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7.29
상인들 "권리금 수억줬는데 빈털터리로 나가란 말이냐"
서울시가 1년여간 이어진 논란 끝에 을지로·명동·강남·영등포 등 지하도상가 점포 2788곳의 임차권 양수·양도를 전면 금지했다. 임차권 양수·양도를 금지했다는 것은 상인들이 장사를 그만두고 떠날 때 권리금을 받을 수 없다는 의미다. 이에 상인들은 "최저임금 인상 등으로 가뜩이나 장사가 어려운데 그동안 영업해서 상권을 이룬 대가인 권리금마저 못 받게 한다"며 강력 반발해 논란이 예상된다.
서울시는 지난 19일 '서울특별시 지하도상가 관리 조례 일부개정조례'를 공포한 뒤 이 같은 안을 시행했다. 개정된 조례 제11조 1항에는 '임차인은 이 조례에 따라 발생한 권리나 의무를 타인에게 양도하여서는 안 된다'는 규정이 명시됐다.
지난 20년간 허용됐던 지하도상가 임차권 양수·양도를 금지한 것이다. 이 같은 권리금 금지 조례 개정안은 제9대 서울시의회의 마지막 본회의가 열린 지난 6월 29일 시의회를 통과했다.
서울시는 조례 개정 이유로 "임차권 양수·양도 허용 조항으로 불법권리금이 발생하고, 사회적 형평성에 배치된다는 외부의 지적과 지방자치단체 조례로 임차권리를 양도·양수하는 것은 상위법(공유재산 및 물품관리법)에 위반된다는 행정안전부 유권해석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서울 내 지하도상가 대부분은 민간이 도로 하부를 개발해 조성한 상가를 장시간 운영한 뒤 서울시에 되돌려주는 기부채납 형태여서 현재 지하도상가 내 재산은 엄연한 시 소유의 '공유재산'이다. 서울시는 1996년 지하도상가가 반환되자 1998년 임차권 양도 허용 조항이 포함된 지하도상가 관리 조례를 제정해 지금까지 운영해왔다.
하지만 서울시는 지난해 6월 지하도상가 권리금을 금지하는 조례안을 입법예고했다. 지하도상가는 공유재산이기에 매매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게 서울시 측 설명이었다. 이 같은 개정 조례를 적용받는 상가는 서울시설공단이 관리하는 총 25개 지역 지하상가 점포 2788곳에 달한다.
상인들은 강력 반발하는 모양새다. 많게는 수억 원의 권리금을 주고 입점했는데 임차권 양도가 막히면 이를 회수할 방법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이에 여러 상인이 "비용을 들여 점포를 리모델링하고, 상가 가치를 높인 점을 인정해 권리금 회수 기회를 보장해야 한다"는 의견을 시의회에 제출했다.
정인대 전국지하도상가 상인연합회장은 "황당하게도 민선 6기 마지막 날 권리금 금지 조례가 단 3분 만에 시의회를 통과했다"며 "소상공인·자영업자들의 어려움이 사회 이슈로 떠오른 상황에서 이를 풀어주기는커녕 영업 환경을 악화시키고 있다"고 목청을 높였다.
동대문지하쇼핑센터에서 점포를 운영하는 박승균 씨는 "임차권 양도 금지는 빈손으로 털고 상가를 나가라는 것이나 다름없다"며 "점포를 나가고 싶어도 양도·양수가 안 되면 음성적으로 전대(빌린 것을 다시 다른 사람에게 빌려줌)가 일어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시의회도 권리금 금지에 따른 충격 최소화를 권고했다. 시의회 조례 심사보고서에는 "임차인의 이런 입장을 고려해 충격을 최소화하면서 양도·양수 금지를 실현할 수 있는 합리적 방안 모색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이에 서울시는 기간을 못 채우고 장사를 그만둘 때 내야 하는 위약금을 없애는 방안과 대형 서점·벼룩시장 유치 등으로 지하도 상권에 활력을 주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나현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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