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분식회계

조선업등 수주기업 회계의 특수성,대우조선사례

Bonjour Kwon 2016. 2. 11. 10:29



거짓말 하는 기업들12화. 한 분기 손실만 3조? 조선업을 향한 불신의 시선


거짓말 하는 기업들 12화

한 분기 손실만 3조?

조선업을 향한 불신의 시선

대우조선의 분식회계 의혹


연재일 : 2016.02.11 by  김도년외 1명



대우조선해양은 우리나라 간판 조선사다. 1973년 대한조선공사 옥포조선소로 출범했다가 회사가 부실해지자 1993년 대우중공업에 합병됐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대우그룹이 부실로 공중분해 되면서 대우중공업에서 다시 갈라져 나왔고, 대주주가 된 산업은행이 수차례 매각 절차를 진행했지만, 여의치 않아 지금처럼 '주인 없는 회사' 정확히 말해 '정부가 주인인 회사'가 됐다.



그런 대우조선이 2015년, 다시 위기를 맞았다. 2015년 2분기에만 3조 원대의 영업손실을 떠안게 됐다고 밝히면서 분식회계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대주주 산업은행은 그동안 뭘 했느냐는 책임론도 거론되고 있다. 2014년까지 당기순이익 흑자 행진을 이어왔던 회사가 갑자기 3조 원대 손실이라니, 선뜻 이해하기 힘든 상황이니 분식회계 의혹이 나오는 것은 자연스러운 논리적 귀결일 것이다.


결과부터 이야기하자면, 대우조선은 이 책을 쓰고 있는 2016년 1월 현재에도 분식회계를 했다고 단정하는 것은 이른 감이 있다. 지금은 대주주 산업은행의 실사 결과가 나왔고 금융감독원도 분식회계 조사(회계감리)에 착수했지만, 구체적인 내용이 드러난 것은 없다. 핵심은 구체적인 증빙 자료 없이 업계의 잘못된 관행대로 수익을 인식한 금액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는 지를 봐야 하지만, 이 금액이 얼마인지는 아직 알려지지 않고 있다.

대우조선이 갑작스럽게 왜 3조 원대 손실을 떠안게 됐는지는 우선 건설사나 조선사처럼 일감을 수주해서 매출액을 인식하는 이른바 수주기업의 회계 특수성부터 이해할 필요가 있다.




조선사는 배 한 척을 만드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 제조업체처럼 '100원짜리 10개 팔면 1000원' 이런 식으로 매출액을 계산하면 프로젝트가 끝나기 전까지 조선사 매출액은 '0원'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조선사들은 발주처로부터 수주한 금액에서 프로젝트 진행률을 계산해 매출액으로 인식한다. 1000억 원 규모 프로젝트를 수주했고 이를 30%가량 진행했다면 매출액을 300억 원으로 계산하는 것이다.


만약 조선사는 프로젝트를 30%까지 진행했다고 했는데 발주처가 보기엔 20% 밖에 진행되지 않았다고 옥신각신한다면 어떻게 될까. 이럴 때는 발주처가 인정한 20%만큼만 매출채권으로 잡고 나머지 인정받지 못한 10% 금액은 미청구공사로 잡는다. 시간이 흘러 프로젝트가 완성되면 미청구공사는 결국 발주처에 청구해 받을 수 있는 돈이 되기도 하니까 매출액으로 본다.


만약 프로젝트 현장 상황이 나빠져 제작 기간이 늦어지고 예상보다 많은 비용이 들어 프로젝트 진행률이 당초 예상보다 떨어진다면 미청구공사는 손실로 돌변한다. 대우조선이 해양플랜트 제작 지연으로 손실을 예상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특히 우리나라 조선사들은 해양플랜트를 설계할 능력이 없어 발주처가 설계를 도중에 바꾸면, 바뀐 설계에 따라 다시 공사를 진행해야 하기 때문에 공사기간이 늦어질 여지는 다분하다. 게다가 일감 수주 경쟁이 치열하다보니 발주처의 잦은 설계 변경으로 손실을 보더라도 울며 겨자 먹기로 손실을 그대로 부담해야 하기 일쑤다.


특히 우리나라 조선사들이 발주처와 맺은 계약 조건은 조선사들에게 불리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무역거래 규모가 줄자 상선 발주가 줄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너도나도 해양플랜트에 뛰어들면서 저가 수주, 헤비테일(Heavy tail) 방식의 불리한 계약을 국내 조선사들이 받아들인 것이다. 헤비테일이란 직역하면 '꼬리 부분이 무겁다'는 뜻인데, 이는 발주처가 공사대금을 공사 초반에는 적게 주다가 후반부에 더 많이 주는 조건으로 맺는 계약이다. 공사대금을 미리 받는 것이 단연 조선사에 유리하지만, 중국에서 조선사를 급격히 늘리고 국내 대형 조선사들도 생산능력을 확장하면서 계약 조건이 불리하더라도 어떻게 든 일감을 따내야 할 상황이었기 때문에 이렇게라도 계약을 체결하게 됐다.



헤비테일 방식으로 계약했기 때문에 공사가 진행될수록 미청구공사 규모가 늘어났고, 매출액도 함께 늘었지만, 공사대금을 나중에 받기로 한 만큼 실제로 들어오는 현금이 없었다. 그러다 2014년부터 유가가 하락했다. 해양플랜트 설비를 발주한 업체들은 설비를 인도받아 석유를 체취해도 떨어진 유가 탓에 채산성이 맞지 않게 됐다. 이들은 어떻게든 유가가 다시 오를 때까지 공사를 미뤄 조선사에 하자 문제를 거론하면서 약속한 공사대금을 주지 않았다. 이렇게 되면 불어난 미청구공사는 손실로 돌변하게 되는 것이다.


대우조선은 2014년 말까지만 해도 7조 4000억 원이라고 했던 미청구공사가 한 분기 만에 9조 4000억 원으로 불어난다. 순이익은 흑자라도 현금흐름은 수년째 마이너스였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대우조선은 현대중공업이나 삼성중공업보다 해양플랜트 공사를 수주한 시점이 다소 늦었다. 현대중공업은 2011년부터 공사를 수주해 2014년 2분기와 3분기에 각각 1조 1000억 원과 1조 9000억 원대 영업적자를 냈고 삼성중공업은 주로 2011년과 2012년에 수주, 2014년 이익 규모가 줄었다가 2015년 2분기에 1조 5000억 원대 영업적자를 냈다. 2012년부터 해양플랜트에 뛰어든 대우조선은 2015년부터 대규모 적자를 반영하기 시작한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전개되고 있다는 사실이 재무제표에 모두 공시돼 있지만, 증권업계 애널리스트들은 2015년 초에도 역시나 "대우조선은 업계 유일한 실적 개선 조선사"라며 주식을 사야 한다는 의미인 '매수' 의견을 불러댔다. 이들 눈에는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미청구공사와 밑 빠진 독처럼 빠져나가던 영업활동 현금흐름은 보이지도 않았을까. 분석 기업에 비해 증권사가 아무리 '을(乙)'의 위치에 있다고 하더라도 정확한 기업 정보를 제공해야 할 애널리스트들이 시장에 정직한 기업분석 의견을 내지 못한 것은 비판 받아 마땅하다.

어쨌든 대우조선은 분식회계라기보다는 신임 경영자가 임기 초반에 반영해야할 손실을 모두 털고 나가는 빅 배쓰(Big bath)일 가능성이 크다. 빅 배쓰란 크게 목욕을 해서 때를 씻어낸다는 의미로 회사들이 과거의 부실을 한 회계연도에 모두 반영해 손실이나 이익 규모를 있는 그대로 회계장부에 드러내는 것을 말한다. 이는 현행 회계기준 안에서 일어나는 일로 불법적인 분식회계와는 차이가 있다.


분식회계 의심할 정황,

전혀 없나?


물론 대우조선이 분식회계를 한 것이 아니라고 단정하기도 어렵다. 대우조선의 분식회계 의혹은 2015년 국회 정무위원회의 국정감사에서도 화두로 떠올랐다. 강기정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대우조선의 대주주 산업은행이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분식회계 적발 모니터링 시스템으로 대우조선의 분식 가능성을 최고등급(5등급)으로 평가하고도 구체적으로 조사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재무 이상치 분석 전산시스템'으로 대우조선 점검을 의뢰한 결과 2013년과 2014년에 이미 최고등급을 받았다는 것이다.


매출채권과 재고자산, 선급금 등 영업용 자산이 늘어나고 매입채무 등 영업용 부채가 줄어드는 내용은 정밀 조사가 필요하다고 봤다. 쉽게 말해 돈을 벌 수 있는 자산은 많이 잡고, 돈을 내줘야 하는 부채는 줄어드는 모습은 자의적으로 이익을 부풀릴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또 상품을 외상으로 팔고 나서 받을 돈인 매출채권이 실제 현금으로 들어오는 기간(매출채권회전기간)과 창고에 쌓인 재고자산이 시장에 팔려나가는 기간(재고자산회전기간)이 길어지고 있는 점도 건전성이 적신호가 오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봤다.


대주주 산업은행은 통상 분식회계 적발 가능성이 큰 것으로 나온 기업은 거래처에 소명하도록 해 진위를 확인하는 작업을 하지만, 대우조선에는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과거의 손실을 의도적으로 감추려 한 것은 아닌지 의심할 만한 하다. 금융감독원도 이런 사실을 지난 2013년 산업은행 종합검사에서 적발하지 못했다는 것이 국회의원들의 지적이다.


민사소송으로 번진

대우조선 사건


대우조선의 3조 원대 손실에 따른 분식회계 의혹은 대우조선 주식에 투자한 사람들을 격분하게 했다. 이들 투자자들은 대우조선과 감사인 안진회계법인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하기로 한 것이다. 투자자들이 손해배상 소송에서 승소하려면 대우조선에 대한 분식회계 조사 결과가 상세하게 밝혀져야 한다. 그렇게 되려면, 여러 가지 절차가 남아 있다.




먼저 대주주 산업은행은 삼정회계법인에 의뢰해 다시 회사의 재무제표가 맞는지 실사를 진행했다. 만약 삼정회계법인의 실사 결과 대우조선이 감춘 손실이나 부풀린 수익이 지나치게 많다면 금융감독원이 직접 분식회계 조사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삼정회계법인의 실사를 통해서도 분식회계 정황을 알기 어려울 수도 있다. 삼정회계법인이 실사를 진행하는 목적은 대우조선의 분식회계를 밝혀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회사를 정상화하기 위해 부실 규모를 파악하기 위한 목적이다. 즉, 이해관계자에게 정확한 회계 정보를 알려주기 위한 재무회계적 관점이 아니라 회사를 경영하고 관리하기 위한 관리회계적 관점에서 실사를 진행했기 때문이다. 관리회계는 재무회계보다 훨씬 보수적인 잣대로 부실 규모를 파악하기 때문에 설사 대규모 추가 부실이 드러난다고 할지라도 이를 근거로 분식회계라고 주장하긴 어렵다.


금감원 조사를 통해서도 분식회계 사실이 제대로 적발될 지는 미지수다. 대우건설 사례처럼 내부 고발자가 분식회계에 대한 구체적인 사실이 적힌 문건을 전달해주면 모르겠지만, 일선 회계사나 금감원 감리 담당 조사역은 해양 플랜트에 대한 전문지식이 부족하기 때문에 이를 제대로 적발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제대로 된 조사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해양 플랜트 전문가를 대동해 오랜 시간에 걸쳐 조사가 이뤄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손실 감추고

21억 챙겨간

대우조선 전임 사장


대우조선의 사례에서 가장 분통이 터지는 사실은 정작 3조 원대 손실을 낸 책임이 있는 전임 대표가 받은 수십억 원대 성과급이다. 정작 회사는 경영진의 잘못된 경영 판단으로 망가져 수많은 노동자들이 정리해고 되고 개인투자자들은 투자한 돈을 날렸지만, 고재호 전 대우조선 사장이 2015년 상반기에 챙긴 돈만 21억 5400만 원이다. 3개월치 급여와 퇴직금 명목인데, 구체적으로 보면 먼저 근로소득 6억 4900만 원(급여 2억 1100만 원, 상여금 1억 3300만 원, 기타 3억 500만 원)에 퇴직금 15억 500만 원이다.


고재호 전 대우조선해양 사장. 손실 감추고 21억 챙겨간 대우조선 전임 사장. ⓒ 이데일리

대우조선 반기보고서에서 밝힌 고 전 대표의 보수 산출 기준을 보면 더욱 가관이다.

매출액이 2013년 14조 800억 원에서 2014년 15조 1600억 원으로 전년 대비 7.7% 증가한 점을 고려했다. 어려운 경영 여건에도 안정적인 경영관리와 장기발전기반을 마련했다.


2015년 상반기에만 21억 5400만 원. 대규모 손실을 안긴 대표이사가 한 분기에 받을 수 있는 돈이 이 정도라니. 양심이 있다면, 이렇게 받은 연봉을 돌려줘야 할 것이다.

어쨌든 우리가 이 정도의 등기이사 연봉 정보라도 알 수 있는 것은 경제 민주화에 대한 국민적 요구가 커지면서 5억 원 이상의 상장기업 등기이사 보수를 공시하는 제도를 도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공시하는 수준을 넘어, 천문학적인 손실을 입힌 경영진의 성과급을 정부가 몰수하는 제도를 다시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


이것은 사유재산권 침해가 아니다. 분식회계를 저지르고 회삿돈을 지급받은 행위 자체가 사유재산을 침해한 행위이기 때문에 이를 정상화하자는 것이다. 분식회계로 단정할 순 없다고 할지라도 얼마든지 수조 원대 손실을 뒤늦게 인식하도록 한 뒤 수십억 원대 성과급을 챙긴 대우조선 전 대표의 사례가 이를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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