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증권회사

무너지는 자본시장 ① 2012.11.26 매경

Bonjour Kwon 2012. 11. 27. 09:02

수수료 0.01%의 눈물

저금리·저성장 늪에 IB 출혈경쟁 내몰려 개미들도 깡통 속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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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증권사 투자금융(IB) 대표는 최근 7500억원 규모 지분 매각 주간사 입찰에 참여하면서 고심 끝에 수수료로 3bp(0.03%)를 제시했다. 한두 달 전만 해도 30~40bp(0.3~0.4%)는 받을 수 있는 거래였지만 워낙 경쟁이 치열해졌다. 하지만 A사는 입찰에서 떨어졌다. 주간사는 1bp(0.01%)를 적어낸 B증권사 차지가 됐다. 곳곳에서 "공짜가 아니라 돈을 주고 일하는 셈"이라는 한숨이 터져 나왔다.

# 2. 정보기술(IT) 부품업체인 I사는 국내 코스닥 상장을 통한 자금 회수를 접고 미국 기업에 지분을 매각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I사는 초기 투자했던 벤처캐피털과 함께 보유 지분을 약 5000만달러에 팔았다. "우리 자본시장에서는 기술력을 인정받아 기업가치를 제대로 평가받기 힘들었기 때문"이라고 벤처캐피털 관계자는 설명했다.

# 3. 직장인 김상철 씨(40)는 5년 전 가입했던 브릭스 펀드만 생각하면 울화통이 터진다. 목돈 3000만원을 넣은 브릭스 펀드 수익률은 여전히 -25% 안팎을 오간다. 한창 때 브릭스 펀드는 1년 만에 10조원어치 넘게 팔렸다.

한국 자본시장을 구성하는 세 주체인 투자자와 기업, 금융투자회사(증권ㆍ자산운용ㆍ선물ㆍ투자자문)가 모두 패자로 전락하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5년 동안 저성장ㆍ저금리 국면이 지속되면서 자본시장이 엷어지고 방향까지 잃어가고 있다.

김형태 자본시장연구원장은 "투자자와 기업, 금융투자업계가 신성장산업을 키우며 함께 성장하는 선순환을 이뤄야 하는데 그 고리가 끊겼다"며 "자본시장에 신뢰가 무너진 것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자본시장 신뢰 상실은 뒤바뀐 생태환경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탓이다.

고성장ㆍ고금리 환경에선 경쟁력이 낮아도 버텼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수익성이 나빠지자 갈수록 자금 운용이 단기화하고 개미투자자를 트렌드 상품 쪽 쏠림으로 몰아가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과 홍콩 자본시장은 버블 논란이 벌어질 정도로 기업이 몰리고 있지만 우리나라 증시에서는 돈과 기업이 떠나고 있다. 올해 증시 시가총액 대비 기업공개(IPO) 신규 자금 조달 규모는 0.02%다. 미국 0.11%, 홍콩 0.22%, 중국 0.45% 등과 비교하면 뭔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

금융투자업계도 고사 직전이다.올해 1분기(4~6월)에는 전체 증권사 순이익(2040억원)이 삼성생명(2516억원) 한 곳만도 못하다. 우리나라 상위 5개 증권사(자본금 기준)의 1년치 순이익을 모두 합쳐봐야 1조원에도 못 미쳐 스위스 증권사 UBS의 6분의 1에 불과하다.

리토 카마초 크레디트스위스(CS) 아태지역 부회장은 "금융시장 안정성 못지않게 금융투자업계 경쟁력을 높이는 일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