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틈새투자를 노린다]①
기사입력 2014.10.22
이희권 KB자산운용 대표
금융투자협회에 등록된 자산운용사는 총 86개. 대다수가 주식과 채권에 투자하는 비중이 높은데 최근 몇 년간 고객들이 만족할 만한 수익을 낸 회사는 운용자산 기준 10위권 내인 일부 대형사 정도다. 국내 증시가 부진한데다 채권금리도 낮은 상황.
일부 자산운용사들은 남들이 가지 않는 틈새시장을 뚫어 저금리에 갈 곳 잃은 투자 자금을 빨아들이고 있다. 발전소, 유전, 해외 부동산, 지적 재산권 등 새로운 투자처에서 좋은 성과를 내고 있는 자산운용사 대표를 직접 만나 그동안의 투자 경험과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들어봤다. [편집자 주]
“동남아시아나 아프리카는 경제 성장이 이뤄지는 단계이기 때문에 에너지 발전시설이 지금보다 더 많이 필요할 것이다. 우리나라의 기술과 자본을 가지고 투자하면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다.”
지난 5월 일본 히로시마현에 300메가와트(MW)급 태양광 발전소를 짓는 사업에 국내 보험사 등 기관 투자자들이 약 1100억원을 투자했다. 발전소에서 생산되는 전기는 향후 20년 간 일본 지역 전력회사가 정해진 가격에 사기로 했다. 이번 투자에 참여한 기관들은 연평균 6~7% 정도의 수익을 얻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KB자산운용은 일본 태양광 펀드를 사모 형태로 만들어 기관들의 자금을 모으는 역할을 했다. 이번 투자로 KB자산운용의 인프라 펀드 투자 약정금액은 5조원을 넘었다. 최근 1년 간 1조원 가까이 늘어나면서 전체 운용자산(33조원) 중에서 인프라 펀드가 차지하는 비중이 15%가 됐다.
◆ 대체투자 비중 30%로 확대
서울 여의도 KB자산운용에서 만난 이희권 대표는 "주식이나 채권만 투자해서는 고객들이 원하는 수익률을 내기가 힘들다"면서 "앞으로 인프라 펀드 규모는 10조원까지 늘리고 대체투자 금액이 운용자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0%로 확대할 것"이라고 밝혔다.
대체투자 규모가 커지면서 운용 인력도 많이 늘었다. 대체투자 초기에는 7~8명의 인력으로 일정 기간 최소 수입을 보장해주는 MRG(최소 운용수입 보장)가 있는 국내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에 주로 투자했다.
하지만 정부가 재정 부담을 이유로 MRG를 폐지했고 새롭게 건설되는 도로, 철도, 항만 물량도 많지 않아 에너지 발전시설이나 해외 인프라로 눈을 돌렸다. 현재는 대체투자 운용 인력만 40명 정도다. 전체 인력의 25%다.
최근에는 대체투자에 대한 기대수익률이 4% 정도로 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투자하려는 투자자들이 여전히 많다. 이 대표는 “3년 전까지만 해도 대체투자에 대한 기대수익률이 8% 정도였지만 시장금리가 점점 낮아지면서 최근에는 5% 정도로 낮아졌다”면서 “하지만 그 정도의 수익을 얻을 수 있는 투자 상품이 거의 없기 때문에 최저 4% 금리를 주는 상품에도 투자자들이 몰린다”고 전했다.
◆ 태양광 발전소 투자, 국내 운용사 중 가장 활발
태양광은 KB자산운용이 에너지 발전 분야 중에서도 가장 관심이 큰 투자처다. 지난 2012년에는 부산 신호 태양광발전소를 건설하는 데 약 660억원을 투자했다. 이어 작년 9월 전라남도 9개 시와 군의 유휴부지 태양광 발전소를 짓는 사업에 약 450억원의 자금을 보탰다. 두 사업 모두 향후 17~20년 간 연평균 약 7% 정도의 수익을 낼 전망이다.
초기에 태양광 발전에 투자할 때까지만 해도 블라인드펀드를 만들어 자금을 모은 뒤 투자처를 찾아 나섰지만, 이제는 수익성이 높을 것으로 예상되는 프로젝트를 선정한 다음에 자금을 모으고 있다. 이 대표는 "국내에서 태양광 투자를 가장 많이 하는 자산운용사일 것"이라면서 "전문 인력이 충분하고 경험도 많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태양광 이외에도 GS파워 안양 열병합발전소 등 발전 시설과 거가대교, 신대구부산고속도로 등 국내 SOC의 운영권을 인수해 수익을 내고 있다.
지난 2006년에 만든 ‘발해 인프라 펀드’는 국내 SOC에 집중 투자하는 블라인드 펀드다. 국민연금공단, 공무원연금공단, 삼성생명, 국민은행 등 17개 기관 투자자들이 참여했다. 그동안 부산-김해 경전철, 대구-부산 고속도로, 의정부 경전철에 투자한 데 이어 올해 4월에는 부산 산성터널 공사에 자금을 보탰다.
◆ 동남아·아프리카 인프라 투자 유망할 것
KB자산운용은 앞으로 해외 인프라 투자에 적극 나설 계획이다. 동남아시아와 아프리카의 경우 앞으로 정부가 인프라 투자를 확대할 것으로 예상돼 유망한 투자처가 될 것이라고 이 대표는 판단했다.
그는 "예를 들면 국내 발전 공기업과 손을 잡고 국내 은행, 보험 등 기관 투자자들의 자금을 모아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에 발전소를 짓는다면 좋은 성과를 낼 것"이라면서 "다만 어떻게 안전하게 원금을 회수할 지에 대한 계획을 잘 세워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 대표는 지금보다 더 많은 투자자들이 대체투자를 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현재는 투자 기간이 10년 이상인 폐쇄형 펀드로 운용되는 경우가 많아 자금 여력이 많은 연기금이나 보험사들이 주로 투자하고 있다. 그는 “주식과 채권과 달리 대체투자는 20~30년 간 투자금이 묶인다”면서 “투자 부담을 줄일 수 있는 다양한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대표는 "국내 주식시장에서 수익을 내기 어려워지면서 주식형 펀드 수탁고가 계속 줄어들고 있다"면서 "대체투자는 보통 투자 기간이 20~30년이기 때문에 꾸준히 안정적인 수익을 낼 수 있어 KB자산운용의 캐시카우(cash cow·현금 창출원)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현승 기자 nalh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