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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해운선진국이 활용하는 선박투자 전용펀드나 선박금융 전문은행 등은

Bonjour Kwon 2010. 1. 20. 07:35

뷰포인트] 해운강국 만들고 싶다

세계 문명사적으로 바다는 국가 발전에 중요한 제2의 영토다. 미래학자 폴 케네디는 “21세기는 해양의 세기가 될 것이며, 새로운 해양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고 했고, 고대 로마 철학자인 키케로는 “해양을 지배한 민족이 세계를 지배한다”고 말했다.

그중 ‘해양산업의 꽃’이라 불리는 해운시장은 현재 유럽과 아시아 국가들이 양분하고 있다. 조선·해운 전문 분석기관인 클락슨에 따르면 보유선박 재화중량톤수(DWT) 기준으로 그리스·독일·노르웨이·덴마크 등 유럽 국가들이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으며, 일본·중국 등의 아시아 국가들이 그 뒤를 따르고 있다.

그러나 2008년 하반기에 발생한 세계 금융위기는 글로벌 해운시장의 판도를 바꾸고 있다. 금융시장 붕괴로 유럽 해운시장을 떠받치던 선박금융도 타격을 입으면서 유럽의 영향력은 급속히 쇠퇴하고 있다. 지난해 3분기 15억달러 이상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한 세계 최대 컨테이너 선사 머스크라인, 모라토리엄 검토로 국내 해운 및 조선 관련주까지 폭락으로 이끌었던 프랑스 선사 CMA CGM이나 독일의 하팍로이드의 사례를 보면 아시아가 향후 해운산업을 주도할 것으로 예상된다.

동시에 아시아 대표 해운 강국인 일본의 위상은 계속해서 낮아지고 있다. 높은 국내 의존도는 스스로를 폐쇄된 시장에 가둔 형국이 됐고, 이는 향후 일본 해운산업의 지속성장에 결정적인 장애물이 될 전망이다.

이처럼 금융위기로부터 불거진 세계 해운업계의 변화는 우리에게 새로운 도전과제를 안겨주고 있다. 현재 전개되고 있는 글로벌 트렌드의 변화 속에서 국내 해운산업이 한 단계 도약하려면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무엇보다 세계 경기의 본격적인 회복에 앞서 법과 제도의 선제적 대응이 절실하다. 해운업은 단순 운송업이 아니라 ‘바다 위의 금융산업’으로 불리는 대표적인 자본집약산업이다. 유럽이 오랜 기간 세계 해운시장을 장악할 수 있었던 것도 금융의 힘 때문이다. 국내에도 해운 분야에 특화된 세계적 경쟁력의 금융시스템이 필요한 시점이다. 무엇보다 해운업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체계적 위험관리를 실현할 수 있는 ‘전문 선박금융회사’의 출범과 ‘효율적 금융지원 시스템 구축’이 시급하다. 유럽 해운선진국이 활용하는 선박투자 전용펀드나 선박금융 전문은행 등은 좋은 선례가 될 것이다.

신흥 해운강국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중국은 이미 중국공상은행, 인민은행 등 금융권의 든든한 후방지원을 받으며 현재의 위기상황을 국가적 차원에서 호기로 활용하고 있다. 중국공상은행이 자국 해운선사인 COSCO에 150억달러의 신용대출과 14억달러의 채권을 발행하고, 중국인민은행은 CSCL에 7억달러의 신용대출을 해주기로 한 것이다. 이 같은 적극적 금융지원 덕분에 지난해 중국은 전 세계 신조·중고선대 매입의 50% 이상을 점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선박금융시스템 정비와 아울러 석탄, 철광석 등 대형 전략화물에 대한 자국 선사 운송 원칙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국내 대형 전략화물은 국내 해운선사들이 레버리지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중요한 토대다. 자체 운송능력을 갖고 있는 대부분의 국가들이 전략화물에 대해서는 자국 운송주의를 고수하며, 전략화물시장을 철저하게 보호하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현재 우리 해운업계는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한 최악의 상황을 겪고 있다. 하지만 위기(危機)라는 말 속에는 기회(機會)의 의미가 함께 포함돼 있다. 국내 해운업은 그동안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세계 시장에서 경쟁하며 해운 각 분야에서 경쟁력을 확보했다. 지배선대 규모 세계 6위, 해상 물동량 세계 6위, 부산항 컨테이너 처리능력 세계 5위라는 성적은 우리 해운산업의 국제적 위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글로벌 해운산업의 메가트렌드가 바뀌고 있는 지금은 분명 새로운 도약의 기회다. 지금 기회를 잡지 못한다면 현재 진행 중인 해운업계의 판도 재편에서 대한민국은 소외되고 말 것이다. 향후 10년을 내다보는 안목으로, 새해를 대한민국이 진정한 해운강국으로 발돋움하는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

[이종철 STX팬오션 부회장]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540호(10.01.20일자)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