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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익률 10%·年 2700만원 연금…호주는 `은퇴자 천국`

Bonjour Kwon 2017. 7. 6. 07:52

 

2017.07.06

 

116개 퇴직연금 펀드 수익률·수수료 바로 공개 성적 나쁘면 시장서 퇴출…운용사들 고수익 경쟁 치열

 

호주는 정부 주도로 DC형 연금으로 전환 유도…가입자가 연금운용사 선택

 

◆ 퇴직연금, 선진국서 답을 찾다 (上) / 호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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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근로자들은 높은 수익을 내는 퇴직연금 덕분에 노후 걱정을 거의 하지 않고 있다. 호주 시드니 서큘러키에 밀집한 금융가. [시드니 = 최재원 기자]

호주 최대 대체투자 전문 운용사이자 퇴직연금 자산운용사인 IFM인베스터스는 1997년 7월 멜버른공항에 6300억원(지분 25%)을 투자했다. 이곳은 시드니와 함께 호주 중심도시를 표방하는 멜버른의 유일한 공항이다. 덕분에 공항 이용자가 꾸준히 늘면서 현재 지분가치는 1조7500억원으로 늘었다. IFM인베스터스는 20년간 거둔 178%란 높은 수익을 고스란히 호주 은퇴자들에게 돌려줬다.

 

개리 웨븐 IFM인베스터스 이사회 의장은 최근 호주 시드니 현지에서 매일경제와 만나 "주식이나 채권이 아닌 대체투자가 연금자산 투자수익률을 높이는 비결"이라면서 "부동산이나 인프라에 투자하면 앞으로도 10% 안팎 수익률을 꾸준히 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IFM인베스터스는 총운용자산 860억호주달러(약 72조원)로 세계 3대 인프라투자 운용사다.

 

호주 근로자들은 높은 수익을 내는 퇴직연금 덕분에 노후 걱정이 거의 없다. 실제로 65세에 은퇴하면 연평균 2700만원(3만1000호주달러)의 연금을 받아 노후를 즐길 수 있다. '은퇴자의 천국'으로 불릴 만한 셈이다.

 

한국은 지난해 기준 은퇴자의 대부분인 98.4%가 퇴직금을 일시금으로 수령했고, 이들의 평균 수령액은 1938만원에 불과하다. 은퇴 후 20년간 나눠 받는다고 가정하면 연간 100만원에 불과해 사실상 연금으로서 기능을 거의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호주가 연금 강국이 된 것은 '슈퍼애뉴에이션(Superannuation)' 퇴직연금 제도 도입이 결정적 계기였다. 슈퍼애뉴에이션은 정부가 기업에 근로자 연봉의 9.5%를 의무적으로 적립하게 하고 전문가가 알아서 굴려주도록 구조가 짜여 있다. 116개의 퇴직연금 펀드가 치열하게 운용 경쟁을 펼치고 금융당국은 이 펀드들의 수익률과 수수료를 공개한다.

 

20·30대 전문 퇴직연금 운용 스타트업 '스페이스십'의 크리스 토머스 최고투자책임자(CIO)는 "비트러스티드(Betrusted)라는 작은 슈퍼애뉴에이션 연금펀드가 있었는데 5월 중순 문을 닫았다"면서 "수익률을 연간 3~4%밖에 내지 못해 투자자들이 다른 펀드로 옮겼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수익을 내지 못하면 살아남을 수 없는 경쟁구조의 정립이 호주 퇴직연금이 지난 5년간 연평균 8.4%의 높은 수익률을 기록한 또 하나의 비결이다.

 

 

현재 호주 퇴직연금의 90% 이상은 근로자가 자기 연금을 책임지고 굴리는 확정기여(DC) 형태다. 2002년 당시 호주 2위 항공사였던 안셋(Ansett)의 파산이 결정적 계기가 됐다. 이 회사는 기업이 근로자의 연금을 맡아서 굴리다가 은퇴할 때 주는 확정급여(DB) 형태로 퇴직연금을 굴렸다. 그런데 회사가 망하면서 근로자들이 연금을 받지 못하는 문제가 불거진 것이다. 현지 로펌인 HWL앱스워스 관계자는 "채권자와 근로자들이 회사를 상대로 동시에 소송에 들어갔는데 결국 연금의 매우 일부만 돌려받을 수 있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이처럼 DB형 퇴직연금은 기업에도 근로자에게도 불안 요인이다. DC형으로 전환하고 운용 수익률을 높이는 게 최상의 방법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호주 금융학회장을 맡고 있는 케빈 데이비스 모나시대 교수는 "호주는 정부 주도로 DB형에서 DC형 퇴직연금으로 바꿨다"면서 "DC형은 개인이 성과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지만 그것보다 DB형에서 회사가 망했을 때 리스크가 더욱 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6월 말 결산일 기준 호주 퇴직연금의 최근 1년 수익률은 10.3%를 기록했다. 투자자산별 구성 비중을 살펴보면 호주 국내주식과 해외주식을 포함해 주식에 전체 자산의 절반인 50%를 투자한다. 부동산과 인프라, 헤지펀드 등 대체투자 비중도 15%에 달한다. 반면 채권은 국내외를 합쳐 21%, 현금성 자산 비중도 12%로 매우 낮다.

 

이처럼 공격적인 성향의 자산배분 투자는 '디폴트옵션(Default Option)' 제도를 통해 전문가들이 알아서 굴리는 형태로 연금 운용이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디폴트옵션은 DC형 연금 가입자가 운용 방법을 지정하지 않을 경우 금융회사별로 미리 지정된 대표 금융상품으로 굴려주는 제도다.

 

호주 금융당국은 최고의 연금 선진국이란 외부 호평에 만족하지 않고 퇴직연금 의무적립 비율을 현재 계획(2025년 근로자 임금의 12%)보다 추가 상향하고 은퇴 이후 개인이 보유한 자산의 운용방안 등 끊임없이 제도 개선을 추구하고 있다. 웨븐 의장은 "현재 호주 퇴직연금 적립금은 2000조원(2조5000억호주달러)까지 늘었고 2030년에는 6000조원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 <용어 설명>

 

▷ 확정급여(DB)·확정기여(DC)형 : 퇴직연금은 크게 확정급여(DB·Defined Benefit)형과 확정기여(DC·Defined Contribution)형 두 가지로 나뉜다. DB형은 기업이 연금 운용 주체를 선정하는 대신 지급액을 보장하고 운용에 따른 수익이나 손실은 회사가 책임을 지는 구조다. DC형은 근로자가 직접 운용 주체를 선정하는 대신 수익률에 대한 책임을 지는 방식이다.

 

▷ 디폴트옵션 : DC형 연금 가입자가 운용 방법을 지정하지 않을 경우 금융회사별로 미리 지정된 대표 금융상품으로 자동으로 굴리는 제도다.

 

[시드니·멜버른 = 최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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