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신년기획]
2018-01-02
2018년의 주택시장 최대 이슈는 ‘후분양제’ 도입 로드맵 발표다. 사실 현행 주택 건설 관련 법령의 기본은 후분양제다. 오히려 일정한 요건을 갖출 경우에만 예외로 선분양이 인정되는 식이다. 다시 말해 현재 정부는 후분양제로 분양사업의 ‘일원화’를 준비하는 셈이다. 이를 위한 법령 개편은 국토교통부령으로 되어 있는 ‘주택공급에 관한 규칙’에서 선분양할 수 있는 예외 조항을 삭제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어서 절차상 어려움이 크지 않다.
선분양제가 도입 40년 만에 폐지의 기로에 선 셈이다. 이번에는 참여정부 시절처럼 도입 시기를 최대한 연장함으로써 정권 교체와 발맞춰 제도 도입을 흐지부지하기도 어려워 보인다.
◆ 후분양제를 둘러싼 HUG-LH 갈등
2004년 참여정부는 후분양제 로드맵을 만들었다. 2012년 제도의 완전한 시장 정착을 목표로, 분양허용 공정률 수준을 2007년 40%부터 시작해 2년 단위로 20%p씩 올리는 것이 계획이었다. 하지만, 업계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치며 로드맵은 시행조차 되지 못하고 폐기됐다.
문재인 정부는 후분양제를 다시 들고 나왔다. 내용은 참여정부보다 강화됐다. 정부 움직임보다 앞서 정동영 국민의당 의원이 주택법 개정안을 통해 분양허용 공정률 수준을 80%로 높이자는 내용을 담았다. 업계는 놀랐다. 이때 실제로 청와대 안팎에서 흘러나온 분양허용 공정률 수준은 60%였다. 과거처럼 40%에서 시작해 눈치를 보다가 법안 유예를 밀어붙이는 전략은 현실적으로 어려워진 셈이다.
이 즈음에 시장에서 이상한 움직임이 포착됐다. 후분양제 도입에서 절대적인 주체 기관은 분양보증을 담당하는 주택도시보증공사(HUG)와 제도 시행의 1번지인 LH다. 그런데 후분양을 둘러싼 이 두 기관의 목소리가 엇갈렸다.
우선 후분양제 이야기가 흘러나오자마자, HUG의 후분양 연구 용역 보고서가 야당 의원을 통해 공개됐다.
보고서에 따르면 후분양 시 건설사들이 연간 35조원의 자금을 추가로 조달해야 하기 때문에 금융비용이 늘어나 최종 분양가격이 7.8% 상승하고, 신용도가 낮은 업체가 공급했던 연간 8만5000~13만5000가구 규모(전체 공급량의 약 22%)가 시장에서 사라질 것이란 분석이었다. 국정감사에서 HUG 측은 이 보고서가 국토부에 보고됐다고 답했다. 국토부가 분양가 상승을 인지하고도 후분양제로의 전환을 강행했다는 뉘앙스였다.
그런데 같은 국정감사에서 LH는 “후분양제는 당장이라도 시행 가능하다”며 “이미 시뮬레이션 작업이 끝났고 정부와 협의만 하면 된다”고 답했다. 정부의 후분양 도입 움직임에 힘을 실어주는 발언이었다.
◆ LH의 후분양 도입 시뮬레이션 결과는?
LH가 후분양을 자체 사업 현장에 도입해 분석한 결과는 HUG의 것과 완전히 상반된다.
2014년 박근혜 정부의 9·1대책 이후 LH는 호매실B8, 세종시3-3생활권M6, 호매실B2, 의정부민락2A6, 강릉유천B2 등 5개 단지의 5213가구를 후분양으로 공급했다. LH는 입주자 모집 공고문을 통해 후분양으로 인해 발생하는 사업비 이자를 ‘후분양주택 기간이자’라는 항목으로 분양가에 포함시켰다.
5개 분양아파트의 총사업비와 후분양 기간이자를 비교한 결과 총 사업비 상승률은 0.57%에 그쳤다. 3.3㎡당 기준으로 하면 5개 단지 평균 851만원의 분양가 중 후분양 기간 이자가 4만8000원으로 나타났다.
호매실B8과 세종시3-3생활권M6이 공정률 40%로, 나머지는 공정률 60%로 후분양을 진행했다는 점을 감안해도 HUG가 산정한 수치보다 상당히 적은 수치의 상승률이 나온 셈이다.
문제는 여기에 한국신용평가의 보고서가 얹어지며 후분양을 마냥 미루고픈 건설업계의 입지가 좁아졌다는 점이다.
지난 12월 말 한국신용평가는 2017년 평가를 수행한 주택개발사업을 대상으로 후분양(공정률 89% 시점)을 가정한 재무분석을 수행한 결과 후분양 가정 시 비용 증가폭은 총수입 대비 1~5% 수준에 그친다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한국신용평가는 공정률 80% 초과 시점 이후 분양대금이 유입되는 것으로 가정해 사업진행에 필요한 자금을 산출하고, 필요자금 중 자기자금을 초과하는 금액을 PF 대출을 통해 조달하는 것으로 분석했다.
그 결과 PF 대출 조달 규모는 선분양 때보다 1.6~4.3배 증가했고, 금융비용은 선분양 대비 1.7~2.9배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 후분양시 사업비 증가폭은?
하지만 후분양으로 전환하면 상쇄되는 금액이 있었다. 바로 견본주택 건설비용과 부지 임차료, 분양보증 수수료 등 선분양에서 필수적으로 수반되는 비용이다. 이들의 선분양 사업계획상 금융비용과 선분양 관련 비용을 모두 합산한 금액은 총 수입 대비 5~10%에 달하는데, 후분양 가정 시 금융비용이 총수입 대비 5~14% 수준이므로 실제 증가폭은 1~5%에 그친다는 것이다.
여기에 또 다른 복병이 숨어 있다. 바로 후분양 시점의 ‘분양가 상승’ 가능성이다. 착공 이후 공정률 80% 시점까지 인근 부동산 가격 상승 가능성을 감안할 때 후분양 사업의 경우 선분양 사업계획보다 높은 분양가격 책정이 대체적으로 가능하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전국 기준 아파트 매매가격 상승률은 연간 2.5% 수준이다.
정봉수 한국신용평가 PF평가본부 수석 애널리스트는 “연간 분양가 상승률을 2.5%로 반영한 가운데 이자율과 수수료율이 10% 가산되는 것으로 가정해 후분양 관련 수입 및 비용 변동 효과를 비교한 결과 9개 프로젝트 중 7개 프로젝트에서 선분양 사업계획을 상회하는 세전 이익 창출이 이뤄졌다”며 “건설사 및 시행사 등의 입장에서는 사업비용 증가폭은 상대적으로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 건설사 부담은? 금융비용 조달 부담, 중소사에 가중
LH와 한국신용평가의 최신 보고서를 보면 후분양제로 당장 전환해도 건설사들의 피해는 없는 것처럼 보인다. 과연 그럴까.
현재 건설시장에서 80% 공정까지 사업비를 조달할 수 있는 건설사는 많지 않다. 위의 분석에서 지적했듯 당장 PF 조달 규모가 최고 4배 가까이 증가한다면, 이를 감당할 재무구조와 신용기반이 우수한 회사는 대기업으로 한정되는 탓이다. 이 경우 주택시장에서 중소업체들은 퇴출될 수밖에 없고, 결과적으로 주택 공급 축소와 주택 경기 침체를 유발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후분양제로 전환하려면 당장 금융 시스템부터 바뀌어야 한다. 현재 HUG의 후분양 대출보증 상품은 보증금액을 주택분양 가격의 50~70%로 설정하고 있다. 후분양 관련 PF 대출에서 금융기관이 일정 수준의 LTV(총수입 대비 PF 대출 비율)를 요구한다는 이야기인데, 목표 LTV를 70%로 가정하면 선분양할 때보다 건설사들의 자기자금 투입 비용이 1.4~3.3배까지 올라간다. 여기서 목표 LTV를 60%까지만 낮춰도, 선분양 대비 자기자금 투입 규모는 최고 6.3배까지 늘어나는 상황이다. 이를 감당할 주택건설업체가 시장에 얼마나 될지는 미지수다.
후분양으로 사업을 진행할 때 증가하는 막대한 금융비용도 문제지만, 분양위험에 노출되는 기간이 증가해 전반적인 사업 위험이 증가하는 것 역시 풀어야 할 숙제다.
한국주택협회 측은 “분양보증 의무화, 전매제한, 견본주택과 동일한 시공 의무화 등 선분양 제도의 부작용 해소를 위한 보완책이 이미 마련되어 있고, 미국과 캐나다, 일본 등 주요 국가도 후분양을 의무화하고 있지는 않다”며 “후분양 시 사용되는 사전 입주예약제도 역시 분양권 전매와 유사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고, 예약 취소가 발생하면 건설사가 짊어질 리스크가 커 전반적인 주택건설 시장의 사업환경이 악화될 수밖에 없다”며 후분양제 도입에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예로 LH가 사전 입주예약제를 도입한 단지의 경우 사업비 조달 리스크가 발생하며 예정 준공 시점보다 평균 6년 후에야 분양이 완료됐다.
한편, 업계는 국토부와 HUG의 조율을 눈여겨보는 분위기이다. 한 건설사 임원은 “HUG의 후분양 보증대상 사업의 사업성 평가가 보증 여부를 판단하는 주요한 기준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HUG의 전문성이 도마 위에 오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또한 후분양 시장에서 시행사는 원활한 자금조달을 우선하여 검토할 것이기에 결국 신탁과 리츠, 부동산 펀드의 투자비중이 확대되어야 하는 만큼, 사업의 투명성 제고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선분양제도의 변화 과정
선분양제는 1977년 12월 제3차 ‘주택건설촉진법’ 개정에서 당시 건설부 장관으로 하여금 주택의 공급 조건과 방법, 절차 등에 대해 정할 수 있도록 위임하고, 이에 따라 1978년 5월 ‘주택공급에 관한 규칙’이 제정되며 첫선을 보엿다. 당시 규칙에 따르면 전체 건축 공정의 20% 이상, 아파트는 전체 층수의 5분의1 이상에 해당하는 층수의 골조공사가 완성되면 선분양이 가능했다.
이후 관련 제도는 1995년 전면 개정을 거친 후 현재에 이르렀다. 현재 선분양할 수 있는 기본적인 경우는 사업 주체가 대지를 확보하고 주택보증공사(HUG)로부터 분양 보증을 받은 시점부터다. 시장에 도입된 지 40년 동안 선분양제는 주택건설업체가 공사 비용 조달 및 재정에 대한 부담을 상당 부분 벗어나게 함으로써 주택 건설을 촉진하게 하는 중요한 기능을 수행해 왔다.
최지희기자 jh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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