이없는 꼴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잘못은 곰이 하고 매는 주인이 맞는 꼴이다. 이 때문에 금융위원회는 2015년 10월 '수주산업 회계투명성 제고방안'을 만들어 발표하기에 이른다. 수주기업의 감시를 대폭 강화하고 처벌 수위도 높이는 내용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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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완벽하진 않지만, 금융당국이 대우건설의 분식회계에 대한 중징계 조치를 내린 것은 우리나라 수주산업의 회계 관행을 바꾸는 커다란 전환점이 된 사건으로 기록될 만하다. 대우건설과 비슷하게 회계처리를 하고 있었다면, 지금부터는 봐주고 넘어갈 일이 아니라 바로 잡지 않으면 징계를 받을 일로 바뀌었다. 건설사 회계처리 관행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라 이야기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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